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기뻐하며 곽가의 계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계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수, 사수, 두 강의 제방을 터뜨리자 두 줄기 거대한 물줄기가 하비로 쏟아져 들어갔다. 조조는 언덕에 올라 하비가 물에 잠기는 것을 구경했다. 하비는 동문을 제외한 3문이 모두 물에 잠기고 말았다.
느닷없는 홍수(洪水)에 놀란 하비성의 수하들은 즉각 그 사실을 여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여포는 술에 취해있었다.
"웬 호들갑이냐? 내 적토마가 물에서도 평지처럼 달리는데 무슨 걱정이란 말이냐?"
아닌 게 아니라 3문이 물에 잠겼다고 해도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불어난 물로 인해 조조 역시 쉽게 공격할 수 없을 터였다. 그동안에도 여포는 연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러자니 하비가 조조의 포위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차츰 엽색(獵色)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초선과 두 번째 부인밖에 모르던 그가 점점 성정이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 웬 낯선 얼굴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내는 두 눈이 퀭하게 들어가고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와 영락없는 해골(骸骨)이었다.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해 부르짖었다.
"이...이게 나란 말인가!"
여포는 망연자실하다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며 한탄했다.
"내가 주색(酒色)에 빠져 스스로를 망쳤구나!"
이때 초선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아! 천첩,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어찌하여 옥체를 돌보지 않는 것인지요?"
여포는 초선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초선은 그의 품에 안기며 애절하게 말했다.
"밖으로 흉적을 둔 터에 이렇듯 주색에 몸을 망치고 있으면 천첩은 어찌하라는 말씀인지요?"
여포는 초선을 안고 분연히 말했다.
"내 오늘부터 술을 끊으리다!"
초선은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당신께 변고가 있다면 이 초선도 살아남지 않을 것이옵니다. 부디... 옥체 보중하옵소서."
여포는 초선의 젖은 뺨에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명심하리다. 반드시 명심하리다! 내 어찌 그대를 죽게 하겠소?"
여포는 밖으로 나가 수하들을 불러놓고 선언했다.
"모두들 들어라! 오늘 이후로 술을 마시는 자가 있다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참수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 한 가지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수하인 후성에게 아끼는 준마 15필이 있었는데, 그의 마부가 몰래 말을 끌어내어 유비에게 바치려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후성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마부를 쳐 죽이고 말을 찾아왔다.
그 일을 알고 동료들이 찾아와 그의 신속한 조치를 칭찬했다. 후성은 기분이 들뜬 나머지 집에 있던 술을 내어 동료들을 대접하려고 했으나 금주령(禁酒令)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 끝에 그는 술 다섯 동이를 안고 여포를 찾아갔다.
"속하가 주공의 위엄을 힘입어 잃었던 말을 찾아왔사온데, 여러 사람이 찾아와 치하하기에 술을 조금 마련했습니다. 하오나 금주령을 어길 수 없어 먼저 주공에 술을 바치고 꾸중을 들은 연후에 조금씩 나누어 마실까 합니다. 윤허하여 주십시오."
여포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노성을 내질렀다.
"내 이미 금주령을 내렸거늘 어찌하여 명을 듣지 않는 것이냐! 너희들이 작당하여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
여포는 후성이 미처 변명하기도 전에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저놈을 끌어내다 목을 쳐라!"
"주, 주공...."
후성은 크게 놀라 바닥에 엎드려 빌었으나 여포의 분노는 풀릴 줄 몰랐다. 그 소식을 듣고 송헌, 위속 등 여러 수하들이 달려와 애걸했다.
"주공! 후성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나 본의가 아님을 저희 모두가 압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여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으나 수하들이 한결같이 간하므로 참수의 명만은 거두었다.
"후성이 금주령을 알고도 어기려 했으나 너희들의 낯을 봐 곤장 백대로 대신하겠다."
곤장 백대라면 초주검이 되고 만다. 수하들은 다시 간청을 하여 오십 대로 형량을 줄이게 되었다. 후성은 곤장 오십 대를 맞고 통곡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송헌과 위속이 후성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후성은 자리에 누워있다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난 벌써 죽고 말았을 것이오."
송헌은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여포는 자신과 처자밖에 모르는 자라 우리 같은 건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이오!"
위속도 탄식하며 말했다.
"적군은 성을 에워싸고 있고 성은 물에 잠겨버렸으니 우리들이 죽을 날도 이제 머지않았소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송헌이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여포가 이리도 무정하니 충성을 바쳐 무엇 하겠소? 차라리 달아나는 게 어떻겠소?"
위속은 후성을 한번 바라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이대로 달아나면 장부라고 할 수 없지 않겠소? 차라리 여포를 생포해 조조에게 바치는 게 어떻소?"
명백한 모반(謀叛)이었으나 3인은 의기가 투합 되었다. 후성이 곧바로 계책을 내었다.
"여포가 믿고 있는 건 적토마요. 두 분이 동의한다면 내가 적토마를 훔쳐내 조공을 만나보겠소이다."
이쯤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3인은 고개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그날 밤 후성은 몰래 적토마를 훔쳐 타고 나는 듯이 동문을 향해 달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위속은 문을 열어 통과시켜준 후 거짓으로 쫓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후성은 조조에게 적토마를 바친 후 자신이 여포에게 당했던 일을 얘기했다. 또한 송헌과 위속이 내응하여 백기(白旗)를 문루에 꽂아 신호한 후 성문을 열기로 한 것을 전달했다. 조조는 매서운 눈으로 후성을 살펴본 결과 그의 말이 믿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포란 놈이 스스로 무덤을 팠군.'
그는 수십 장의 방문(榜文)을 화살촉에 묶어 하비성으로 날렸다. 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이 무황폐하의 뜻을 받들어 반도를 치려하니 만약 저항하는 자가 있다면 상하인을 막론하고 목을 치리라! 다만 여포를 사로잡거나 수급을 바치는 자가 있다면 직위와 더불어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