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가는 거침없이 말했다.
"원소는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그의 모사들은 다투기만 할 뿐 의견이 모이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비는 이번에 겨우 서주를 장악했지만 아직 수하들을 완전히 정비하지 못했으므로 주공께서 친히 출병하시면 능히 멸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안색을 활짝 폈다.
"역시 곽공이오. 내 생각도 그와 같소!"
며칠 후 조조는 몸소 20만 명의 무사들을 거느리고 서주로 향했다. 그는 무사들을 다섯 방향으로 나누어 동시에 서주를 압박하기로 했다.
유비는 손건으로부터 다급한 전갈을 받았다. 조조가 직접 대군을 몰고 서주를 치러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불과 5만의 병력으로 조조의 20만 대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유비는 손건을 원소에게 보내 원군을 요청하도록 했다.
손건은 자신에게 서주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절감했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는 원소의 모사 전풍을 만나 사정 얘기를 하고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전풍은 쾌히 수락하고 그를 원소에게 데려가 알현하도록 했다.
손건은 원소를 만나 유비의 서신을 전달했으나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원소의 안색이 초췌할뿐더러 눈빛도 흐리멍덩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풍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공께서는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원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도 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네."
전풍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원소는 허탈한 듯 태사의에 기대며 말했다.
"내 슬하에 아이를 다섯 두었으나 그 중에서도 막내를 가장 아꼈었네. 그런데 하필 그 아이가 중병이 들어 다 죽게 되었으니 내가 오래 살아 무엇 하겠는가?"
원소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손건이 바친 서신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옆으로 치워버렸다. 전풍은 보다 못해 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조조가 대군을 일으키느라 허도가 텅 빈 상태입니다. 이때 주공께서 무사들을 일으켜 허도를 치고 무황성을 탈환한다면 능히 대업을 이룩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얻기 힘든 기회니 부디 영단을 내리십시오."
원소는 고개를 저었다.
"나 역시 좋은 기회라는 것은 알고 있네만 마음이 심란하여 썩 내키지가 않네."
전풍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반문했다.
"무엇이 그리 심란하단 말씀입니까?"
원소는 한숨을 쉬었다.
"다섯 아이 가운데 유독 그 아이가 가장 영특하여 장차 후사를 잇게 할 생각이었네.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나면 대업이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설사 황금의 산을 얻는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네."
원소는 여전히 손건이 서있는 것을 보고 미안한 듯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 유공에게 내 사정을 전하시오. 만의 하나 일이 여의치 않게 되면 내게로 오라고 하시오. 내 힘닿는 데 까지는 도와주겠소."
원소는 그 말을 끝으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전풍은 손건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안타까운 나머지 땅을 치며 탄식했다.
"아깝도다! 아까워! 이런 절호의 기회를 한낱 어린애의 병으로 놓치고 말다니……. 아아! 이로써 대세는 기울어 버리고 말았구나!"
손건은 더 머물러 있어봐야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밤을 새워 소패로 돌아가 유비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손건의 말을 전해들은 유비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중얼거렸다.
"일이 이렇게 되다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비가 풀이 죽은 채 연신 한숨만 내쉬자 보다 못한 장비가 나서더니 호탕하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홍수가 오면 흙으로 막고, 군사가 몰려오면 장수로 막으면 된다고 하지 않소?"
유비는 탄식하며 말했다.
"홍수도 홍수 나름이다. 우리 힘으로 조조의 대군을 무슨 수로 막겠느냐?"
"조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먼 길을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쳤을 거요. 그러니 놈들이 오는 길을 중도에서 끊고 선공을 가하면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외다."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는 법이다. 유비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본래 널 일개 용부로만 알았는데 지난번 유대를 잡을 때 계교를 쓰는 걸 보고 놀랐다. 네 말이 맞다. 병법을 잘 쓰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화를 피할 수 없다면 반대로 적극적으로 부딪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유비는 조조의 대군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선공하기로 마음먹고 장비와 함께 군사를 나누어 공격할 채비를 차렸다.
한편, 조조가 이끄는 무사들은 일로 진격하여 소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선두에서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조조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숙원이던 유비의 몰락이 목전에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렇듯 유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그와 유비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기가 깊고 결단력과 지도력이 뛰어난 반면 유비는 우유부단하며 수하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면모를 보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유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었으니, 그토록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부활한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그 점을 애써 무시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천하를 차지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유비를 제거해야한다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기다려라, 귀 큰 놈. 이제 네놈이 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마상에서 소패 방면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