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형제는 조조와 헤어져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 관우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조조가 그 자리에서 우릴 죽이는 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유비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야 있겠느냐?"
관우는 의혹의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형님을 부른 것입니까?"
"그야 날 떠보기 위한 술책이었지."
유비는 방금 전 정자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수저를 떨어뜨렸을 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네."
장비는 그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아우의 아둔한 머리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이다. 형님."
유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채마밭을 가꾼 것은 조조로 하여금 아무런 야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네. 그런데 뜻밖에도 날 자신과 겨룰 영웅이라고 지목하니 그만 놀라 수저를 떨어뜨린 걸세. 하지만 혹 내가 연극하는 걸로 오해할까봐 마침 뇌성이 울리기에 겁쟁이 흉내를 낸 것이네. 이래도 모르겠는가?"
관우와 장비는 비로소 의문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발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유비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모두 힘없는 탓으로 빚어진 일이니 대단할 게 뭐가 있겠나? 하늘 아래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울 뿐이지."
그 말에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조조가 또 사람을 보내와 술을 마시자고 하여 유비는 다시 그의 집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한참 술을 마시며 담론하고 있는데 조조의 수하 만총(滿寵)이 들어왔다. 그는 무림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을 받고 파견됐던 인물이었다.
"그래, 강호의 사정이 어떤가?"
유비는 생각지도 않게 무림의 정세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귀를 기울였다.
"공손찬이 원소에게 패해 무너졌습니다."
유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손찬이라면 그의 사형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는 하마터면 신음을 발할 뻔했으나 꾹 참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시기 바라오이다."
만총은 힐끗 그를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공손찬과 원소가 싸움을 벌였는데 쉬이 이길 수 없자 그는 성을 쌓고 그 안에 보루(堡壘)를 만들고 역경루(易京樓)라는 높은 다락을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성 안에 군량을 모아 놓고 굳게 지키며 기습적으로 무사들을 보내 싸움에 응했습니다."
유비는 그 말에 납득이 갔다.
'공손 사형의 성품이라면 능히 그런 전략을 쓸 만 하지.'
"그런데 그의 수하 고수들 중 한 사람이 원소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수하들이 그를 구하러 가야한다고 청을 넣었는데 공손찬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만일 그를 구해주면 다른 수하들도 구해주기만을 바라고 죽기로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만총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그건 도리어 역효과를 냈습니다. 그가 구원병을 파견하지 않자 수하들은 조금만 불리해지면 모두 항복해 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싸움은 점점 더 불리해졌고 공손찬은 허도로 사자를 보내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가 도중에 원소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연(張燕)에게 서신을 보내 불을 피우는 것을 신호로 안팎으로 동시에 접응해 원소를 격파하자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자 또한 원소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유비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어찌하여 공손 사형의 일이 그렇게 꼬였단 말인가?'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조조의 반문에 만총은 신이 난 듯 말문을 이었다.
"원소는 공손찬의 계책을 역이용했습니다. 그는 성밖에서 불을 놓았고 그것을 본 공손찬은 장연이 온줄 알고 친히 성을 나와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복병이 공격을 가하는 바람에 수하들을 태반이나 잃고 다시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부터는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성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원소가 몰래 땅굴을 파 성 안으로 들어가 다락 아래서 불을 지르니 공손찬은 더 이상 달아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처자들을 죽인 후 자신도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합니다. 결국 성은 불바다가 되고 원소는 공손찬이 장악하고 있던 영지를 보태 성세를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
유비는 공손찬이 자결했다는 말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조조는 정반대였다. 마치 앓던 이가 빠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용의 흉내만 내던 자 하나가 추락해버린 셈이로군. 안 그렇소, 유공?"
유비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만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속하는 다시 회남의 원술 쪽으로 가서 사정을 알아보았습니다. 정탐한 결과 그 자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사치가 극에 달하는 데다 수하들과 양민들을 조금도 돌보지 않아 모두들 그를 배반하고 떠나고 있었습니다. 원술은 이대로 가면 영지조차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듯 원소에게 사람을 보내 그동안 자칭했던 무황의 위를 물려줄뿐더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황가의 지보인 백자천경을 양도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조조의 눈빛이 번쩍 빛을 발했다.
"백자천경을? 그래서?"
"원소는 평소 백자천경을 탐내던 자입니다. 그래서 원술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습니다. 원술은 지금 백자천경을 가지고 회남을 떠나 하북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만총은 걱정된다는 듯 덧붙여 말했다.
"만일 그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세를 감당하기 벅찰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그들이 조우하기 전에 반드시 일을 도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조는 신음을 발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