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수하들의 전공(戰功)을 따져 상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직책을 내려주고 포상을 후하게 실시했다. 또한 그는 유비를 자신의 부중에서 가까운 곳에 거처하게 한 후 무황 유협에게 그의 공을 알렸다.
다음날 유협은 유비를 무황전으로 불러들였다. 유비가 부복하자 유협은 유심히 그를 살펴보았다. 넓고 큰 귀, 축 처진 눈매, 한없는 도량을 품고 있는 듯한 유심(幽深)한 표정이 왠지 친근감을 주면서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유협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공의 조상은 어찌 되시오?"
"신은 중산무왕(中山武王)의 후예로 효경무제(孝景武帝)의 현손인 유웅(劉雄)의 손자이며 유홍(劉弘)의 아들입니다."
유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좌우를 향해 명을 내렸다.
"가서 무황가의 세보(世譜)를 찾아오너라!"
유비는 본래 무황가와 같은 성씨를 썼다. 비록 까마득한 옛날 일이긴 했지만 선조는 분명 무황가의 후손이었다. 유협이 흥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잠시 후 세보가 들어오자 유협은 유비의 혈통을 살펴보았다.
세보의 의하면 다음과 같았다.
효경무제에게는 1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7번째 아들이 중산무왕 유승(劉勝)이다. 유승은 유정(劉貞)을 낳고,유정은 유앙(劉昻)을 낳았으며, 유앙은 유록(劉綠)을, 유록은 유연(劉戀)을 낳았다. 유연은 다시 유영(劉英)을 낳았으며 유영은 유건(劉建)을 낳는다. 유건은 유애(劉哀)를, 유애는 유헌(劉憲)을, 유헌은 유서(劉舒)를, 유서는 유의(劉誼)를, 유의는 유필(劉必)을, 유필은 유달(劉達), 유달은 유불의(劉不疑)를, 유불의는 유혜(劉惠)를 낳았다.
유혜가 낳은 인물이 바로 유비의 고향 동군(東郡)을 다스리던 유웅(劉)이며, 유웅은 다시 유홍을 낳았으나 유홍의 대에 이르러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야인(野人)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무황성의 세보는 거기서 기록이 끝나 있었다.
유비는 유홍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가계에 대해 전해 들었으나 가문이 몰락한 터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만 있었을 따름이었다.
유협이 세보를 따져보니 유비는 그의 숙부(叔父)가 되는 셈이었다. 그는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오오! 종친을 만났구려! 이렇게 기쁠 데가 있소?"
유협은 태사의에서 내려와 유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잠시 후 그는 내전으로 유비를 불러들여 숙질간의 예를 취하고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이렇듯 반가워하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조조가 권세를 장악하고 무황성을 제 멋대로 농단하는데 이런 영웅을 숙부로 얻었으니 장차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날 이후 유비는 무황의 황숙(皇叔)으로서 특별히 의성무왕(宜城武王)이란 작위를 받게 되었다. 유협은 가신들을 불러 그를 소개시켰으며 모두에게 그를 유황숙이라 부르도록 권했다.
한편 조조에게 곧바로 그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밤 순욱을 비롯한 모사들이 찾아오더니 근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무황이 유비를 황숙으로 모시게 됐으니 아무래도 주공께 불리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조는 태연하기만 했다.
"도리어 잘된 일이오. 그가 황숙이 됐으니 내가 무황의 칙지를 받들면 영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더구나 내가 그를 허도에 머물게 한 이상 비록 무황의 곁에 있다고 해도 내 손아귀에 들어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려울 게 뭐가 있겠소?"
모사들은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유비를 서주에 남겨두지 않고 허도로 데려온 것도 바로 이런 일을 예상해서였단 말인가?
조조는 화제를 돌렸다.
"정작 당면한 문제는 양표(楊彪)의 존재요. 그는 무황을 보위하는 직책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원술과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장차 원술, 원소와 내응할 가능성도 있소. 더 늦기 전에 그를 제거해야겠소."
그야말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모사들 또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조조는 냉엄하게 말했다.
"마침 원술이 무황을 자칭하는 반역을 저질렀으니 그가 원술과 내통했다고 소문을 퍼뜨려 때려잡아야겠소."
조조는 일단 마음을 정하면 즉각 시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수하들을 시켜 양표를 잡아들였다. 죄목은 물론 모반(謀叛)이었다. 그는 부하 만총(滿寵)으로 하여금 그를 심문케 했다.
그때 마침 북해의 호웅 공융(孔融)이 볼일이 있어 허도에 와있었다. 그는 양표가 투옥됐다는 말을 듣고 흥분을 금치 못하며 조조를 찾아와 따졌다.
"양공은 누대에 걸쳐 무황성에 충성을 다한 분인데 어찌하여 근거도 없이 원술과 내통했다고 죄를 씌우는 것이오?"
조조는 냉담하게 말했다.
"이는 모두 무황폐하의 뜻이오."
하지만 공융은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흥! 당금 무황성에서 내려지는 명령이 모두 조공에게서 나온 것인데 어찌 천하의 이목을 속이려 한단 말이오?"
조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공융을 쳐 죽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천하의 호웅둘이 들고 일어날 우려가 있었다. 비록 무황성을 장악한지 오래되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는 분을 삭이며 말없이 공융을 노려보기만 했다.
공융 또한 범부(凡夫)는 아니었다. 너무 거세게 몰아붙이면 조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음성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유공의 지난 공을 봐서라도 너그럽게 대해 주었으면 하오."
공융도 한 발자국 물러선 것이다. 조조의 입가에 비로소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내 공을 봐서라도 생각해 보겠소이다."
다음날 그는 양표의 모든 작위와 직책을 파하고 그를 무황성에서 추방해버렸다. 이 사건은 무황성을 발칵 뒤집히게 했다. 양표가 무고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 이상 조조가 무황의 칙령을 빌어 자신의 반대파를 거세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무황성의 가신들치고 분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