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배와 왕충은 서주에 당도했으나 섣불리 싸우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조의 기호를 진영에 내건 채 진군하지 않고 오직 조조의 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비는 오랫동안 상대방이 쳐들어오지 않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왜 공격하지 않는 것이지?"
상대의 진영에서 조조의 기호가 휘날리는 것을 보면 분명 조조가 와있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의심이 들었다.
"사람을 보내 내막을 알아봐야겠소."
그가 막 밀정을 보냈는데 마침 유대와 왕충은 조조로부터 유비를 치라는 명을 사자로부터 전달 받았다. 두 사람은 막사에 모여 상의했다.
"주공께서 유비를 치라고 하시니 자네가 먼저 공격하게."
유대의 말에 왕충이 반발했다.
"주공께서 자네를 대장으로 삼았으니 자네가 먼저 나서게."
유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대장이니 중군을 거느리고 자네가 선봉이 돼야 하지 않나?"
왕충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소? 그럼 우리 함께 칩시다."
두 사람은 서로 먼저 나서기를 싫어하여 티격태격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 왕충이 선을 잡아서 할 수없이 먼저 공격하게 되었다. 왕충은 자신이 없었지만 무사 절반을 거느리고 유비를 치기 위해 나섰다.
유비는 왕충이 진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등을 청해 의논했다.
"원공이 여양에 진을 치고 있으나 모사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싸우려 들지 않는다고 하오. 게다가 조조는 행적이 분명치 않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특히 여양에는 조조의 기호가 없고 이곳에 그의 기호가 나부끼고 있으니 대체 무슨 수작인지 모르겠소이다."
진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조조는 궤계(詭計)가 백출한 작자입니다. 필경 대군이 있는 여양을 중히 여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기호를 세운 것은 허장성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이곳에는 조조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유비는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러하오."
그는 관우와 장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나가서 허실을 알아오겠느냐?"
장비가 즉각 나선다.
"내가 가겠소이다."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성미가 급해서 안 된다."
장비가 울컥하며 말했다.
"조조가 있다면 잡아오면 될 것 아니오!"
"그럼 제가 가겠소이다."
관우가 나서니 비로소 유비의 안색이 펴졌다.
"운장이 간다면 내 마음을 놓겠네."
결국 관우가 3천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서주를 나섰다.
마침 초겨울이라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양 진영은 눈을 무릅쓰고 마주치게 되었다. 관우는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왕충이 마주 나오며 꾸짖는다.
"조대공께서 오셨는데 너는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는 것이냐?"
관우는 눈보라 속에서 펄럭이고 있는 조조의 기치를 보았다. 그는 음성을 돋워 외쳤다.
"그럼 조대공께서 직접 나오시라고 해라. 내가 할 말이 있다!"
왕충은 흠칫하며 외쳤다.
"대공께서 어찌 너 따위를 직접 만나러 오신단 말이냐?"
관우는 노성을 지르며 왕충을 향해 말을 달려갔다. 왕충도 지지 않고 마주 달려왔다. 그런데 두 말이 어우러지기도 전에 갑자기 관우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이놈! 어딜 달아나느냐!"
왕충은 기고만장하며 관우를 추격해갔다. 하지만 관우는 대꾸조차 않고 계속 달아나 언덕 모퉁이를 돌았다. 왕충이 추격하기 위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별안간 관우가 달려들었다. 그는 달아나는 척하면서 모퉁이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왕충은 아차 했지만 후회해도 늦은 일이었다.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눈보라를 가르며 공격하자 그는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신히 몇 초를 받아넘기곤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려는데 관우가 칼을 왼손으로 옮기더니 오른손을 뻗어 금나수법(擒拿手法)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억!"
왕충은 독수리에 채인 병아리마냥 꼼짝도 하지 못하고 번쩍 들려지고 말았다.
"핫핫핫......!"
관우는 그의 혈도를 찍어 옆구리에 낀 채 본진으로 돌아왔다. 왕충의 수하들은 그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관우가 왕충을 사로잡아오자 유비는 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누구이며, 어떤 직책이기에 감히 조대공을 사칭하는 것이냐?"
왕충은 완전히 겁에 질려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어찌 조대공을 사칭하겠습니까? 그저 대공께서 허장성세를 취하라 하시기에 명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실상 대공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유비는 짐작이 맞았음을 느끼고 그를 가두어버렸다. 관우는 유비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아무래도 형님께서 조조와 화해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온 것입니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익덕이 성미가 급해 일을 그르칠까봐 보내지 않은 것일세. 사실 이런 무리들은 죽여 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을 뿐이고 살려두면 협상의 빌미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장비가 선뜻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이번엔 내가 나가 유대를 사로잡아 오겠소!"
유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대는 연주지방의 무림을 다스리던 자로 지난날 천의맹에서 동탁을 칠 때 일진을 담당하던 자였네. 결코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네."
장비는 막무가내였다.
"그깟 놈이 뭐라고 그러슈? 나도 둘째 형님처럼 사로잡아 오면 되지 않소?"
유비는 근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네가 그를 죽여서 대사를 그르칠까 염려되어 그런다."
장비는 유비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화를 벌컥 내며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만일 놈을 죽이게 되면 내 목을 따슈!"
이쯤 되면 유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장비에게 3천의 무사를 내주며 유대를 잡아오도록 했다. 장비는 신바람이 나 장팔사모를 어깨에 둘러맨 채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