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술의 죽음으로 그의 진영은 지리멸렬해지고 말았다. 원술의 조카 원윤(袁胤)은 그의 영구와 처자들을 호위하여 여강(廬江) 방면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그도 무사하지 못했다. 도중에 서구(徐蓼)란 자가 그를 공격했다. 몇 안 되는 호위무사들은 서구에 의해 모두 죽음을 당했고, 원윤을 포함하여 원소의 식솔들까지 모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서구는 원윤에게 백자천경을 탈취한 후 허도로 달려가 조조에게 예물로 바쳤다. 조조는 생각지도 않았던 백자천경을 얻게 되자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백자천경을 하늘을 향해 받들어 올리며 부르짖었다.
"오오! 천무대제가 남긴 보물이 절로 내 손에 떨어지다니, 이거야말로 하늘의 뜻이 나에게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는 흔쾌한 심정으로 서구에게 작위를 주어 고릉(高陵)을 다스리도록 했다.
한편 유비는 그 동안의 경과를 써서 한 통은 무황성의 유협에게 보내고 한 통은 조조에게 보냈다. 이어 주령과 노소를 허도로 돌려보냈다. 물론 조조에게 빌린 5만의 무사들은 돌려주지 않았다.
주령과 노소는 항의하려 했지만 관우와 장비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허도에 도착한 그들은 조조를 배알했다. 조조는 그들이 무사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알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찌하여 너희 둘만 돌아온 것이냐?"
주령과 노소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들이 무사들을 돌려달라고 간청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유공께서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뭣이! 너희들의 주군이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 그야 저희들은 주공의 ·····."
조조의 입에서 노성이 떨어졌다.
"저놈들을 당장 끌어내다 목을 쳐라!"
주령과 노소는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벌벌 떨었다. 이때 보다 못한 순욱이 나서서 말했다.
"주공, 고정하십시오."
조조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오만이나 되는 무사들을 잃고 왔는데 어찌 고정하란 말이냐?"
"어차피 병권을 유비에게 다 내주었는데 저 두 사람이 어찌하겠습니까?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으음!"
조조는 신음을 발하며 눈을 감았다. 듣고 보니 순욱의 말이 백번 지당했다. 애당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경솔함 탓이었다. 지금 와서 주령과 노소를 죽인다 해도 5만 명의 무사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다.
"이만 물러가라."
주령과 노소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기분으로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며 황급히 물러났다.
조조는 순욱에게 물었다.
"교활한 유비 놈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순욱은 차분하게 말했다.
"서주에는 아직 차주가 있습니다. 그에게 밀서를 보내 기회를 봐 유비를 도모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차주는 조조로부터 밀서를 받고 비로소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은밀히 진등에게 조조가 보낸 밀서를 보여주며 상의했다. 진등은 잠시 생각하다가 한 가지 계책을 냈다.
"유비를 도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소이다. 마침 그가 밖으로 나가 민심을 살피고 있으니 며칠 후에야 돌아올 것이오. 차공은 무사들을 성 안에 매복시켜 두었다가 그가 돌아오면 영접하는 척하며 기습하여 단칼에 베어버리시오. 나는 성 위에서 활을 쏘아 뒤따르는 유비의 무리들을 막겠소이다."
차주는 탄성을 발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내 그렇게 하리다."
진등은 차주와 헤어지자마자 부친인 진규를 찾아갔다. 그는 방금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그대로 고했다. 진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네 어찌 그 일을 고하는 것이냐?"
진등은 흠칫하며 말했다.
"사실은 소자 유공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님이라면 제 마음을 아실 것 같아 말씀드린 것입니다."
진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어찌 네 마음을 모르겠느냐? 내 생각도 너와 같다."
진등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뭘 망설이느냐? 어서 유공께 가서 알려드려라."
진등은 그 길로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얼마 후 그는 유비보다 한 발 앞서 서주로 돌아오던 관우와 장비 일행을 만났다.
"두 분께 긴히 알려 드릴 것이 있소이다."
진등은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두 사람에게 말해 주었다. 성질 급한 장비는 대뜸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 당장 달려가 차주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겠소!"
"아서라, 비야."
관우는 장비를 만류한 후 냉정하게 말했다.
"차주가 무사들을 매복시켜 놓은 이상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갔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다."
장비는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대로 서주를 내주란 말이오?"
"누가 내준다고 했느냐?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관우는 진등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조조의 군사로 위장하여 서주로 가자. 그럼 놈은 자기편인지 알고 영접하러 나올 것이다. 그때 때려잡도록 하자."
진등은 관우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의도를 알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계책입니다. 그럼 제가 먼저 서주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차주가 의심하면 나서서 거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