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당 출입을 하지 않은지도 꽤 된 것 같았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동안에는 마음고생으로 인해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따라 애첩 운영(雲英)과 오랜만에 살을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길태가 다녀간 뒤로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가만 있어봐. 운영......."
이게 무슨 소리인가? 후당으로 들어서는데 운영의 침실로부터 교태로운 여인의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의 징그러운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동승의 눈썹이 거꾸로 치솟았다. 그는 분노를 금치 못한 채 침실 문짝을 냅다 걷어차며 뛰어들었다.
"앗!"
남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침상 위에서 벌거숭이 남녀가 후다닥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애첩 운영과 시종인 진경동(秦慶童)이란 자였다.
"이... 이놈들! 무슨 짓들이냐!"
동승의 입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이나 그의 시중을 들어오던 진경동이 자신의 애첩에게 손을 댄 것이다. 동승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부중은 발칵 뒤집혔다. 불륜의 현장을 들킨 운영과 진경동은 알몸으로 마당에 끌려나왔고, 잠자던 하인들과 식솔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그 광경을 구경했다.
"네 이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네놈이 감히 짐승 같은 일을 저질러?"
동승은 입에 거품을 물고 외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진경동은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었다.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 두 사람이 살아날 희망은 없는 듯했다.
"더러운 놈들 같으니... 뭣들 하느냐? 연놈들을 쳐 죽여라!"
동승의 말이 떨어지자 우락부락한 인상의 하인들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그만 두세요."
차분한 음성과 함께 한 명의 노부인이 나타났다. 노부인은 운영과 진경동을 살펴본 후 딱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영감께서 망령이라도 나셨단 말입니까?"
동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부인?"
"소문이 새어나갈까 두렵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영감이 질투에 눈이 멀었다고 할 게 아닙니까?"
동승은 움찔하고 말았다. 자신의 나이가 대체 몇인가? 한창 때가 지나도 벌써 지난 나이다. 과거에는 그토록 자주 찾던 운영의 침소도 근간에는 좀처럼 들른 기억이 없을 지경이다. 그에 반해 운영은 젊은 여인이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숱한 나날을 독수공방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하필이면 시종과?'
동승은 바닥에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진경동을 보고 다시금 화가 솟구쳐 올랐다.
"아서요, 영감. 적당히 끝내시는 게 더 이상 체면을 구기지 않는 일이에요."
그의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 가버렸다. 동승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연놈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만한 일로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놈들에게 곤장 사십대 씩 친 후 가둬버려라!"
그는 발로 바닥을 한 차례 구른 후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날 새벽녘이었다. 하인들로부터 곤장을 맞고 광에 갇혔던 진경동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자물쇠를 부수고 어딘가로 달아나버렸다.
길태는 조조로부터 전갈을 받고 기쁨을 금치 못했다.
'기회가 왔구나!'
그는 이제나 저제나 조조를 독살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 기회가 왔다. 동승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조조의 부중으로부터 급히 들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그는 두풍을 다스리는 약을 짓고 별도로 극독을 품에 갈무리한 후 조조를 방문했다.
침상에 누워있던 조조는 그를 보자 힘없이 말했다.
"오늘따라 두풍이 심해 꼼짝도 못하겠네. 어서 약을 지어주게."
길태는 공손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대공의 증상을 익히 알고 있어 미리 약을 지어왔습니다."
그는 조조가 보는 앞에서 약을 달였다. 약이 거의 달여졌을 무렵 그는 은밀히 탕기에 독을 탄 후 약사발을 들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걸 마시고 땀을 빼면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조조는 약사발을 힐끗 보기만 할 뿐 받으려 하지 않았다. 길태는 초조함을 금치 못해 사발을 내밀며 다시 말했다.
"뜨거울 때 마셔야 효력을 볼 수 있습니다."
조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약사발과 길태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는 어의이니 그 도리를 알 것이 아닌가?"
"......?"
"본래 황제가 음식을 먹거나 약을 먹을 때는 신하가 먼저 맛을 보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가 먼저 먹어보는 게 어떤가?"
길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자가 눈치 챘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눈에 띌 정도로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약은 음식과 달라 병을 낫게 하는 것인데 굳이 맛을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말이 끝나는 순간 길태는 약사발을 들어 조조의 얼굴을 향해 끼얹어버렸다. 그가 제조한 독은 워낙 극렬하여 눈이나 코, 귀에 단 한 방울만 들어가더라도 즉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가 누군가?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길태가 약사발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의 손에서 웅후한 장력이 뻗어나갔다.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약사발이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약사발은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약이 쏟아진 곳은 청석(靑石)이 깔려져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며 청석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길태는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방안으로 십여 명의 인영이 뛰어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혈도를 찍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