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 오르니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반 위에는 청매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따끈하게 덥힌 술도 마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정자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금방이라도 소낙비가 쏟아질 기미를 보였다. 그때였다. 정자 아래서 시중들던 누군가가 갑자기 소리쳤다.
"용이다! 용이 승천한다!"
그 말에 두 사람은 정자의 난간으로 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먹장구름이 무섭게 소용돌이치더니 한 마리의 거대한 흑룡(黑龍)이 되어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오오! 장관이로군."
조조는 탄성을 발했다. 그것은 일종의 용오름 현상이었으나 멀리서 보니 마치 흑룡이 승천하는 듯이 보였던 것이다.
쏴아아!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천지는 삽시간에 어두워졌고 자욱한 우연과 함께 세찬 빗줄기가 대지를 후려쳤다. 조조는 비를 감상하다 문득 유비에게 물었다.
"공은 용의 조화를 아시오?"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릅니다."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내 말해 주리다. 용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며 승천하는가 하면 또 물속에 숨어드는 재주도 있소. 스스로 커지면 구름을 불러 모아 비를 뿌리게도 하고, 작아지면 흙먼지 속에 모습을 감추기도 하오. 또한 승천할 때는 우주를 누비며 비등(飛騰)하고 숨을 때는 순식간에 파도 속으로 잠복하오."
조조는 스스로의 말에 도취한 듯 음성이 높아졌다.
"지금 봄이 무르익었으니 바야흐로 용이 때를 만나 조화를 부릴 시기요. 그건 마치 우리 두 사람이 큰 뜻을 얻어 사해를 종횡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오."
유비는 그저 멍하니 조조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조조의 눈에서 형형한 광채가 일어났다.
"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세에서는 가히 영웅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소. 공은 그간 천하를 두루 편력하였으니 당세의 영웅들에 대해 잘 알 것이오. 어디 한번 말씀해 보구려."
유비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 안목으로 어찌 천하의 영웅을 알아보겠습니까?"
"허허, 너무 겸손한 것 같소이다."
"아닙니다. 불초는 정말 모릅니다."
조조는 집요했다.
"아무리 그래도 몇몇 영웅들을 모른 다고야 할 수 있겠소?"
유비는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면 회남의 원술이 넓은 영지와 든든한 수하들을 부리고 있으니 영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원술은 한낱 무덤 속의 해골에 불과할 존재일 뿐이오. 두고 보시오. 조만간 내가 그를 잡고 말테니까."
유비는 눈을 굴리며 다시 말했다.
"하북의 원소는 대대로 무림명가 출신인데다 따르는 자들이 구름처럼 많고 기주의 무림을 장악하고 있으니 가히 영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조의 입가에는 조소가 떠올랐다.
"원소로 말할 것 같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오. 꾀를 좋아하기는 하되 결단력이 없고, 대사를 치르는데 있어 몸을 아끼는 작자요. 어디 그뿐인가? 작은 이익에 탐닉하여 목숨을 돌보지 못하고 달려드니 이런 작자를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단 말이오?"
유비는 낭패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ㆍㆍㆍ 천하의 여덟 준걸(俊傑)에 속하며 그 위엄을 구주(九州)에 널리 떨치고 있는 유표라면 능히 영웅의 반열에 들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당치도 않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유표는 유명무실한 작자일 뿐이오."
"그럼 강동의 젊은 호랑이 손책은 어떨는지요?"
"손책은 제 아비의 명성을 빌렸으니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럼, 익주(益州)의 유계옥(劉季玉)ㆍㆍㆍㆍㆍㆍ."
유비의 말은 조조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그가 비록 무황가의 인척이긴 하나 겨우 집 지키는 개에 불과한데 어찌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오?"
조조의 말투에는 은은한 노기마저 서려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유비를 노려보았다. 유비는 그만 오금이 저렸다. 계속되는 조조의 집요한 질문에 답하느라 평소에 안중에도 두지 않던 자들을 줄줄이 불어댔지만 긴장한 나머지 손바닥에 진땀이 잡히고 있었다.
"그럼 장수나 장노(張魯), 한수(韓遂)와 같은 인물은 어떻습니까?"
조조는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핫핫ㆍㆍㆍㆍㆍㆍ! 그 같은 작자들은 소인배에 불과하거늘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유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불초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