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사는 오래된 절로 30여 명의 중들이 불도를 닦고 있었다. 일행이 산문 앞에 당도하자 중들이 일렬로 나와서 맞이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이 관우를 보고 아는 척했다.
"공께서는 포동(蒲東)을 떠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관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아마 이십년 쯤 되나 보오."
"소승은 보정(普淨)이라 하온데 알아보시겠습니까?"
관우는 중을 살펴보았으나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
"소승의 집이 관공의 댁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한편 변희는 두 사람이 친근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흉계가 탄로날까봐 보정을 꾸짖었다.
"내가 관공을 모시려 하는데 중놈이 웬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관우는 손을 저었다.
"아니오,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났는데 어찌 반갑지 않겠소?"
그 말에 보정은 합장하며 말했다.
"소승이 법당으로 모시겠습니다. 법당에서 차 한 잔 하시지요."
관우는 고개를 저었다.
"두 분 부인께서 수레에 계시니 먼저 차를 드리는 게 좋겠소이다."
보정은 다른 중들에게 수레로 차를 보내라고 지시한 후 앞장서서 법당으로 향했다. 보정은 법당에 오르기 전 은밀히 좌우를 가리키며 눈짓을 했다. 관우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시종에게 명했다.
"가서 병기를 가지고 오너라."
시종이 마당에 묶어 두었던 적토마로 달려가 말 옆구리에서 장도를 가져다 바쳤다. 그것을 본 변희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관우와 변희가 법당에 마주앉자 보정은 차를 가져오겠노라며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 그는 다시 한 번 관우에게 은밀히 눈짓을 보냈다.
관우는 눈을 내리깔며 내심 중얼거렸다.
'불상 뒤에 두 놈, 휘장 뒤에 네 놈이 숨어있군.'
그는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날 접대하는 것이 진심인가, 아니면 흉계인가?"
변희는 전신의 피가 식는 것을 느끼며 안색이 변했다. 그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관우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외쳤다.
"내 널 친구로 알았는데 감히 함정을 파두었단 말이냐?"
변희는 자신의 흉계가 발각됐음을 느끼고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죽여라!"
순간 관우의 손에서 장도가 수평으로 뻗어나가며 뇌전과도 같은 도광을 뿜어냈다. 도광은 휘장을 단번에 갈라버렸고, 휘장 뒤에 숨어있던 4인의 살수가 허리가 양단된 채 고꾸라졌다. 그때였다.
"죽어랏!"
불상 뒤에서 다시 두 인영이 뛰쳐나오며 관우의 등을 공격했다. 하지만 관우는 등에도 눈이 달린 듯 보지도 않고 장도를 휘둘렀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개의 수급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서라!"
관우는 육중한 신형을 날렸다. 어느 틈에 변희가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관우는 변희를 바짝 추격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3장 정도로 좁혀졌다. 그때였다. 변희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무엇인가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쇠사슬로 연결된 유성추였다. 관우는 눈을 부릅떴다. 좁은 복도에서 피할 공간이라곤 없었다. 더구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순간 그의 좌장(左掌)이 유성추를 향해 뻗어 나갔다.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유성추는 장력을 맞고 튕겨나갔다. 변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육장(肉掌)으로 중병기인 유성추를 맞받아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였다. 이마 위로 눈부신 도광이 떨어졌다.
"가거라."
관우의 침중한 음성이 고막을 울렸다. 그것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음성이었다. 그는 정확히 이마에서 사타구니까지 양단되고 말았다.
관우는 다시 신형을 날렸다. 그가 법당 뒤편으로 돌아갔을 때 수백 명의 무사들이 감, 미 두 부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사자후와도 같은 외침에 무사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관우가 한꺼번에 4~5장을 날아오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한 나머지 우르르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관우가 내려서자 두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관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변희에게 속아 당할 뻔했던 것이다. 잠시 후 보정이 다가와 합장을 했다.
"변희가 살수들을 매복시킬 때만 해도 누굴 죽이려하는지 몰랐습니다. 그게 설마 관공일 줄이야, 아미타불......."
관우는 공손히 포권했다.
"스님이 아니었다면 불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보정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인 게지요. 그나저나 소승도 더 이상 이곳에 있기가 힘들게 됐으니 의발을 가지고 여행이나 갈까 합니다. 공께서도 모쪼록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관우는 거듭 사례한 후 수레를 호위하여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