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황성 형양 지부장 왕식(王植)은 관우가 형양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마중 나왔다.
"먼 길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두 분 부인께서도 곤하실 테니 오늘밤은 제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관우는 기수관의 경험이 있는지라 왕식의 환대에 부쩍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긴 그간 여러 놈을 죽였으니 겁먹을 만도 하지 않을까? 만일 허튼 수작을 부리면 그때 가서 대처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왕식을 따라 형양지부로 향했다. 일행이 부중으로 들어서자 시종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구수한 음식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일행은 깨끗하게 치워진 객관으로 안내되었다. 두 부인이 수레에서 내려 객관의 내실에 들고 시종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왕식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관우를 위해 연회를 열었으니 참석에 달라는 것이었다.
관우는 정중히 사절했다.
"연회는 필요 없으니 그만 두라고 전해주게."
그가 거절한 것은 두 부인만 객관에 남겨둘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푸짐한 음식물들이 객관으로 보내져왔다. 관우는 공연히 왕식을 의심했나 싶어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감, 미 두 부인에게 먼저 음식을 들인 후에야 시종들과 허기진 배를 채웠다.
관우는 오랜만에 포식을 한 탓인지 긴장이 풀리며 졸음이 밀려들었지만 두 부인이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한편 왕식은 수하 무사인 호반(胡班)을 은밀히 불렀다.
"내가 왜 관우를 후히 대접하는지 아느냐?"
호반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관공이 천하의 영웅이니 예우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림없는 소리! 놈에게 죽은 한복이 내 친척인데 어찌 예우를 한단 말이냐?"
그 말에 호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놈의 무예가 워낙 뛰어나 보통 수법으로는 제거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계략을 사용하기로 했지. 흐흐! 놈은 꿈에도 모르고 있어."
왕식은 천 명의 무사들로 하여금 객관을 포위한 후 삼경을 기해 일제히 불화살을 날리도록 명령했다. 또한 객관으로부터 뛰쳐나오는 자는 모두 쏴죽이라고 당부했다.
호반은 왕식의 명대로 객관 주변에 무사들을 배치하고 불화살을 준비했다. 그는 삼경이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관운장이란 사람의 용태가 천신(天神)과 같다는 소문이 도는데 과연 그럴까?'
호반은 아직 청년이라 호기심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직 삼경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잠깐 관우를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객관으로 들어서니 한 방의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객관의 수비를 맡고 있는 무사에게 물었다.
"저 방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관공이온데 지금 책을 읽고 계십니다."
호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 길을 오는 동안 세 차례나 혈전을 치렀는데 어찌 태연히 책을 읽는단 말인가?'
더욱 호기심이 인 그는 발소리를 죽여 불빛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접근했다.
마침 관우의 그림자가 방문에 뚜렷이 드러났다. 관우에게는 일찍이 미염공(美髥公)이란 별칭이 붙여진 적이 있다. 한참 동안이나 그림자를 바라보던 호반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참으로 신인과도 같은 모습이구나!"
"밖에 있는 자가 누구냐?"
방안으로부터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호반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방문이 열리며 관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는 누군데 방을 엿보고 있는 것이냐?"
호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소생은 형양 지부장 왕식의 문하에 있는 호반이라 합니다. 관공의 신위가 궁금해 그만 훔쳐보게 되었습니다."
관우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네가 바로 호화 노인의 아들이란 말이냐?"
호반은 깜짝 놀랐다.
"저의 아버님을 아신단 말씀입니까?"
관우는 껄껄 웃었다.
"이리 들어오게, 자네에게 전해줄 것이 있네."
방안으로 들어간 호반은 관우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것은 호화 노인이 그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호반은 편지를 읽은 후 탄식했다.
'하마터면 충의지사를 몰라 뵙고 해칠 뻔했구나!'
호화 노인이 쓴 편지에는 관우의 인품을 칭송하는 글귀가 가득 쓰여 있었던 것이다. 호반은 편지를 품에 넣은 후 큰절을 하며 말했다.
"왕식이 지금 흉계를 꾸며 관공을 해치려 하고 있습니다. 당장 피신하셔야 합니다."
관우는 크게 놀랐다.
"그게 사실인가?"
"객관은 이미 포위되었고 삼경을 기해 불화살을 쏠 것입니다. 제가 지금 가서 북문을 열어놓을 테니 행장을 꾸려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호반은 다시 한 번 절을 한 후 밖으로 달려 나갔다. 관우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도 함정이라면 큰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