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떠났구나!"
조조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는 관우의 고별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가 그토록 붙잡아두려 했건만 결국은 유비를 찾아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넋을 놓고 있는데 북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로부터 급보가 전해져왔다.
"관공이 수레를 몰고 빠져나갔습니다!"
조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때 채양(蔡陽)이 격분하며 외쳤다.
"제가 당장 달려가 놈을 잡아오겠습니다!"
조조의 측근들이 관우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대체로 반반이었다. 한쪽은 관우의 고고한 인품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다른 쪽은 조조의 지나친 총애로 인해 반감을 품고 있었다. 채양도 반감을 품고 있는 무리 중의 하나였다. 채양의 말에 중인들이 일제히 조조를 바라보는데, 조조가 탄식을 흘려냈다.
"운장의 옛 주인에 대한 의리가 이리도 절절하니 장부 중의 장부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진퇴를 알고 매사에 사리마저 분명하니 어찌 그를 미워하겠는가?"
그러자 정욱이 나서서 간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운장은 주공의 후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떠나버렸으니 이는 주공을 무시하는 처사이옵니다. 더구나 그가 원소에게라도 가버리면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니 당장 쫓아가 제거해야 합니다.
조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전일에 그와 언약한 적이 있는데 이제 와서 번복할 수는 없는 일이네."
그는 장요를 돌아보며 말했다.
"운장은 황금을 돌처럼 여길 뿐더러 무후의 인마저 버리고 떠났네. 이는 재물로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권력으로도 잡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네. 이런 사람을 어찌 공경하지 않겠는가?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 그대가 쫓아가 잠시 붙들어 두도록 하시오. 작별의 인사도 할 겸 그에게 노자와 선물을 건네줘야겠소."
"알겠습니다. 주공."
조조의 마음을 이해하는 장요는 복명하고 홀로 말을 타고 관우를 쫓아갔다. 그가 떠난 직후 조조도 수십 기의 인마만을 대동한 채 출발했다.
장요는 얼마 안가 관우를 따라잡았다. 관우는 수레를 호송해야 하는 처지라 빨리 달릴 수 없었던 것이다.
"운장은 게 서시오!"
관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만치서 장요가 달려오는 것을 본 그는 시종들에게 먼저 가라 이르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대는 날 막으려고 온 것이오?"
관우는 다리 위에서 말을 멈춘 후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물었다. 장요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올시다. 주공께서 전송이라도 하시겠다며 잠시 머물러 달라는 부탁을 하셨소이다."
관우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사 조대공이 천군을 거느리고 달려온다 해도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겠소."
잠시 후 급촉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수십 기의 인마가 나는 듯이 달려왔다. 앞장 선 자는 조조였으며 그의 뒤에는 허저, 서황, 우금, 이전 등의 모습이 보였다.
조조는 관우가 다리를 가로막고 서있는 것을 보고 수하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후 혼자 말을 타고 다리 위로 올라왔다.
"운장은 왜 그리 급히 떠나는 것이오?"
관우는 조조 일행이 모두 병장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상에서 몸을 굽혔다.
"옛 주인이 계신 곳을 알았으니 떠나는 것입니다. 요 며칠간 대공을 뵙고 말씀드리려 했지만 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서신으로 고별인사를 대신했던 것입니다. 대공께서는 설마 전일의 언약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조조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어찌 한 입으로 두 말 하겠소? 다만 그대가 떠난다니 섭섭한 마음에 노자나 보탤까 하여 쫓아온 것이오."
조조가 손짓하자 수하 한 명이 황금을 접시에 받쳐서 관우에게 올렸다.
"수차에 걸쳐 대공의 은사를 입었는데 어찌 또 받겠습니까?"
관우가 완곡히 거절하자 조조는 탄식하며 말했다.
"정말 섭섭하구려. 그럼 한 벌의 비단옷이나마 작은 성의로 알고 받아 주겠소?"
관우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수하가 비단옷을 그에게 받들어 올렸다. 관우는 잠시 망설이다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청룡언월도로 비단옷을 걸어 올렸다.
"그동안의 후의를 관모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대공께서도 강녕하시길......."
관우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말머리를 돌려 곧바로 북쪽을 향해 달렸다. 그 광경을 본 조조의 휘하 고수들은 일제히 노성을 터뜨렸다.
"저런 무례한 놈이 있나!"
"당장 쫓아가 쳐 죽입시다!"
조조는 손을 저어 수하들을 저지했다.
"그만 두게. 운장은 한 사람이요 우리는 수십 인이니 그럴 만도 하네. 기왕에 보내주기로 했으니 이만 돌아가세."
조조는 연방 탄식을 내쉬며 아쉬운 듯 말머리를 돌렸다.
한편 관우는 조조와 헤어져 30여 리를 달려갔지만 어찌된 셈인지 감, 미 두 부인을 실은 수레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사방으로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한 언덕에 이르렀을 때였다.
"거기 계신 분이 관운장, 관공이 아니십니까?"
문득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관우가 고개를 돌려보니 한 청년이 100여 명의 무리를 거느린 채 언덕 위에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청년이 탄 말 옆구리에는 피가 뚝뚝 흐르는 누군가의 수급이 매달려 있었다.
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청년은 말에서 뛰어 내려 무릎을 꿇었다. 두 부인의 행방을 알지 못해 초조할 대로 초조해져 있는 관우는 청년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추궁했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느냐?"
청년은 비로소 고개를 들며 공손하게 말했다.
"소생은 양양(襄陽)의 무명소졸인 요화(寥化)라고 합니다. 보잘 것 없는 무예로 흑도에 몸담아오고 있으나 관공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