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아났을까? 말도 사람도 지칠 대로 지쳐 잠시 속도를 늦추었을 즈음이었다.
"와아아ㆍㆍㆍㆍㆍㆍ!"
갑자기 산모퉁이로부터 무수한 인마를 쏟아져 나오더니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이놈 여포야! 관운장이 기다린 지 오래다!"
청룡언월도를 비껴든 채 긴 수염을 휘날리는 자는 또 누구인가! 천하에 두려울 것 없는 여포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사나이, 관우가 나타난 것이다. 여포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앞에는 관우, 뒤에는 장비가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여포는 이를 질끈 물며 적토마를 몰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면 장비와 조조의 대군이 당도할 것이므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앞길을 열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관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관우와 일전을 결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천극도를 어지럽게 휘둘러 관우를 몰아붙이는 척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그였으나 마지막 보루(堡壘)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비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도중에 후성(侯成)이 달려와 돕는 바람에 무사히 하비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한편 소패에서 헤어진 후 생사조차 모르던 관우와 장비는 서로 만나 그간의 사정을 주고받았다.
"형님이 살아계신 줄 모르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오!"
장비가 격한 어조로 말하자 관우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해주(海州)로 가는 연도에서 흩어졌던 수하들을 만나 잠시 그곳에 머물고 있었네. 그동안 백방으로 탐문했더니 형님께서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러간다는 소문을 들었네. 그 즉시로 달려온 걸세."
장비도 목멘 음성으로 말했다.
"저도 망탕산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형님을 만나게 되고 또 큰형님도 무사하신 걸 알았으니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감격을 금치 못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우리 삼형제를 버리지 않으셨음이네. 자, 어서 형님을 만나러 가세."
잠시 후 그들은 조조의 본진에 합류해 있던 유비를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비록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진 못했어도 죽을 때만은 함께 죽겠노라 맹세했던 삼형제였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에게 큰 절을 하며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유비 또한 격동을 금치 못하며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모두가 이 우형이 못난 탓이네. 자, 이제 그만 일어서게."
유비는 두 사람을 데리고 조조를 만났다. 조조도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삼형제가 조조를 따라 서주로 돌아가니 미축이 미리 알고 마중 나와 주었다. 유비는 미축으로부터 가솔들이 무사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너무나 기뻐 하늘에 제라도 올리고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쁜 것은 조조였다. 허도를 떠날 때만 해도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 손실도 입지 않고 서주를 얻었을 뿐더러, 눈엣가시 같던 여포를 하비로 쫓아내지 않았는가? 그 같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게 된 데는 진규 부자의 공이 가장 컸다.
조조는 무엇보다도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연회를 열어 진규 부자를 초대했다. 그는 자신이 가운데 앉고 오른쪽에 진규를, 왼쪽에 유비를 앉게 한 후 진규 부자의 공을 치하했다. 아울러 진규에게는 열 개 지방의 무림을 관장토록 녹을 내리고, 진등에게는 별도로 복파신군(伏波神君)이란 호칭을 내렸다.
조조는 서주를 장악한 여세를 몰아 하비마저 치려고 했다. 그런데 정욱이 나서더니 간곡한 어조로 만류했다.
"여포는 모든 것을 잃고 이제 하나밖에 없는 하비를 지키고 있습니다. 급촉하게 몰아세우면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의 희생도 커집니다. 어쩌면 원술에게 달아나 의탁할지도 모릅니다. 원술과 여포가 합세하게 되면 그때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집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럼 어찌함이 좋겠나?"
"유능한 자를 시켜 회남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안으로는 여포를 막고, 밖으로 원술을 방비하게 하십시오. 아울러 산동에 장패와 손관 등의 무리가 남아있으니 주공께서는 그에 대한 방비도 하셔야 합니다."
조조는 잠시 생각하다 유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산동방면을 맡을 테니 유공께서 회남도상을 담당하는 것이 어떻겠소?"
유비는 공손히 포권했다.
"장령을 어찌 감히 마다하겠습니까?"
이튿날 유비는 미축과 간옹을 서주에 남겨두고 손건, 관우, 장비와 함께 회남방면으로 출발했다. 조조 또한 하비를 상대할 준비에 들어갔다.
여포는 하비에 도착하자마자 물자부터 점검했다.
다행이었다. 서주로부터 양곡과 물자를 옮겨놓은 터라 충분한 물자가 비축되어 있었다. 게다가 하비로 이르는 길목에는 사수(泗水)가 흐르고 있어 요새로써의 요건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싸우지 않고 지키기만 해도 당분간은 문제가 없으리라 확신했다.
며칠 후, 조조가 하비로 진격하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오자 진궁이 계책을 내놓았다.
"조조가 당도하더라도 단기간에 진용을 갖추지는 못할 겁니다. 반면 아군은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선공(先攻)을 가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포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 연패(連敗)한 터라 무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네. 당분간은 수비에 치중하는 것이 좋겠네. 놈들이 공격을 가하면 그때 달려 나가 한꺼번에 몰아쳐 사수에서 수장(水葬)시키도록 하세."
진궁은 계속 주장을 폈지만 여포는 요지부동,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한편 조조가 하비 근처에 당도하고 보니 지세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비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을 면밀히 살핀 후 며칠에 걸쳐 진을 설치했다. 진용이 완전히 갖추어지자 그는 하비로 접근하여 소리쳤다.
"여포는 내 말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