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한 놈이로다!"
조조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길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신을 치우게 한 후 이번에는 진경동을 불렀다.
"그대는 이 자가 누군지 알겠소?"
동승은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는 안면을 경련시키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날 배신했단 말이냐!"
진경동은 잠시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해버렸다. 조조는 은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제 더 이상 부인하지 않으리라 믿소만?"
동승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대공은 어찌하여 도망친 종놈의 말만 믿는 것이오? 놈은 간통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오."
조조의 눈에서 살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그는 으스스한 음성으로 물었다.
"왕자복 등의 무리가 이미 다 자백했거늘 그래도 네가 발뺌을 한단 말이냐?"
동승은 눈을 감아버렸다. 이젠 다 틀렸구나하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부인해봤자 믿어줄 조조도 아니요, 자신도 더 이상 구차스럽게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조조는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저 자를 끌어내라!"
동승이 끌려간 후 조조는 무사들을 시켜 집안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얼마 후 서실에서 무황 유협이 피로 쓴 밀조와 함께 동승 등이 서명한 연명부가 발견되었다.
조조는 밀조를 읽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무황성을 복원해주고 목숨을 연명케 해주었더니 날 모해하려했단 말인가!'
그는 이번 기회에 무황을 폐해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사들을 긴급 소집했다.
"모든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났소이다. 만일 유협을 계속 무황의 자리에 앉혀둔다면 천하인들이 날 바보로 여길 것이오. 차제에 그를 폐위시키고 다른 자를 발탁하는 것이 어떻소?"
그 말에 정욱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경위로 보아서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신중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조조의 얼굴에 불쾌한 빛이 드러났다.
"무엇을 신중히 생각한단 말인가?"
"주공께서 덕과 위엄을 만천하에 떨치게 된 것은 성세가 무림을 뒤덮고 있으면서도 몸을 낮춰 무황을 모셔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은 도처에 호웅들이 도사리고 있고 주적들도 평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무황을 폐위하면 반드시 난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조조는 여전히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언제까지 저들의 눈치를 보고 살란 말인가?"
"천하를 얻는 일입니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조조는 눈을 감았다. 가슴 속에는 열화처럼 분노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으나 정욱의 말이 백번 지당했다. 지금까지도 참아왔지 않은가? 한 번 더 참는다고 대세가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는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좋소.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 단, 이번 음모에 가담한 자들은 가차 없이 참수하여 날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본보기로 삼겠소."
오호통재(嗚呼痛哉)라!
허도에 피바람이 불었다. 조조를 시해하기 위해 연명부에 서명했던 자들이 줄줄이 참수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 식솔, 하인들에 이르기까지 한 명도 남김없이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밖에서 참수된 숫자는 무려 700명이 넘었다. 그들의 시신은 들판에 버려져 들개나 까마귀의 밥이 되었고, 그들의 목은 사람들이 오가는 저자에 효수되어 행인들의 간담을 써늘케 했다.
개중에는 몰래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으나 감히 드러내놓고 조조의 행위를 비난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끌려가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조조의 분노는 그것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무황의 제2부인인 동귀비가 동승의 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무사들을 이끌고 무황전으로 뛰어 들어가 동귀비를 끌어냈다.
무황 유협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음은 물론, 무황후까지도 맨발로 달려 나와 조조에게 용서를 빌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조는 동귀비를 성밖으로 끌어내 목을 매달아 죽여 버렸다. 당시 동귀비는 임신 4개월의 몸이었다.
조조는 3천명의 무사를 동원해 무황전을 겹겹이 포위한 후 조홍에게 말했다.
"앞으로 무황의 외척은 물론 종친이라 할지라도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무황전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
조홍은 그의 사촌이므로 그가 신임할만한 위인이었다.
"염려 놓으십시오. 개미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조조는 매사를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울러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는 정욱을 불러 말했다.
"이번에 동승을 비롯한 반대파들을 제거하긴 했으나 아직 마등과 유비가 살아있으니 그들을 쳐 없애야하지 않겠소?"
"마등은 서량에서 적지 않은 무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도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글을 보내 그를 위로하여 의심을 풀게 한 후 허도로 끌어들여 제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비도 서주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므로 경솔히 출병할 일이 아닙니다."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앉아 있어야한단 말인가?"
"원소를 경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무사들을 배치해 놓고 허도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 유비를 치기 위해 출병하면 그 자는 반드시 허도를 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조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유비는 비범한 놈이라 지금 치지 않으면 장차 큰 화를 불러일으킬 놈이오. 원소는 강성하기는 하나 의심이 많아 감히 허도를 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부러 근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두 사람이 이렇게 의논을 하고 있는데 마침 곽가가 들어왔다.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구했다.
"유비를 치자니 원소란 놈이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도 없는 일이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