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북에 당도하자 하후연이 마중 나왔다. 하후연은 그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보고했다. 조조는 하후돈이 한쪽 눈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직접 병상으로 달려가 하후돈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형제여! 자네가 날 위해 싸우다 눈을 잃었으니 마치 내 눈을 잃은 듯 하네."
하후돈은 남아있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꿋꿋하게 말했다.
"형님을 위해서라면 나머지 눈도 바칠 수 있습니다."
조조는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네가 할 일은 다 했네. 이제 허도로 가서 쉬도록 하게. 내 틀림없이 자네의 복수를 해주겠네."
그 말을 듣고서야 하후돈은 남은 한쪽 눈을 감았다.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그의 안면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신음을 발하다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조조는 한숨을 쉬며 그의 처소에서 물러 나왔다.
조조는 첩자를 시켜 여포의 동태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얼마 후 첩자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여포가 진궁, 장패와 함께 태산에 있는 흑도 무리들을 규합하여 연주의 무림을 치고 있습니다."
조조는 조인으로 하여금 3천 명의 무사들을 거느리고 소패를 공격하게 한 후 몸소 대군을 지휘하여 유비와 함께 여포를 치러갔다.
일행이 산동지경에 당도하자 손관, 오돈, 윤예, 창희가 이끄는 3만 명에 달하는 흑도인들이 마주쳐 나왔다. 조조는 그들을 한눈에 둘러본 후 허저에게 명을 내렸다.
"자네가 나가 싸워보게."
허저가 말을 달려 나가니 저쪽에서도 흑도의 네 우두머리가 동시에 달려 나왔다. 1대 4의 싸움이 벌어졌다. 허저는 조조의 눈에 띄어 발탁된 고수로 독창적인 무예로 일가를 이룬 인물이었다. 따라서 흑도의 방외무공(方外武功)을 익힌 자들과는 차원이 틀렸다.
허저는 합공을 받았지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특히 조조로부터 특명을 받은 터라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니 흑도의 4인방은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쩔쩔매게 되었다.
"으핫핫핫ㆍㆍㆍㆍㆍㆍ!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싸울 생각을 했느냐!"
허저가 대소를 터뜨리며 거도(巨刀)를 휘두르자 따당! 땅! 하는 금속성과 함께 4인방은 손목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허저의 대도가 뇌전(雷電)과도 같은 도기를 뿌리며 재차 공격하자 겁을 집어먹은 그들은 일제히 말을 돌려 달아나고 말았다.
조조는 냉정한 표정으로 싸움을 관전하다 검을 뽑으며 명을 내렸다.
"공격하라!"
적장 4인이 허저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달아나자 조조의 진영은 사기가 충천했고, 흑도 무리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바빴다. 숫자는 많아도 오합지졸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조조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는 흑도 무리를 소관(簫關)까지 쫓아가 마음껏 도륙함으로써 하후돈에 대한 분풀이를 했다.
한편 여포는 서주에 있었다. 그는 소패가 위험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 놈들을 박살내고 말리라!"
그는 진규로 하여금 서주를 지키게 한 후 진등과 함께 소패를 구하기로 했다. 진등이 떠날 채비를 하는데 진규가 부르더니 은밀히 말했다.
"전날 조대공께서 이 쪽의 일은 너에게 맡기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여포의 몰락이 경각에 달렸으니 지금이야말로 도모할 때인 것 같구나."
진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소자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여포가 패해 돌아오면 미축과 상의하여 서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진규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럼 넌 어찌할 생각이냐?"
진등은 어깨를 으쓱했다.
"소자는 소자대로 몸을 빼낼 계책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진규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지만 이 곳엔 여포의 처자가 있다. 여포는 필경 많은 수하들을 남겨 이 곳을 지킬 텐데 어찌 미축과 나의 힘만으로 내응할 수 있겠느냐?"
진등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저에게 복안이 있습니다."
진등은 곧바로 여포를 찾아가 말했다.
"서주는 사면으로 공격받고 있는데다 조조가 전력으로 칠 테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곡과 무사들을 하비로 옮겨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되면 설사 서주가 떨어진다고 해도 하비에서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옳군. 그럼 아예 가솔들까지 함께 옮기겠네."
여포는 송헌, 위속에게 명을 내려 초선을 비롯한 가솔들과 함께 양곡과 물자를 하비로 옮기도록 했다. 연후 진등과 함께 소패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연도에 다시 급보가 날아들었다. 태산의 흑도 무리들이 조조에게 대패했다는 것이었다.
여포는 방향을 바꾸어 소관으로 향했다. 절반쯤 행군했을까? 진등이 그에게 청했다.
"제가 먼저 소관으로 달려가 조조의 허실을 탐문할 테니 주공께서는 그 후에 들이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포는 그의 말이라면 굳게 믿었다.
"좋아, 그럼 자네가 먼저 가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게."
진등이 소관에 도착하니 손관 등 흑도 무리를 이끌고 있던 진궁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진등은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주공께서는 공들이 나가 싸울 생각을 않고 있는 것을 알고 진노해 계시니 곧 문책이 있을 것이외다!"
진궁은 난감한 표정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알다시피 조조의 세력이 워낙 강해 함부로 맞설 수 없는 처지요. 그래서 이 곳의 지형을 이용해 관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이지, 겁이 나서가 아니오. 공은 주공께 가서 전해주시오. 차라리 소패부터 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이오. 이 곳은 굳이 싸우지 않더라도 저 쪽에서 지쳐서 물러나게 될 것이오."
진등은 가슴이 철렁했다. 진궁의 말대로 지형을 이용해 시일을 끌면 조조는 양곡이 떨어져 회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건성으로 대답한 후 그날 밤을 소관에서 묵기로 했다. 좀더 사정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밤이 되자 함성이 울리며 조조가 공격을 가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소관은 천연의 요새(要塞)였다. 조조가 아무리 공격해도 도무지 관을 깰 수가 없었다. 결국 진등은 궁리 끝에 밀서를 매단 화살 3개를 관 아래에 있는 조조의 무리를 향해 날렸다. 밀서에는 소관에서 화광이 솟으면 공격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다음날 그는 태연히 여포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여포에게 한 말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손관을 비롯한 흑도 무리들은 도무지 싸울 마음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회를 틈타 조조에게 소관을 바칠 계략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여포는 진노를 금치 못했다.
"뭣이? 그걸 알고도 그냥 왔단 말이냐?"
"어찌 그냥 오겠습니까? 제가 진궁에게 일러 그들을 잘 감시하라고 했으니 주공께서는 날이 저물면 일시에 소관을 쳐서 진궁과 접응하여 배반자들을 처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