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조조는 두풍(頭風)으로 인해 병상에 누워있던 중이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파 근래 들어서는 집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리보전만 하고 있었다.
"주공! 이것을 보십시오."
문득 수하가 달려 들어오더니 한 장의 격문을 바쳤다. 그것은 진림이 작성하여 무림각지에 퍼뜨린 격문이었다.
조조는 격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모골이 송연해지고 전신에 식은땀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격문의 내용이 어찌나 생생하고 사리가 분명한지 하나하나 열거된 그의 죄악은 일점의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자일획(一字一劃)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피가 끓게 만드는 열혈의 문장이었다.
조조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으으! 이, 이걸 어디서 가져왔느냐?"
"원소가 주공을 치기위해 대군을 일으키며 천하 곳곳에 돌렸다고 합니다."
"으으... 감히... 감히 날 모함하다니!"
조조는 격문을 와락 움켜쥐며 부르짖었다. 그 순간이었다. 희한하게도 두풍의 고통이 씻은 듯이 달아나버렸다. 그만큼 충격과 분노가 컸던 것이다.
조조는 눈을 부릅뜬 채 물었다.
"이 격문을 누가 지었다고 하느냐?"
"원소의 수하인 진림이란 자가 작성했다고 합니다."
조조의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는 한동안 허공을 노려보더니 문득 냉소했다.
"흥! 문재(文才)가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무력(武力)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진림의 재주가 비록 빼어나기는 하다마는 원소의 병략이 그를 따르지 못하니 두려울 게 뭐냐?"
조조는 병상을 털고 일어나 원소와 싸우기 위해 모사들을 소집했다. 조조와 모사들이 한참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마침 소문을 듣고 북해의 호웅 공융이 찾아와 말했다.
"원소는 형세가 크고 휘하에 강병을 거느리고 있으니 싸움을 피하고 화친해야 합니다."
그러자 순욱이 반발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원소는 허세만 내세울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인인데 어찌 그런 작자와 화친한단 말이오?"
공융은 지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폈다.
"그렇지 않소. 원소는 영지가 넓고 휘하 무인들은 하나같이 절세고수들이오. 게다가 허유, 곽도, 심배, 봉기와 같은 지모가 뛰어난 모사들을 거느리고 있고 전풍과 저수는 소문난 충복이이외다. 어디 그뿐이오? 안량과 문추는 전대로부터 명성을 떨쳐온 백전의 맹장이외다. 게다가 고남, 장합, 순우경 등이 하나같이 절륜한 인물들인데 어찌 그를 하잘 것 없다고 할 수 있소?"
순욱은 냉랭하게 말했다.
"원소가 비록 수하가 많다하나 군율이 문란하고, 전풍은 성미가 강퍅해 윗사람에게 곧잘 항거하는 인물이오. 허유는 탐욕만 많을 뿐 꾀가 없으며, 심배는 잘난척할 뿐 지혜가 모자란 자요, 봉기는 과단하기는 하나 남의 계책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는 편협한 위인이오. 그런 자들은 서로 불화하기만 할 뿐 용합되지 않는 존재들이오. 따라서 반드시 내분(內紛)에 휩쓸리게 될 것이오. 안량과 문추로 말할 것 같으면 노쇠하여 필부의 용맹만이 있을 뿐이니 능히 한번 싸워서 사로잡을 수 있는 무리일 뿐이오. 하물며 그 밖의 인물들이야 백만 명이 있다한들 말해 무엇 하겠소?"
순욱의 말도 말이려니와 장내의 분위기는 이미 기울어버린 상황이었다. 조조도 껄껄 웃으며 순욱의 말을 거들었다.
"그대의 말이 옳소."
공융은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원소를 치기고 결정하고 유대(劉垈)와 왕충(王忠)을 불러 무사 5만을 내주며 자신의 기호를 앞세워 서주의 유비를 치도록 명을 내렸다.
유대는 본시 연주의 패주였는데 조조가 연주를 치자 항복한 인물이었다. 조조는 그간 유대에게 일군을 맡겨오다 이번에 왕충과 더불어 유비를 치도록 한 것이었다.
기이한 것은 그가 자신의 기호(旗號)를 유대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는 유대를 따라가지 않고 직접 2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여양으로 나가 원소를 맞서기로 했다. 이는 물론 그의 치밀한 계산 하에서 나온 책략이었다.
정욱이 불안한 듯 말했다.
"아무래도 유대와 왕충이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들이 유비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있소. 다만 허장성세를 하려는 것이오."
그는 유대와 왕충을 불러 당부했다.
"내가 원소를 도모한 후 서주로 가 유비를 칠 테니 그대들은 경망되이 움직이지 말도록 하시오."
"명 받드오이다!"
유대와 왕충은 5만 명의 무사들과 함께 서주로 출발했다. 뒤이어 조조도 대군을 거느리고 허도를 떠나 여양에 당도했다.
원소는 한 발 앞서 여양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조의 대군이 당도하자 양측은 마주보며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그런데 서로 경계하기만할 뿐 좀처럼 싸우려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쪽이든 이번 싸움에서 패하면 영원히 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양군은 8월에 대치하였으나 10월이 지나도록 싸우지 않았다.
거기에는 원소 측의 사정이 있었다. 본래 허유는 심배가 전군을 통령하는데 불만이었고, 저수 또한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써주지 않는데 원망을 품고 있었으므로 각자의 의견이 달라 누구도 먼저 싸우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원소 또한 이번 싸움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에 사태를 관망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었다.
양군의 대치가 장기화되자 조조는 점차 마음이 불안해졌다.
'허도를 이렇게 오래 비워둘 수는 없다.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 것 같으니 우선은 나라도 잠시 돌아가 있는 것이 낫겠구나.'
그는 은밀히 수하들을 불러 전략을 짰다. 우선 여포의 수하였다가 그에게 항복한 장패에게 청주와 서주 방면을 경계하도록 했고, 우금과 이전에게는 황하 가에 진을 치도록 했다. 아울러 조인에게 대군을 통솔토록 하여 관도(官渡)를 단단히 지키도록 당부했다.
그는 단지 일군만 거느린 채 은밀히 허도로 돌아갔다. 아무리 원소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어렵게 얻은 허도를 위태롭게 놔둘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