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별반 놀라지도 않고 명을 내렸다.
"모두 말을 풀어놓고 쉬도록 하라."
조조는 직접 손가락으로 몇 군데 방향을 가리키며 휴식할 곳을 지정해주었다. 잠시 후 문추의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조조의 가신들과 수하들은 불안을 금치 못했다.
"적이 코앞에 다다랐습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몇몇 인물들이 앞 다퉈 말하자 순유가 혀를 차며 말했다.
"퇴각이라니? 이게 바로 유인전술인줄 모른단 말이냐?"
그 말에 조조가 순유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 감아보였다. 순유는 그의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와아......!"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문추는 막대한 양곡을 빼앗았을 뿐더러 조조의 무사들이 휴식을 취하느라 풀어놓은 말까지 얻게 되자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의 수하들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잡기위해 함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달려가고 있었다.
둥둥둥......!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더니 사방으로부터 조조의 무리가 새까맣게 몰려왔다. 문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함정에 빠졌구나!'
하지만 그가 깨달았을 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대오는 엉망으로 흐트러져있어 조조의 총공세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고함을 쳐도 영은 전달되지 못했고, 수하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문추는 노성을 발하며 조조의 무사들을 맞아 좌충우돌하며 싸웠다. 반면 그의 수하들은 서로 먼저 달아나려고 동료들을 밀치며 허둥대는 바람에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조조는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문추를 잡아오겠느냐?"
장요와 서황이 일제히 복명하며 달려 내려갔다.
"이놈 문추야! 거기 서라!"
수하들과 함께 달아나던 문추는 마상에서 몸을 틀었다. 그는 두 사람이 추격해 오는 것을 보고 말허리에서 철궁(鐵弓)을 꺼내 쏘았다.
앞장 서 달리던 장요는 화살이 날아오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곧바로 날아온 두 번째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뺨을 스치고 말았다.
"윽!"
장요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문추는 말머리를 돌려 장요를 죽이기 위해 달려왔다.
"이놈! 나와 싸우자!"
뒤따라 달려온 서황이 도끼를 휘두르며 그를 가로막았다. 그의 필살부(必殺斧)는 태산과 같은 기세로 문추를 휩쓸었다. 그러나 문추 또한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는 말안장에 매달고 있던 창을 꼬나 잡고 눈부신 창술을 전개했다.
몇 합이나 어울려 싸웠을까? 달아났던 문추의 수하들이 벌 떼처럼 몰려오는 바람에 서황은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 간신히 장요를 구해낸 뒤 달아나고 말았다.
"서라!"
문추는 수천 명의 수하들과 함께 강변을 따라 두 사람을 추격했다. 그런데 홀연히 측면으로부터 10여 기의 인마가 달려왔다.
"멈춰라!"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에 놀란 문추가 고개를 돌리니 2자가 넘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안색이 대춧빛처럼 붉은 사나이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저놈은......?'
문추는 가슴이 섬뜩했다. 상대가 안량을 단칼에 죽인 관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관우가 달려들자 그는 본능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두 개의 병기가 부딪치며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문추는 손목이 시큰해 하마터면 창을 떨어뜨릴 뻔했다.
두 사람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3합을 교환했다. 문추는 정신이 아뜩해지고 있었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휘두를 때마다 먹구름 속에서 번갯불이 떨어지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창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할 뿐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강한 자가 있다니......!'
문추는 혼신의 힘으로 창을 한 번 휘두른 후 말머리를 돌려 내빼기 시작했다.
"서라, 이놈!"
뒤에서 호통소리가 울렸다. 문추는 관우를 이길 수는 없어도 도망칠 수는 있다고 믿었다. 최소한 몇 마신(馬身)의 거리는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관우의 말은 천하의 명마 적토마였다. 적토마는 단지 두 차례 껑충 뛰어 문추를 따라잡았고, 그 순간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원을 그리며 문추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관우는 문추를 죽인 후에도 적진 속으로 뛰어들어 동충서돌(東衝西突)하며 무수한 수급을 베었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시신이 즐비하게 널렸으며 피는 흘러서 내가 되었다.
관우가 한참을 싸우고 있는데 황하 건너편으로 유비가 이끄는 3만 무사들이 당도했다.
"이번에도 얼굴이 붉고 수염이 긴 작자가 문공을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유비는 수하들의 보고를 받고 황망히 말을 달려 언덕 위로 올라갔다. 과연 강 건너에서 한 사나이가 필마로 나는 듯이 싸우고 있는데 멀리서 봐도 관우가 틀림없었다.
'오오!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유비는 가슴이 뭉클해진 나머지 하늘을 향해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관우에게 소식을 전할까 궁리했다. 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없다. 조조의 대군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금방이라도 강을 건너 공격할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단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