
정부가 지난달 29일 수도권 우수 입지 487만㎡에 청년·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주택 약 6만 가구를 신속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과천 방첩사 부지(28만㎡)와 인근 경마공원(115만㎡)을 함께 이전한 뒤 통합 개발해 98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경마장 이전이 주택 공급 선결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도심 주택 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은 숫자만 보면 화려하다. 과천경마장과 방첩사령부 부지를 통합 개발해 9,8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은 용산국제업무지구 다음으로 큰 규모다. 교통망이 좋고 직주근접 생활권이라는 설명은 정책 보고서에선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 화려한 숫자 뒤에는 산업의 붕괴, 공동체의 상실, 그리고 정책 신뢰의 파괴가 숨어 있다.
과천경마장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다. 1989년 뚝섬에서 옮겨온 뒤 수도권 말산업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뚝섬 경마장은 1960~80년대 동안 사회적 비난 속에서도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여가 공간이었다. 도시 팽창과 주거지역과의 충돌로 더는 경마의 터전이 될 수 없어 결국 88올림픽을 앞두고 과천으로 이전했다. 당시 과천은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자연환경이 살아 있었던 곳이었다. 이전 후 88올림픽에 잘 사용 후 한국 경마의 현대화 시대를 열면서 발매 전산화와 제주 경마 시행, 개인마주제 도입 등 혁신적 정책과 함께 1조 원 매출 시대를 열었다.
정부는 또다시 ‘이전’을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마사회 측은 연간 2,400억 원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노조와 함께 들고 일어나 경고한다. 그보다는 단순한 재무 수치가 아니라 수만 명의 삶이 흔들린다는 뜻을 내세워야 한다. 기수·조교사·마필관리사 등 2만 4,000명의 생계가 위협받고, 연간 1000만 명이 찾는 시민 공원 기능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야 한다. 과천 시민들은 “경마공원은 시민의 것”이라며 항의 화환을 보냈고, 노조는 총궐기대회를 준비 중이다. 신임 우희종 마사회장조차 “말산업 전체 구조를 뒤흔드는 대형 정책을 문구 하나로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단순히 경마장의 존폐가 아니다. 정부가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산업과 공동체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주택은 필요하다. 그러나 주택을 짓기 위해 말이 달리는 공간을 없애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냉정히 따져야 한다. 경마장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산업이고 문화이며, 지역의 삶의 공간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정책의 구조적 방식이다. ‘공급 확대’라는 목표만 있지, 과정과 절차가 없다. 이해 관계자와의 협의는 생략되고, 일방적 발표가 정책의 전부가 된다.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의 무시다. 정책은 숫자와 도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숫자 뒤에는 사람들의 삶과 산업의 구조가 있다. 이를 무시한 채 추진되는 개발은 결국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정책 신뢰를 무너뜨린다.
사실 이런 방식은 낯설지 않다. 한국의 재개발 과정은 수많은 공동체 붕괴 사례를 남겼다. 인천 배다리 마을은 철거식 재개발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종로 피맛골은 음식문화 공동체가 사라졌다. 북촌 한옥마을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 정체성이 상업화에 잠식됐다. 개발은 늘 ‘더 나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해체되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과천경마장 이전 논란은 낡은 패턴을 다시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대안은 있을까, 첫째, 정부는 주택 공급 목표를 유지하되, 경마장 기능을 존속시키면서 일부 부지를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절충안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이해관계자 협의체를 구성해 한국마사회, 시민, 전문가가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셋째, 개발 과정에서 공동체 보존 프로그램을 병행해 시민 공원 기능과 말 산업의 문화적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과천경마장 이전 논란은 우리 사회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부가 진정으로 책임 있는 정책을 원한다면, 숫자와 도면 뒤에 숨지 말고, 말산업 종사자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논란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겠다. 덧붙여 한국마사회도 이쯤에서 경마 팬들의 소중함에 대해 한 번 더 각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