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안량은 참으로 무서운 고수로구나!"
이때 송헌과 더불어 귀순한 위속(魏續)이 분연히 말했다.
"저놈이 친구를 죽였으니 복수해야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조조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가라. 부디 송헌의 한을 풀어주도록 해라."
위속은 나는 듯이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그는 안량의 진영 앞에 당도하여 칼을 흔들며 외쳤다.
"안량아!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안량은 대답 대신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이 탄 말이 부딪칠 듯 마주쳤다가 스쳐지나갔다.
"케에에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핏빛 무지개가 일어났다. 위속은 두 동강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안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머리를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위속의 허망한 죽음에 조조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으음! 이제 또 누가 안량에게 맞서겠는가?"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서황이 거부(巨斧)를 둘러메고 나섰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서황이라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서황은 안량과 맞붙어 치열한 격전을 벌였으나 20여 합 만에 쫓겨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기대했던 서황마저 패하자 조조 측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조조는 공격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안량 역시 두 번의 싸움에서 만족했는지 진영을 지키기만 했다.
'허허! 안량 하나를 상대할 만한 고수가 내게는 없단 말인가?'
조조는 막사 안을 서성이며 혀를 찼다. 그때 정욱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안량을 능히 이길만한 인물이 있습니다."
조조는 귀가 번쩍 뜨였다.
"오, 그게 누구요?"
"운장이 있지 않습니까? 그라면 능히 안량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건 안 되네. 공을 세우면 내 곁을 떠날게 아닌가?"
정욱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유비가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을 것입니다. 운장이 안량을 죽이면 원소는 홧김에 유비를 죽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운장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조조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
조조는 전령을 허도로 보내 관우를 데려오도록 했다. 얼마 후 관우가 당도하자 그는 술자리를 베풀며 말했다.
"송헌과 위속이 안량의 손에 죽었고 믿었던 서황마저 패하고 말았소. 웬만하면 공을 청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구려."
관우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불초가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조조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장이 보니 벌써 근심이 다 사라졌소이다."
이때 밖에서 급보가 전해졌다.
"안량이 싸움을 걸어옵니다!"
조조는 몸을 일으켰다.
"갑시다. 놈을 살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소."
조조는 관우와 함께 언덕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들판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자 서황을 비롯한 조조의 수하들이 빙 둘러쌌다.
"저들이 하북(河北)의 무리요. 참으로 대단하지 않소?"
조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들판에는 10만이 넘는 무리들이 방대한 진영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검기치가 햇살에 번쩍이는 것이 가히 장관이었다.
관우의 입에서 조소가 흘러나왔다.
"제가 보기에는 한낱 토우(土偶)들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조조는 물론 주위 사람들은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원소의 10만 무사들을 한낱 흙덩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다니! 듣는 사람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저 자가 바로 안량이오."
조조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관우의 입가에 냉소가 맺혔다.
"제 눈에는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고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조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관우가 아무리 대단한 무예를 지녔다한들 자만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너무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오. 안량으로 말할 것 같으면......."
관우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음성을 높였다.
"윤허해 주시면 당장 가서 안량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보다 못한 장요가 따끔하게 충고했다.
"군중에서는 허언을 용납지 않는 법이오. 운장은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관우는 힐끗 그를 쳐다본 후 적토마에 올랐다. 청룡언월도를 비껴 잡은 채 봉황의 눈을 부릅뜨고 누에 눈썹을 치켜세우고 있는 그의 모습은 가히 전신(戰神)을 방불케 했다.
"이랴!"
일갈(一喝)과 함께 관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중인들이 놀라 언덕 아래를 내려보니 적토마는 벌써 적진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앗!"
원소의 무리는 태양을 뭉갤 듯한 기세로 달려오는 적토마를 보고 기겁했다. 미처 막거나 피할 사이조차 없이 진영의 일각이 무너지고 말았다. 청룡언월도가 섬광을 뿜어내는 순간 절단된 수급과 사지(四肢)가 사방으로 날아갔고, 폭풍우에 휩쓸린 갈대밭처럼 길이 열렸다.
안량은 비단 차양 아래 편히 앉아 있던 중 일각에서 소란이 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
한 필의 붉은 말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마상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을 때는 이미 면전에 당도한 후였다. 햇살아래 청룡언월도가 번뜩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