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엄숙한 신색으로 말했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는 지략이 가득하며, 능히 우주를 감싸고 천지를 삼킬만한 배포가 있어야 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누구를 가리켜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조조는 손가락으로 유비를 먼저 가리키고 이어 자신을 가리켰다.
"당금 천하에서 영웅이라면 오직 그대와 나 조조뿐이외다."
유비는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그만 들고 있던 수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로 그때였다.
꽈다다다당!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뇌성벽력이 쳤다.
"아이쿠!"
유비는 비명을 지르며 얼른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수저를 집어 들었다. 그는 당황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뇌, 뇌공(雷公)의 무시무시한 위엄에 제가 그만 추태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조조는 유비를 쏘아보며 추궁했다.
"대장부가 고작 뇌성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유비는 황급히 변명했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번개와 폭풍을 만나면 공경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가 놀라 수저를 떨어뜨린 것은 자신이 조조와 함께 영웅의 반열에 오름으로써 무한한 고난이 예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일대효웅인지라 경쟁자를 용납할 위인이 결코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불러 술을 마시며 영웅에 대한 담론을 주고받은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오싹 끼쳤던 것이다.
수저를 떨어뜨리는 순간 그는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만일 조조가 그의 내심을 간파했다면 더 이상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때마침 벼락이 떨어졌고, 그는 재빨리 그것을 핑계 삼아 자신이 조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영웅은커녕 한낱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핫핫핫! 하긴 천지풍운의 조화를 인간이 어찌 넘어서겠는가? 유공의 겸허함이야말로 표본이 될 만 하구려."
조조는 대소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집요할 정도로 유비의 본심을 캐내려했던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자부심과 함께 안심하는 듯한 빛이 떠올랐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양광이 흘러나왔다. 이때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나이가 후원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조조의 호위무사들이 가로막느라 승강이가 벌어진 것이다.
조조가 고개를 돌려보니 관우와 장비가 병기를 뽑아든 채 번개처럼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가 어찌나 사납고 빠른지 호위무사들은 기세에 밀려 그만 놓치고 말았다.
관우와 장비는 사냥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유비가 허저 등에게 끌려갔다는 말을 시종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유비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 것이었다. 그래서 병기를 들고 단숨에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정자에서 한가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우와 장비는 눈짓을 주고받더니 얼른 병기를 거두고 정자 위로 올라 유비의 뒤편에 시립하고 섰다.
조조는 의심이 많은 위인이다. 그는 짐짓 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예고도 없이 난입한 것이오?"
방금 전 관우와 장비가 칼을 빼들고 자신의 호위무사들을 물리치고 달려온 것을 본 이상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관우는 그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조대공께서 저희들의 형님과 술을 드신다기에 칼춤이나 추어 흥을 돋울까 하여 달려왔습니다."
조조가 누구인가? 관우가 급한 김에 둘러댄 것을 간파하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수백 명이 넘는 호위무사들이 에워싸고 있는 부중으로 단 둘이 뛰어든 그들의 용맹과 충성심이 가상할뿐더러 그런 아우들을 거느리고 있는 유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소를 터뜨리며 물었다.
"하하핫! 여기는 홍문(鴻門)의 연회장이 아니거늘 어찌 항장(項莊)과 항백(項伯)의 흉내를 내는 것이오?"
홍문의 연회란 수백 년 전 천패왕(天覇王) 항우와 천무대제 유방이 무림을 놓고 다툴 때 항우가 유방을 죽이기 위해 홍문에서 연회를 벌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항우는 모사 범증(范增)의 계책에 따라 유방을 초대해 놓고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막상 유방과 대화를 해보니 죽일 마음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범증이 수하 고수인 항장에게 주흥을 돋운다는 핑계로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을 죽이려 했었다. 그때 뛰어든 고수가 유방의 수하인 항백이었다.
조조의 말인즉 자신은 유비를 죽이려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관우와 장비가 칼을 빼들고 뛰어들었느냐는 힐난 섞인 농이었다.
관우는 그만 대꾸할 말을 잃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조조가 정확히 그의 심중을 간파해 버린 것이다.
조조는 그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는 것을 보고 너털웃음을 치며 시종들에게 말했다.
"여봐라, 저 두 번쾌에게도 술을 올려라!"
새로운 술잔이 나오고 관우와 장비는 차례로 조조의 잔을 받았다. 두 사람은 술잔을 단숨에 비운 후 고개 숙여 사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