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들 중에 조언(趙彦)이란 인물이 분연히 붓을 들었다. 그는 조조의 망동을 낱낱이 적어 무황전에 상소했다. 상소의 내용은 무황을 농단하고 무림을 유린하고 있는 조조를 마땅히 탄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은 곧바로 조조에게 전해졌다. 조조는 발연대로하여 즉각 고수들을 풀어 조언을 붙잡아 들였다. 그는 조언을 심문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렸다. 그로 인해 무황성은 다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조조의 이런 행동은 무황을 완전히 무시했을 뿐더러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날 이후 조조가 하는 일에 반대하고 나서는 자는 사라지고 말았다. 조조의 한 마디 말과 행동은 곧 무림의 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황 유협조차 그 일에 대해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조조는 더욱 더 공포의 존재로 떠오르게 되었다.
어느 날 모사 정욱이 조조를 찾았다.
"주공의 위명이 하늘을 찌르는데 어찌하여 패업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은 더 이상 무황을 떠받들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이었다. 조조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무황성에는 고굉지신(股肱之臣:팔다리 노릇을 하는 신하)이 많이 남아 있소. 대업을 취하는 데는 신중에 신중을 더해도 부족한 법이오."
"하지만 때를 늦추는 것만이 상책은 아닐 것입니다."
조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소, 그럼 무황을 모시고 사냥을 나가 여러 사람들의 동정을 한번 살펴봐야겠소."
다음날 조조는 성밖에 수많은 말과 독수리, 사냥개들을 모아 놓은 후 무황전으로 가 유협을 알현했다.
"날씨가 청명합니다. 이런 날은 사냥하기 좋습니다. 모두 준비해 놓았으니 함께 가시지요."
유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조조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는데 갑자기 사냥이라니? 그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별로…내키지 않는구려."
조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무림을 다스리는 폐하께서 이렇게 나약해서야 쓰겠습니까? 일찍이 역대의 제왕들도 춘하추동 사계절마다 사냥을 하며 무위를 떨쳤습니다. 하물며 사해가 어지러운 이때 폐하께서 친히 강무(講武)하심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유협은 조조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기가 질려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보조궁(寶雕弓)과 금비전을 두르고 소요마(逍遙馬)를 탄 채 가신들과 수행무사들을 대동하고 성밖으로 나섰다.
한편 유비는 그 소식을 듣고 관우와 장비를 불렀다.
"아무래도 이번 사냥길이 심상치 않은 것 같네."
장비가 눈을 크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냥이 사냥이지, 별 거란 말입니까?"
"최근 조조가 무황성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놓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무황폐하를 청해 사냥에 나선다니 왠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단 말일세."
관우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폐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아야겠습니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함세."
유비 3형제는 활을 메고 호신갑을 착용한 채 수십 기의 인마를 거느리고 먼저 사냥터로 출발했다.
조조는 10만의 무사들을 거느린 채 사냥터인 허전(許田)으로 출발했다. 조황비전마(爪黃飛電馬)를 타고 친위대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무황의 행차를 무색케 했다.
그의 무사들이 사냥터를 빙 둘러싸는데 그 넓이가 무려 200리가 넘었다. 조조는 유협과 겨우 말머리 하나 차이로 나란히 가는데 주위에는 온통 그의 측근 무사들뿐이었고, 무황가의 가신들은 감히 얼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유협은 기가 죽은 채 사냥터에 당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3기의 인마가 앞으로 나서더니 유비 3형제가 말에서 뛰어내려 절을 한다. 그들은 사냥터에 먼저 도착한 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협은 유비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오, 유황숙이 아니오? 어서 말에 오르시오. 짐은 황숙의 사냥솜씨를 보고 싶구려."
유비는 사양하지 않고 말에 올라 대열에 합류했다. 관우와 장비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되니 유협과 조조, 유비가 나란히 말을 달리는 모양이 되었다. 이윽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일행이 숲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유비는 방금 전 유협의 말을 들은 터라 즉각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보기 좋게 토끼를 맞추었다.
"과연 훌륭한 솜씨구려!"
유협이 마치 자신이 잡기라도 한 듯 기뻐하며 큰 소리로 칭찬했다. 일행은 다시 숲 속으로 달렸다. 그들이 언덕 하나를 돌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사슴 한 마리가 겅중겅중 뛰어나왔다. 유협은 얼른 활을 당겨 쏘았다.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유협은 연속 두 번을 더 쏘았지만 맞추지 못하자 얼굴을 붉히며 조조에게 말했다.
"이번엔 공이 한번 쏘아보구려."
조조는 사양하지도 않고 손을 내밀었다. 유협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보조궁과 금비전을 건네주었다. 조조가 활을 크게 당겼다 놓으니 섬전처럼 날아간 금비전이 사슴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유협이 쏜 것인 줄 알고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
"무황폐하 만세!"
그때였다. 갑자기 조조가 유협의 앞을 가로막더니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받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야말로 중인들 앞에서 무황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 순간 유비의 옆에 있던 관우의 안색이 무섭게 변했다. 관우는 누에 같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린 채 봉의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조조의 목을 치려고 했다. 유비는 황급히 그를 막으며 눈짓했다. 관우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유비의 제지를 차마 밀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유비는 급히 조조를 향해 말을 몰아나가며 포권했다.
"조대공의 궁술은 과연 천하일절이십니다!"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폐하의 홍복이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보조궁과 금비전을 돌려줄 생각을 않고 자신의 말 옆구리에 꽂으며 돌아섰다. 사냥은 그것을 막을 내렸다. 조조는 허전에서 잔치를 한 후 무사들을 몰아 허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