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장요가 무사들을 이끌고 서문을 쳤다. 관우는 문루에서 장요를 향해 소리쳤다.
"장공은 속된 사람이 아닌데 어찌하여 여포와 같이 불의한 자를 따르는 것이오?"
장요는 평소 관우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말이 의표를 찌르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관우는 그런 그를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문을 잠근 채 지키기만 했다.
장요는 무사들을 물리더니 이번에는 동문으로 돌아가 싸움을 걸었다. 동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장비였다. 장비는 본래부터 참을성이 없는 위인이었다.
"여포가 개 같은 놈이니 네 놈은 개새끼가 아니냐? 네 목을 당장 따주마!"
장비는 욕설을 퍼부으며 문을 열고 나가 싸우려했다. 관우의 귀에 그 소식을 들렸다. 관우는 급히 동문으로 가보았다. 과연 장비가 문을 열고 달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문루 위에서 버럭 소리쳤다.
"장비야! 어서 돌아오너라!"
장팔사모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달려 나가던 장비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성 안으로 돌아와 볼멘소리로 물었다.
"놈이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있는데 왜 불러들이는 거요?"
관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보게. 저 자는 싸울 마음이 없네."
장비가 돌아보니 과연 장요가 무사들을 뒤로 물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의 무예가 자네보다 못해서가 아닐세. 내가 정당한 말로 꾸짖었더니 뉘우치고 물러나는 것이네."
장비는 비로소 깨닫고 말했다.
"제길, 개 같은 놈에게 저런 부하가 있을 줄은 몰랐소."
관우는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닐세. 원군이 올 때까지는 문을 닫아걸고 시간을 끌어야하네."
"알았수다!"
장비는 비록 내키기는 않았으나 관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한편, 간옹은 허도에 도착한 후 조조에게 소패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며 유비의 서신을 전달했다. 조조는 곧바로 모사들을 모아 대책을 협의했다.
"지금 즉시 여포를 치고 싶으나 한 가지 근심되는 것이 있소. 원소야 지난번에 달래놓았으니 당분간은 걱정 없을 것이오. 문제는 유표와 장수란 놈이오. 허도를 비우면 놈들이 움직일까 걱정이오."
그러자 순유가 나서서 말했다.
"그 자들은 패한지 얼마 안 되어 그럴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포는 다릅니다. 놈은 거칠 것이 없는데다 만일 원술과 손을 잡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당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곽가도 동감이라는 듯 지지하고 나섰다.
"옳은 말입니다. 여포가 이제 막 준동했으니 놈을 따르는 자들이 더 생기기 전에 치는 것이 좋습니다."
조조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하후돈에게 명을 내려 하후연, 여건, 이전과 함께 5만의 무사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게 한 후 자신은 본진을 데리고 허도를 출발했다. 간옹도 조조를 따라 행군에 참여했다.
조조의 움직임은 곧바로 고순에게, 다시 여포에게로 전해졌다. 여포는 코웃음을 쳤다.
"흥! 교활하기 짝이 없는 조조란 놈아! 이번이야말로 목을 따주마!"
여포는 후성(侯成), 조성(曹性), 학맹 등을 고순에게 보내 소패에서 30리가량 떨어진 곳에서 조조를 맞이하게 한 후 자신도 곧 뒤따라가기로 했다.
한편 유비는 고순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 조조가 다가온 것을 짐작했다. 그는 손건을 소패에 남겨두고 관우, 장비를 데리고 성밖으로 나가 진을 친 후 조조를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하후돈은 고순과 마주치자 이내 싸움을 벌였다. 고순은 창을 움켜쥐고 달려 나가 하후돈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고순의 무예 또한 뛰어났으나 역전의 고수인 하후돈을 당할 수는 없었다. 4,50합에 이르자 패색이 짙어진 그는 말을 돌려 진중으로 달아나버렸다.
"이 놈! 가더라도 목은 두고 가라!"
하후돈이 고함치며 추격해가자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은 고순의 진영에서 조성이 은밀히 겨누어 쏜 것이었다. 고순만 노리고 달려가던 하후돈은 미처 화살을 발견하지 못하고 억! 하는 비명과 함께 왼쪽 눈에 맞고 말았다.
그 광경을 양측이 모두 보았다.
"우와아악!"
돌연 하후돈이 우렁찬 일갈을 발하더니 눈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놀랍게도 화살촉에 그의 눈알이 뽑혀져 나왔다. 하후돈은 눈알을 살펴보더니 하늘을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이 눈알은 아버지의 정(精)이요, 어머니의 피(血)이거늘 어찌 버리겠느냐!"
그는 뽑혀져 나온 눈알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으적으적 씹어 먹어 버렸다. 이어 다시 창을 들고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그 광경을 본 조성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달아나지도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했다. 하후돈은 한 달음에 달려가 조성을 찔러 죽인 후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저 놈을 죽여라!"
이 때 고순이 명을 내려 무사들로 하여금 하후돈의 뒤를 치게 했다.
"형님!"
하후연은 하후돈이 다칠까봐 급히 말을 달려 하후돈을 데려왔다. 고순의 무사들은 하후돈의 진영을 들이쳤다. 하후돈의 부상으로 인해 정신이 없던 무사들은 그만 대열이 흐트러지며 패배하고 말았다. 하후연은 간신히 형 하후돈을 구해 달아났고 여건과 이전은 수하들을 수습하여 제북(濟北)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고순은 여세를 몰아 소패의 유비를 치려고 했으나 여포가 당도하는 바람에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여포는 고순, 장요의 무리를 3로로 나누어 유비, 관우, 장비를 치기로 했다.
유비는 관우로 하여금 고순과 장요를 막게 하고 장비는 여포를 맞이하여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은 상황을 살펴가며 양쪽을 대응하기로 전략을 짰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여포가 갑자기 배후에서 들이친 것이다.
그 바람에 관우와 장비의 진세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와해되고 말았다. 유비도 간신히 수십 기의 인마만을 거느린 채 소패를 향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여포는 그것을 보고 바짝 추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