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조조는 노성을 내질렀다. 서주에서 허도로 돌아온 유대와 왕충 두 사람이 한결같이 유비를 비호하며 그가 배반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놈들의 목을 당장 쳐버려라!"
두 사람의 안색은 흙빛이 되고 말았다. 유비에게 잡혀 죽었구나 싶었는데 살아났고, 다시 장비와 관우가 짜고 벌인 연극 탓에 혼백이 반쯤 달아나 있었던 터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들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두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그런다고 조조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꼴도 보기 싫다! 어서 끌어내 목을 쳐라!"
그때였다. 공융이 나서며 조용히 간했다.
"고정하십시오. 주공."
"방금 저놈들이 한 말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대체 누구의 편을 들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저 두 사람은 본래부터 유비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참해버린다면 수하들의 마음을 잃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
조조는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분노를 삭였다. 유대와 왕충을 내려보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노기가 들어있었으나 공융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음을 느끼는 듯 했다.
"좋다! 목숨만은 살려주마. 하지만 과(過)를 그대로 두면 장령이 서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의 모든 직책과 봉록을 폐하겠다. 차후 공을 세워 회복하도록 하라."
"화, 황공하옵니다!"
유대와 왕충은 목숨만이라도 건지게 된 것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연신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절을 한 후 물러났다. 두 사람이 물러난 후에도 조조의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교활한 유비 놈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지금 당장 놈을 치러 가야겠다."
공융이 다시 그를 만류했다.
"유비를 도모하는 일은 언제라도 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엄동설한이라 무사들을 일으키는 것은 무립니다. 그 보다는 장수와 유표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조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수와 유표를?"
"사람을 보내 그들을 귀순하도록 종용해 보십시오. 필히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그들을 끌어들인 후에 서주를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장수와 유표는 모두 서주와 인접한 곳에 터를 잡고 있는 호웅들이다.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서주를 공략하기는 한결 수월할 것이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의 말이 일리가 있소."
공융은 고개를 숙였다. 한때 조조와 더불어 동탁을 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한 북해의 호웅 공융은 어느새 조조의 모사로 전락해 있었다.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조조는 유엽을 보내 장수부터 설득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소임을 받은 유엽은 장수가 장악하고 있는 곳에 도착한 후 일단 가후부터 만나기로 했다. 가후는 장수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모사이므로 그부터 설득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조조에 대한 칭송의 말을 꺼내놓기 무섭게 가후가 말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공은 저의 주공에게 귀순을 종용하러 오지 않으셨소?"
유엽은 깜짝 놀라 할 수 없이 자신의 임무를 털어놓았다.
"바로 맞추셨소이다. 조대공께서는 장공의 귀순을 원하시오. 그동안의 과거지사는 깨끗이 잊고 천하대사를 함께 도모하자는 것이외다."
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일단 저의 집에 잠시 머물고 계시오. 제가 주공을 잘 설득해 보겠소이다."
유엽은 가후의 말에 일이 순조롭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가후는 장수를 찾아가 유엽이 찾아온 목적에 대해 얘기했다. 장수는 신음을 발했다.
"으음, 조조가 귀순을 종용한다고?"
한때 그와 조조는 원수가 되어 싸운 사이였다. 더구나 조조는 그의 형수인 추씨 부인을 농락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가후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금의 천하형세를 살펴보면 고립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기왕에 조조가 먼저 화의를 보내왔으니 한번 생각해볼 만한 일입니다."
장수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과연 서로 간에 칼을 겨누었던 사이였는데 한편이 될 수 있을까? 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이번에는 원소로부터 사자가 왔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그는 의아해하면서 사자를 불러들였다.
사자는 원소의 서신을 그에게 받들어 올렸다. 서신을 읽어보니 자신에게 귀순하라는 내용이었다. 장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서신을 가후에게 넘겨주었다.
가후는 서신을 단숨에 읽은 후 날카로운 눈으로 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근자에 조조와 싸웠다고 들었는데 승부가 어찌 되었소?"
사자는 움찔하며 대답했다.
"양측이 대치하던 중 엄동설한이 닥쳐와 서로 간에 싸움을 파하였습니다."
가후는 재차 반문했다.
"그럼 싸워보지도 못했단 말이오?"
사자는 가후의 시선에 거북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주공께서는 장대공과 형주의 유대공께서 대영웅의 풍모를 갖고 계시다며 특별히 청하시는 것입니다. 두 분께서 주공께 귀순하면 조조를 물리친 후 함께 영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가후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 원공께 전해 주시오. 천하를 경략하려는 사람이 제 형제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데 어찌 다른 영웅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이오?"
그 말에 사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가후는 서신을 갈가리 찢어버리며 꾸짖었다.
"이놈! 당장 떠나지 않으면 목이 온전치 않을 것이다!"
사자는 가후의 서슬에 질려 달아나버렸다. 장수는 가후의 행동에 놀라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원소가 조조보다 강하지 않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가?"
가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야 조조를 따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