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에 수백 명의 무사들이 쓰러지자 몇몇 무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누가 물러서라고 했느냐!"
조조는 친히 말을 달려 도망치는 무사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는 다시 말에서 뛰어내려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을 무릅쓰고 흙을 퍼 날랐다. 그 광경에 무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성밖에 흙더미를 운반해 쌓아올렸다.
그토록 견고하던 수춘성도 무너지고 말았다. 흙으로 쌓아올린 대를 통해 물밀 듯이 성벽을 넘어간 무사들은 원술의 무리를 격파했다. 먼저 넘어간 무사들이 성문을 열어젖히자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어가 삽시에 수춘성을 장악해 버렸다.
17만 명의 무사들은 닥치는 대로 원소의 무리들을 살상했다. 성은 화염에 휩싸이고 원술의 수하들은 남김없이 도륙되고 말았다. 이풍, 진기, 악취, 양강도 모두 사로잡히고 말았다.
조조는 그들을 모두 끌어내어 목을 베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원술이 무황성을 모방하여 지은 전각과 건축물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수춘성은 삽시에 잿더미가 되어 남아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조조가 이렇듯 잔혹하게 수춘을 휩쓸어버린 것은 왕후를 죽인 자책감 때문이었다. 왕후의 원혼을 달리기 위해서라도 수춘을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수춘을 잿더미를 만든 후 다시 회수를 건너 원술을 치고자했다. 그러자 순욱이 나서서 만류했다.
"무사들이 지친 데다 이 곳도 양곡이 충분치 않습니다. 무리하게 진군하느니 잠시 허도로 돌아갔다가 준비를 갖춘 후 다시 출진하는 것이 옳습니다."
조조의 한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회수를 건너가 원술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순욱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가 망설이고 있는데 홀연히 사자가 달려와 급보를 전해주었다.
일전에 그에게 쫓겨 달아났던 장수(張繡)가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무사들을 모아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홍이 지키고 있던 남양(南陽)과 강릉(江陵)을 강탈했다는 것이었다. 사자는 조홍이 위기에 몰려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
조조는 생각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남양과 강릉에 이어 허도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손책에게 사자를 보냈다. 사자를 통해 손책으로 하여금 장강을 따라 무사들을 배치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것은 강 건너에 있는 유표를 견제하기 위한 거짓 포석(布石)으로 유표를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유표가 장수와 손잡고 그를 상대하면 그만큼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떠나기 전 유비와 여포를 함께 불러 전처럼 유비가 소패에 머물되 서로 간에 형제의 의를 맺어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이는 장수를 제거할 때까지 서주가 평온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포는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껏 불편했던 조조와 화의를 맺어 주변이 든든하게 되었을 뿐더러 무황으로부터 작위까지 받게 되었으니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먼저 서주로 출발했다.
조조는 여포가 떠난 후 유비를 불렀다.
"내가 공을 소패에 머물게 한 이유를 알겠소?"
유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생이 어찌 대공의 깊은 뜻을 알겠소이까?"
조조의 눈에 언뜻 기광이 스쳤으나 이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는 굴갱대호지계(堀坑待虎之計)라, 함정을 파놓고 호랑이를 기다리라는 뜻이오. 공은 진규 부자와 잘 상의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때가 되면 내가 공을 도울 것이오."
"네ㆍㆍㆍㆍㆍㆍ."
유비는 어눌하게 대답했다. 언뜻 보면 그는 조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더 이상 부언하지 않았다. 이미 유비가 자신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안배를 마친 후 허도로 돌아갔다. 그런데 허도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외란 인물이 이각을 죽이고 오습(伍習)이 곽사의 수급을 바치러 온 것이었다. 특히 단외는 이각의 일가 200여 명을 허도로 압송한 후 그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각과 곽사는 동탁의 수하들로 오랫동안 무황성을 장악하고 무황 유협을 괴롭힌 인물들이었다.
조조는 이각의 일가를 모두 참수하고 그 수급을 효수하여 만인이 둘러보게 하였다. 이각, 곽사의 만행에 치를 떨어왔던 사람들을 한결같이 대희하며 효수된 수급 아래 침을 뱉었다. 무황 유협도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연회를 벌여 단외와 오습을 치하한 후 그들에게 직책을 수여하였다.
조조는 유협을 알현하여 동탁의 수하 장수가 난을 일으키므로 정벌해야 한다고 품했다. 유협은 쾌히 승낙하였다. 뿐만 아니라 친히 성밖까지 나가 조조의 출사(出師)를 격려해주기까지 했다. 때는 초여름이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허도를 지키게 하고 몸소 출정을 지휘했다. 연도에는 한창 곡식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곡식을 수확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농민들이 겁을 집어먹고 다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조조는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양곡이 모자라 죄 없는 왕후를 죽인 일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러니 텅 빈 밭의 곡식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행렬을 멈춘 후 수하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내 무황폐하의 명을 받들어 악도들을 치러가는 터에 이는 모두 천하를 태평케 하기 위함이다. 고로 양민들이 애써 기른 곡물을 한 포기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만약 명을 어기고 함부로 밟는 자가 있다면 상하를 막론하고 목을 베겠노라!"
그의 삼엄한 명에 무사들은 조심하며 밭 사이를 행군했다. 그런데 마침 조조의 앞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바람에 말이 깜짝 놀라 앞으로 내달렸다.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상당한 넓이의 밭이 엉망으로 짓밟히고 말았다.
조조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수하들을 불러 자신의 죄를 묻게 했다.
하지만 누가 감히 그의 죄를 묻겠는가?
"어찌 감히 대공을 치죄할 수 있겠습니까?"
수하들이 입을 모아 난색을 표하자 그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법을 정해놓고 어겼으니 어떻게 수하들을 복종케 할 수 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