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이잉!
느닷없는 광풍에 선두의 진세가 흐트러지며 여기저기서 말울음소리, 무사들의 비명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뿐만 아니라 기치가 찢어질 듯 휘날리며 흙먼지가 회오리쳤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조조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의 주변에서 수십 개의 기치가 부러져 나갔다.
"멈춰라!"
조조는 행렬을 멈추게 했다. 모사들이 모여들자 그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기치가 다 부러졌소.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구려."
조조는 천기(天機)를 그다지 믿지 않는 위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왠지 마음에 걸렸다. 모사 순욱이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보더니 말했다.
"동남풍이 불고 있습니다. 기치가 부러진 것은 갑작스런 돌풍(突風) 때문입니다."
조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소. 잠시 행군을 멈추는 것이 좋겠소."
순욱은 문득 신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의 뜻이 주공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아무래도 오늘밤 유비가 기습을 해올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조조의 눈빛이 번쩍 빛을 발했다.
"오호라!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공의 말이 맞소. 놈은 오늘밤 반드시 기습할 것이오."
조조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비의 성세는 그에 비한다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군이 소패에 이르기까지 유비는 화의를 청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야한다. 조조는 그것이 원소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원소 측에 첩자를 심어 놓았지만 아직까지 원소가 출병한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밤 유비가 습격할 테니 단단히 준비하여 놈을 사로잡읍시다."
조조는 명을 내려 무사들을 9대로 나누었다. 그는 그 중 1대만 전진하여 진영을 설치하도록 했다. 나머지 8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배치하여 선두의 진영이 기습받으면 8방으로부터 동시에 압박하도록 진세를 구축했다.
밤이 되자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 사위가 온통 어둡기만 했다.
유비는 무사들을 2대로 나누어 자신과 장비가 지휘하고 소패는 손건이 남아서 지키도록 했다. 그는 날이 흐린 것을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네는 먼저 조조의 진영을 야습하도록 하게. 저들의 진영에서 불길이 오르면 내가 밖에서 외응하겠네."
"알겠소이다. 형님."
장비는 수하들을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는 얼마 전 척후병을 통해 조조가 진영을 구축한 곳을 미리 알아두었으므로 곧바로 적의 진영 속으로 뛰어들었다.
"으핫핫핫핫! 조조는 어디 있느냐? 썩 나와라!"
장비는 장팔사모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조조의 진영을 누볐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소문으로는 20만이 넘는 대군이라 들었는데 어째 적의 진영이 이리도 휑뎅그렁하단 말인가?
"와아아......!"
그의 수하들은 함성을 지르며 조조의 진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쪽에서는 이렇다할 저항이 없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활을 쏘아대기만할 뿐, 그것도 20만 대군의 위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장비가 황당해하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길이 확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빗발치듯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사방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무수한 인마들이 달려왔다.
'아차! 함정에 빠졌구나!'
후회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조조가 사전에 빼두었던 8대의 인마들이 동시에 밀려드니 장비의 수하들은 당황하여 혼백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조대공께서 친히 오셨다! 항복하는 자는 살고, 반항하는 자는 구족을 멸할 것이다!"
조조의 수하들은 일제히 소리치고 있었다. 장비를 따르는 무사들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 허도에서 온 무리들로, 원천적으로 조조의 수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세가 기울자 앞 다퉈 병장기를 내던지며 항복하고 있었다.
"이,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장비는 치를 떨며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덧 그의 주위에는 수하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말을 몰아 동쪽으로, 서쪽으로 치달리며 앞을 가로막는 자는 닥치는 대로 목을 베었다.
가슴 가득 치미는 울분을 토로하기라도 하듯 장팔사모가 휘둘러지는 곳에서는 광풍이 일고 혈우(血雨)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천하제일의 고수라고 해도 어찌 수십만의 무사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장비는 대세가 완전히 기울었음을 느끼고 혈로를 뚫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더구나 얼마 후에는 그가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유비가 달려올 것이 아닌가. 그는 이를 악물고 포위망을 뚫고 나갔다.
간신히 포위를 뚫고 보니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고작 수십 기에 불과했다.
"일단 소패로 돌아가자!"
그는 서둘러 소패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얼마 후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조의 대군이 길목을 막아버린 것이다. 마침 구름 속에 숨어있던 달이 고개를 내미는 바람에 그는 전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헉! 까맣게 뒤덮고 있군!'
장비는 간담이 써늘해지고 말았다.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무리들이 들판을 온통 시커멓게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있지 않는 한 그들을 뚫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비는 한숨을 쉰 후 말머리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망탕산이 있으니 일단 그곳으로 가서 숨을 돌리자.'
결국 장비는 몇 안 되는 수하들과 함께 망탕산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