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느리게 행군했다. 장수와 유표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답지됐으나 하루에 10리 정도밖에 행군하지 않았다. 그들이 양성(襄城) 인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으허엉!"
조조는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수하들이 놀라 묻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난해 이 곳에서 죽은 전위가 떠오르는구나. 그러니 내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말에 수하들은 감동을 금치 못했다. 조조는 행군을 멈추게 한 후 그 자리에서 제(祭)를 올리도록 했다. 그는 몸소 향을 사르고 절을 하며 전위의 넋을 기렸다. 제를 치르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전위의 제를 마친 후에야 조카 조안민과 맏아들 조앙의 제를 올렸다. 또한 강을 건넌 후 죽은 대완산 애마를 위해서도 제도 지냈다. 그의 숙연한 태도와 슬퍼하는 모습을 본 무사들의 가슴에는 감동이 넘쳐흘렀다.
위기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날 순욱에게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
"유표가 장수와 손잡고 안중에 진을 친 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모사들은 한결같이 안색이 변했다. 과연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태연하게 말했다.
"적이 쫓고 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오. 내가 이렇듯 느리게 행군하는 것은 다 뜻이 있어서요. 안중에 이르기만 하면 반드시 놈들을 격파할 테니 안심하시오."
과연 어떤 복안이 있기에 이렇듯 태연하기만한 한 것일까? 조조의 모사들은 의구심이 치밀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조조는 행군을 독촉하여 얼마 후 안중의 경계에 당도했다.
유표는 이미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장수도 후진까지 바짝 추격해온 상태였다. 조조는 명을 내려 밤을 이용해서 험한 산길에 매복을 깔아 두었다.
날이 밝자 장수와 유표가 합류했다. 그들은 조조의 무리가 예상보다 적은 것을 보고 안심하고 산길을 통해 공격을 감행했다. 산길은 협로(狹路)였으므로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통과하려면 일정 수밖에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대열을 길게 늘여 중간쯤 통과했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함성이 울리며 빗발치듯 화살이 날아왔다. 뿐만 아니라 협로 양쪽으로부터 조조의 무리들이 벌 떼처럼 공격을 가해왔다.
뜻밖의 암습에 장수와 유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조조의 무리는 목숨을 도외시한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장수와 유표는 많은 수하들을 잃고 달아나버렸다. 조조는 수하들을 이끌고 사방이 탁 트인 평지로 나가 진을 쳤다. 장수와 유표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의 승리는 기실 치밀한 안배 덕분이었다. 행군이 느려지는 바람에 그의 수하들은 심리적인 압박을 받았다. 장수와 유표의 연합군에 쫓겨 몰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조조가 전위를 위해 제를 올리며 슬퍼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함이 치밀어 올랐다.
무릇 싸움이란 기세(氣勢)가 중요한 법이다. 기가 꺾이게 되면 필패(必敗)할 뿐이다. 조조는 심리적인 배수진(背水陣)을 침으로써 부하들의 전투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셈이었다. 실로 전략가로서의 탁월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한편 장수와 유표는 패잔병들을 수습한 후 다시 합류했다.
"설마 조조에게 패할 줄은 몰랐소!"
유표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자 장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다시 한번 칩시다."
유표 역시 아쉬움이 큰지라 찬성했다. 그들은 흩어졌던 무사들을 모아 조조를 칠 준비에 들어갔다.
같은 시각 조조는 순욱이 보낸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는 원소가 허도를 넘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놈이 허도를?'
다른 자라면 몰라도 원소는 언제나 부담스런 존재였다. 원소는 지난날 천의맹의 맹주로 활약한 인물이다. 조조는 그의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다급해졌다. 결국 그는 한시라도 빨리 허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조조가 서둘러 회군하고 있다는 소식은 곧바로 장수의 귀에 들어갔다.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절호의 기회로군!"
뜻밖에도 가후가 반대하고 나섰다.
"안됩니다. 지금 공격하면 필패합니다."
유표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박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오."
유표가 워낙 강하게 주장했으므로 장수는 할 수 없이 1만 여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함께 조조를 추격해갔다. 10여 리쯤 추격해가자 조조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전투가 전개되자 뜻밖의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다. 도망치느라 여념이 없을 줄 알았던 조조의 후군이 무서운 기세로 반격을 가하는 바람에 도리어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장수와 유표는 힘없이 진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가후를 불러 말했다.
"공의 말을 듣지 않아 패하고 말았구려."
그러자 가후는 눈빛을 빛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무사들을 정돈하여 추격하십시오."
장수는 물론 유표도 깜짝 놀라 물었다.
"방금 패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가후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번에는 크게 승리할 것입니다. 제 말이 맞지 않는다면 목을 베십시오."
장수는 비록 반신반의했지만 내심으로 가후를 믿는 마음이 강했다. 그는 유표에게 함께 추격하자고 말했으나 유표는 난색을 지었다.
"난 자신이 없소이다."
장수는 할 수 없이 혼자 무사들을 거느리고 조조를 뒤를 추격했다. 얼마 후 다시 조조의 후군을 따라잡고 공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뜻밖의 결과가 일어났다. 조조의 무리는 병장기를 내팽개치며 달아나기에 바쁜 것이 아닌가? 장수는 용기백배하여 내친 김에 계속 조조를 추격했다. 이 참에 아예 조조를 제거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