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은 분노를 금치 못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허전에서 사냥하실 때의 일을 생각하면 분해서 가슴이 터질 듯한데, 공은 인척된 몸으로 술독에만 빠져 간적을 물리칠 생각을 않고 있으니 어찌 천하를 구할 사람이라 하겠소?"
동승은 가슴이 울렸으나 혹 그가 자신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그러는지도 모르는지라 짐짓 위축된 표정으로 말했다.
"조대공은 무황성의 일등공신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요?"
그 말에 마등이 대로하여 외쳤다.
"공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간적을 두둔하는 것이오?"
동승은 깜짝 놀라 말했다.
"주위의 이목이 있으니 부디 말을 조심하십시오."
마등은 더욱 분기탱천하여 외쳤다.
"목숨이 두려워 의리와 기개를 내던진 작자와 내 어찌 더 말을 하겠는가!"
마등은 더 말할 것 없다는 듯이 밖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동승은 황급히 달려가 그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부디 고정하시오. 보여드릴 것이 있소이다."
그는 마등을 이끌고 서재로 가 무황이 피로 쓴 밀조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마등은 머리털이 온통 곤두서는 듯한 느낌에 핏발선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공이 거사하신다면 내 당장 서량의 무사들을 이끌고 달려와 외응하겠소이다!"
동승은 감격하여 그를 후당으로 청했다. 후당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도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등은 비단 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후 손가락을 깨물어 술잔에 피를 섞은 후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가 죽음을 각오하고 대사를 도모함에 있어 피로써 맹세합시다!"
그 말에 모두들 격앙하여 손가락을 깨물어 술잔에 피를 탄 후 함께 돌려 마셨다. 마등은 좌중의 다섯 사람을 둘러본 후 진지하게 말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오. 뜻을 함께할 사람이 열만 되면 능히 대사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오."
동승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탄식하며 말했다.
"충의지사를 얻기가 어디 그리 쉽겠소? 만약 간인을 끌어들였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을까 두렵소이다."
마등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황가의 계보와 가신들의 서열을 적어놓은 명부를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시종이 명부를 가져오자 그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인물들을 짚어나갔다.
"어찌하여 이 분과 의논하지 않았소?"
마등의 갑작스런 말에 모두들 궁금하여 물었다.
"대체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현덕 유비란 분이 예 있지 않소? 최근에 폐하의 황숙(皇叔)으로 밝혀지지 않았소? 이 분을 빼놓고서 어찌 대사를 논한단 말씀이오?"
동승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황숙이라지만 조조에게 붙들려 있는 처지인데 어찌 함께 대사를 논의하겠소?"
마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전에서 조조가 폐하를 제치고 하례 받을 때 운장이 노하여 조조를 죽이려한 적이 있었소. 그때 유황숙이 눈짓으로 만류하긴 했지만 조조를 없애기 싫어서가 아니라 주위에 심복들이 많아 실수할까 두려워 그랬던 것 같았소이다."
마등은 눈빛을 빛내며 제안했다.
"시험 삼아 유황숙에게 말씀해 보시오. 필히 승낙할 것이외다."
그 말에 오석이 나서서 말했다.
"아무래도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소이다. 차후 다시 의논해 보기로 합시다."
6인은 일단 헤어지기로 했다. 그날 밤 동승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등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밤새 갈등을 했던 것이다.
이튿날 밤, 그는 무황의 밀조를 품에 간직하고 유비를 찾아갔다. 시종에게 전갈을 고하고 문 앞에서 기다린 지 일각도 안 되어 유비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동공께서 미천한 유비를 방문하시다니 웬일이십니까?"
"말씀 낮추십시오. 황숙께서는 폐하의 숙부 되시니 하대를 하셔야 옳습니다."
두 사람은 겸손하게 수인사를 나누었다. 유비는 후원에 있는 소각으로 동승을 안내했다. 소각에 오르자 관우와 장비가 나와 유비의 뒤편에 배석했다. 유비는 의아한 듯 물었다.
"공께서 야심한 밤에 행차하셨으니 필경 무슨 연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백주에 찾아뵈려 했지만 조조의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 이렇듯 야음을 탄 것입니다."
유비가 술을 내어 대접했으나 동승은 잔은 건드리지도 않고 그를 주시하며 물었다.
"일전에 운장께서 조조를 죽이려했을 때 황숙께서 눈짓으로 만류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유비는 흠칫 놀라 물었다.
"공은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남들은 못 봤어도 이 사람은 똑똑히 보았소이다."
유비는 탄식하며 말했다.
"제 아우가 조조의 망동을 보고 참지 못해 그랬었나 봅니다."
동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황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관공과 같다면 어찌 무림이 이리도 혼란하겠소이까?"
유비는 불현듯 의심이 일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조의 감시 하에 놓여있는 터에 행동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조대공께서 무림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어찌 혼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 말에 동승의 낯빛이 홱 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공은 폐하의 숙부가 아니시오? 내 그걸 믿고 찾아와 흉금을 털어놨거늘 이제 보니 사람 잘못 봤구려!"
유비는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느끼고 따라 일어서며 정중히 말했다.
"동공께서 딴 마음이 있어 그러는 게 아닌가 하여 잠시 시험했을 뿐이외다. 내 어찌 폐하를 저버리겠소?"
동승은 격동을 금치 못하며 비로소 유협의 밀조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유비는 피로 쓰인 밀조를 읽어 내려가며 비분에 몸을 떨었다. 동승은 그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다 6인이 연명한 비단 천을 꺼내놓았다.
"이미 우리 여섯 사람이 대사를 도모하기로 피로써 맹세하였소이다."
유비는 연명서를 보고 격동을 금치 못했다.
"공께서 밀조를 받들어 간적을 치려는 마당에 이 유비가 어찌 견마지로를 아끼겠소이까?"
그는 필묵을 가져와 비단 천에 7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동승은 비단 천을 거두며 비장한 투로 말했다.
"이제 세 사람만 더 구해 열 사람이 되면 능히 간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외다!"
유비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은 천하를 구하는 대사니만큼 서서히 시행하기로 하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야 이를 말씀이오."
그날 밤 유비는 동승과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었으며 동승은 오경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