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의 내용은 금방 성 안에 퍼졌다. 다만 여포만이 까맣게 그 사실을 모를 뿐이었다.
이튿날 새벽녘에 조조가 대공세를 감행했다. 함성 소리에 놀란 여포는 성루에 올라 각 성문을 점검해보았다. 그는 곧 위속이 지키고 있던 동문을 통해 후성이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네 이놈! 어찌하여 후성을 놓아주었느냐!"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조조 무리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적토마를 끌고 와라!"
잠시 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후성이 적토마를 타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뭣이?"
수많은 전장에서 적토마를 타고 누볐던 여포였다. 사랑하는 애마가 사라졌다니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었다.
"내... 이놈들을 당장!"
그는 위속을 죽이려고 천극도를 뽑았으나 사방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단 조조의 공격부터 막기로 했다. 이때 성벽 위에는 백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백기가 왜 꽂혀 있는지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성벽으로 개미떼처럼 올라오는 적의 무리부터 막아야했다. 그는 진두지휘하여 밤새도록 조조의 무리들을 상대했다.
날이 밝자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여포는 쉬지 않고 싸운 터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는 문루에 기대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그때였다. 송헌과 위속이 수하들과 나타나더니 주변의 무리들을 모두 쫓아버렸다.
그들은 은밀히 접근하여 여포의 병기인 천극도를 감추어 버린 후 일제히 달려들어 여포를 의자와 함께 결박해버렸다. 여포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이놈들아! 무슨 짓이냐!"
"게 누구 없느냐!"
그는 고래고래 고함쳤지만 아무도 달려오는 자가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송헌과 위속,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따르는 자들뿐이었다.
송헌과 위속은 백기를 들고 휘둘렀다. 조조의 진영에서 백기를 보고 문루 아래로 몰려들었다. 위속은 음성을 높여 외쳤다.
"여기 여포를 잡아놓았소!"
하후연은 위속의 말을 듣고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 공격을 망설였다. 혹시나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송헌이 천극도를 밖으로 던지며 외쳤다.
"여포의 병기요! 안심하고 들어오시오!"
송헌은 성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후연은 여포의 병기를 확인한데다 성문이 열리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수하들을 몰고 쳐들어갔다. 요새나 다름없던 하비도 성문이 열리자 속절없이 함락되고 말았다.
조조의 무리는 물밀 듯이 쳐들어가 단숨에 하비를 장악해버리고 말았다. 고순과 장요는 서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물에 막혀 달아나지도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진궁 또한 남문으로 도망치다 서황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조조는 유유히 입성하여 상황을 보고받았다. 수하들의 희생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포가 사로잡힌 것이 알려지자 그의 수하들이 속속 투항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먼저 성안의 물을 빼도록 지시한 후 양민들을 안심케 했다. 연후 유비와 함께 백문루(白門樓)에 올라 자리 잡고 앉아 사로잡은 자들을 끌고 오게 했다.
여포는 초췌한 모습으로 끌려나왔다. 천하제일고수도 혈도를 찍히고 단단하게 결박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여포는 불편한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밧줄을 좀 늦춰 주시오."
조조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어렸다.
"자네는 호랑이가 아닌가? 아무리 영락했다고 해도 호랑이를 어찌 느슨하게 묶겠는가?"
여포는 주변에 송헌, 위속, 후성 등이 서있는 것을 보고 눈알을 부라리며 외쳤다.
"내 너희들을 박대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배반한 것이냐!"
그 말에 송헌이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네놈은 처첩들만 중하고 수하들은 안중에도 없지 않느냐? 그러면서 어찌 박대하지 않았다고 하느냐?"
여포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여포를 잠시 두기로 하고 먼저 고순에게 물었다.
"너는 할 말이 없느냐?"
고순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조조는 그에게 살길을 열어주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고순의 증오에 찬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돌려버렸다.
"저놈을 끌어내 참수하라!"
이번엔 진궁이 끌려나왔다. 조조는 진궁을 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그가 동탁의 추격을 피해 달아날 때 중모현에서 진궁에게 붙잡힌 적이 있었다. 그때 진궁이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조조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궁은 그가 실수로 여백사의 일가를 죽인 후 후환이 두려워 죄도 없는 여백사를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떠난 바 있었다.
조조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진공은 그동안 안녕하시었소?"
진궁은 힐끗 그를 올려본 후 차갑게 말했다.
"네가 스스로 마음이 바르지 못해 내가 널 버렸거늘 어찌하여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느냐?"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내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그대는 왜 여포를 섬긴 것인가? 여포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단 말인가?"
"여공은 비록 꾀는 없으나 너처럼 속임수와 교활함으로 꽉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조는 눈을 가늘게 하며 물었다.
"공은 지모가 남다르다 자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진궁은 여포를 돌아보며 탄식했다.
"내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분할 뿐이다."
조조는 여유 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흠, 오늘 일은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진궁의 강경한 어조에는 죽음을 피하려 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는 듯했다. 조조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공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모와 처자는 어쩐단 말인가?"
진궁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한다.
"효성을 알고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남의 어버이를 해치는 법이 없고, 어진 이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 법이오. 노모와 처자는 그대의 손에 달렸으니 처분에 맡길 뿐이오. 나 또한 그대의 손에 있으니 죽여주기 바라오. 지금 죽더라도 아무 여한이 없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