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되풀이되는 조조 수하들의 추궁에 그의 입에서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형님을 찾아가는데 허락은 무슨 얼어 죽을 허락이란 말이냐?"
진기의 눈에서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하후공의 명을 받고 이곳을 지키고 있다. 네놈에게 날개가 돋쳤다 해도 내가 있는 한은 강을 건널 수 없을 것이다!"
관우는 눈을 부릅떴다.
"너는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자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
"흥! 기껏해야 무명소졸들이나 죽였겠지!"
관우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럼 네 자신은 안량과 문추에 비해서 어떻다고 보느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던가? 진기는 자존심이 상해 노성을 지르며 말을 달려왔다.
"건방진 놈! 네놈을 죽여 콧대를 꺾어주마!"
관우는 진기가 미친 듯이 달려들자 허리춤에서 장도를 뽑아 비스듬히 휘둘렀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로 펼치는 도법은 웅후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장도로 전개한 도법은 아무런 소리도 없었고 도광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마주치는 순간 둔탁한 음향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두 마리 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무엇인가 바닥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우우......!"
진기의 수하들은 괴성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땅 위를 굴러가는 물체는 다름 아닌 진기의 머리통이었던 것이다. 큰소리치며 덤볐던 진기가 단 1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목이 잘리고 만 것이다.
관우는 진기의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속히 배를 대라!"
주춤주춤 물러나던 자들은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중 몇 명이 간신히 정신을 차려 나루터에서 배 한 척을 끌고 왔다.
관우는 두 부인을 먼저 배에 오르게 한 후 시종들과 뒤따라 올랐다. 돛을 올리자 배는 황하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관우는 묵묵히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면 원소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는 무황성의 다섯 군데 지부를 거쳤으며 6인의 고수들을 죽였다. 그야말로 혈로(血路)를 뚫고 온 것이다.
관우는 거침없이 흐르는 탁류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죽일 마음은 없었는데 부득이한 일이었다. 조대공이 알면 날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하겠지......."
그에게는 성심으로 대해준 조조였다. 비록 의형을 만나러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였다지만 죽은 자들은 모두 조조의 수하들이었다. 관우가 조조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배는 황하의 맞은편에 당도했다. 관우는 두 부인을 수레에 모신 후 다시 북쪽을 향해 달렸다.
얼마나 갔을까? 앞쪽에서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거기 오는 분은 관공이 아니시오?"
관우가 살펴보니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자는 놀랍게도 손건이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마주 잡았다. 관우는 여남에서 손건을 잡았다가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이후의 일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 그간 어떤 일이 있었소?"
"유벽과 공도는 관공이 허도로 돌아간 후 다시 여남을 빼앗았소이다. 그 후 두 사람이 나더러 원소에게 가자고 해서 제가 먼저 하북으로 가게 되었소이다."
관우는 성급한 마음에 재차 물었다.
"형님은 만나 뵈었소?"
"물론이지요. 하지만 가보니 하북 쪽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원소의 모사들은 모사들대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다툼을 일삼을 뿐더러 고수들 간에도 알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이다."
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북의 사정이 그렇다면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는 유비의 사정 또한 좋을 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는 주공과 상의하여 몸을 뺄 계책을 궁리했지요. 주공은 이미 여남에 있는 유벽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달려온 것은 관공이 그것도 모르고 원소에게 갈까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아아! 오면서 길이 어긋날까 부심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관우는 탄성을 발했다.
"하늘이 보살핀 덕분이구려!"
잠시 후 손건은 수레로 다가가 큰 절을 올렸다. 두 부인은 수레에서 내려와 다급히 물었다.
"그 분께서는 어떠신가요?"
"주공께서는 강녕하시니 심려 놓으십시오."
손건은 일단 부인들을 안심시킨 후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고했다. 특히 유비가 원소에게 두 번이나 죽음을 당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를 실감나게 전하자 두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여남에 계시니 하북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관공과 함께 여남으로 가시지요."
관우는 손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비록 황하를 건너긴 했지만 강 건너가 바로 조조의 영역이므로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었다.
일행은 여남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등 뒤로부터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며 한 떼의 인마가 추격해왔다.
"운장은 거기 섰거라!"
벽력같은 외침에 관우는 말머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