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감히 날 독살하려고 해?"
조조는 눈을 부릅뜨며 호통 쳤다. 두풍으로 자리보전하던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길태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조조는 위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놈을 밖으로 끌어내라. 내가 친히 신문하겠다!"
길태는 위사들에게 떠메어진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잠시 후 그가 무릎 꿇고 있는 신문장에 조조가 수하들과 함께 나타났다. 조조는 단상의 의자에 좌정한 후 길태를 내려보며 날카롭게 추궁했다.
"네놈은 의원이거늘 어째서 날 독살하려했느냐? 짐작컨대 너 혼자 작정한 일은 아닐 것이다. 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길태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 혼자 작정한 일이다. 네놈은 위로는 무황폐하를 속이고 아래로는 무림의 억조창생을 기만하는 놈이니 어찌 죽이려는 자가 나뿐이겠느냐? 의로운 자라면 모두 네놈을 죽이려 할 것이다!"
조조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한동안 매서운 눈으로 길태를 노려보다 냉랭하게 말했다.
"입이 있다고 멋대로 놀리는 것이 아니다. 과연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져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봐야겠구나."
길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채 소리쳤다.
"내 널 죽이는 것이 숙원이었으나 불행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공연히 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어서 날 죽여라!"
조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다.
"여봐라! 저놈을 쳐라! 손속에 조금이라도 인정을 둔다면 내가 직접 목을 베어버리겠다!"
모진 매질이 시작되었다. 조조의 수하들은 행여나 화를 입을까 두려워 인정사정없이 장(杖)을 휘둘렀다. 가혹한 매질이 진행되는 동안 길태의 몸에서는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틸 뿐 신음 한 마디 흘려내지 않았다.
"저런 독종을 봤나!"
조조는 치를 떨었다. 하지만 계속 매질하다가는 길태의 숨이 끊어질까 걱정되었다. 그렇게 되면 배후를 밝히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실상 굳이 고문까지 해서 배후를 캐낼 필요는 없었다. 오늘 새벽 동승에게 앙심을 품은 진경동이 찾아와 모든 것을 고해바친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놈을 가둬버려라!"
조조는 매질을 중지시켰다. 더 이상 고문하다가는 길태가 숨을 거둘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대질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그는 연회를 열고 무황성의 가신들을 모두 초대했다.
한편 동승은 길태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간담이 써늘해져 있었다.
'필경 들통이 나고 말았구나!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그는 조조로부터 연회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병을 핑계대고 나가지 않았다. 반면 왕자복과 충집, 오석, 오자란 등은 의심을 살까 두려워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연회가 시작되었으나 장내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문 채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조조는 술을 몇 순배 돌린 후 좌중을 향해 말했다.
"오늘따라 술자리가 재미없구려. 내 여러분의 흥을 돋우기 위해 사람 하나를 불러보겠소이다."
조조가 손짓하자 이내 십여 명의 무사들이 피투성이가 된 길태를 끌고 왔다.
"저 자는 악적들과 공모하여 날 독살하려고 했소. 오늘 저 자를 문초할 테니 여러분은 모두 귀를 열고 들어보시오."
조조가 눈짓을 하자 한 명의 무사가 길태의 혈도를 쳤다. 길태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깨어났다. 그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단상에 조조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눈을 부릅뜬 채 꾸짖었다.
"천하의 악적 조조야! 어째서 아직도 날 죽이지 않는 거냐!"
조조는 그를 내려보며 냉랭한 음성으로 물었다.
"잘 들어라. 네놈과 공모한 자는 모두 여섯 명이다. 그렇지 않느냐?"
그가 공모자가 6명이라고 말한 것은 동승과 왕자복, 충집, 오석, 오자란, 마등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 속에 유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흥!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천하의 악적을 죽이려는 의인이 어찌 여섯 밖에 없다고 하느냐? 무림의 의인이라면 모두 네놈을 죽이고 싶어 할 것이다!"
길태의 호통이 장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한낱 의원에 불과한 그의 당당한 모습에 연회에 참석한 자들은 숙연해지는 것을 금치 못했다.
"네놈이 아직도 뜨거운 맛을 보지 못했구나!"
조조는 화가 치밀어 수하들에게 다시 매질을 하라고 명을 내렸다. 중인들이 보는 가운데 가혹한 매질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림에서 금기로 되어 있는 분근착골(分根搾骨)과 같은 가혹한 수법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나 길태는 수십 차례나 혼절하면서도 죄를 시인하기는커녕 신음 한 마디 흘려내지 않았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고,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여기저기 흩어졌으나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장내에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왕자복과 충집, 오석, 오자란 등 4인이었다. 그들은 안색이 희어졌다 검어졌다 반복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조조는 곁눈질로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고 놈을 끌어내라!"
길태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얼마 후 연회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파하게 되었다. 연회에 참석했던 자들이 모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으나 유독 왕자복 등 4인만 조조에게 붙들려 돌아가지 못했다. 자리에 남아있는 그들은 이미 넋이 반쯤 나가버린 상태였다.
조조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유 있게 물었다.
"네 분을 붙잡아 둔 것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였소. 대체 여러분은 동승과 함께 무슨 일을 모의하였소?"
4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잠시 후 왕자복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모의... 라니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