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술은 조조의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교유에게 5만의 무사를 주어 선봉을 맡아 막도록 했다. 양군은 수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교유가 말을 달려 나가자 선봉군으로 먼저 도착한 조조의 진영에서 하후돈이 마주쳐 나왔다. 하후돈은 조조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인물로 숱한 싸움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3합이 채 못 되어 교유는 그의 창에 찔려 즉사해버리고 말았다.
우두머리가 죽으니 원술의 무리는 기가 꺾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수춘의 무황성으로 쫓겨 돌아오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속속 급보가 날아 들어왔다.
강동의 손책이 수백 척의 배로 장강을 건너 서쪽방면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쪽에서는 여포가, 남쪽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달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조조가 17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원술은 정신이 없었다. 그는 황급히 모사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상의했다.
모사들이 모두 모였으나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터라 난국을 타파할만한 묘안은 나오지 않았다. 갑론을박(甲論乙駁), 실효성 없는 의견들만 무성할 뿐이었다. 결국 양대장이 궁여지책을 내놓았다.
"지난번 싸움으로 양곡과 물자가 떨어진 데다 무사들의 사기 또한 땅에 떨어졌으니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무리입니다. 폐하께서 친군을 거느리고 회수(淮水)를 건너십시오. 남은 무사들은 싸움에 응하지 말고 이 곳을 수비하는 데만 전력을 다하도록 명을 내리십시오."
원술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키기만 한다고 무슨 수가 난단 말이냐?"
"양곡과 물자는 원정군에게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시간을 끌면 저쪽이 준비한 것도 바닥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에 변화가 일게 됩니다. 폐하께서는 그동안 적의 예봉을 피하고 놈들도 곤란에 처하게 되니 일거양득이 됩니다."
어떻게 세운 무황성인가? 수춘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나 원술에게 달리 방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풍, 악취, 양강, 진기로 하여금 10만의 무사들과 함께 수춘을 사수하도록 지시하고 자신은 창고에 모아둔 금은재화를 몽땅 거두어 친군과 함께 몰래 회수를 건너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양대장의 계책은 실효를 거두기 시작했다.
굳게 문을 닫아건 채 싸움에 응하지 않자 조조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외지로 원정을 온 터라 양곡이 충분치 않았다. 한 달여 동안 대치상태가 이어지자 양곡이 바닥나고 말았다. 급한 대로 손책에게 10만곡을 빌렸으나 그나마도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양곡을 관장하는 왕후란 자가 그에게 보고했다.
"무사들은 많고 양곡은 적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조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되를 줄여 지급하도록 해라."
왕후는 난색을 지었다.
"무사들이 원망을 할까 두렵습니다. 배를 주리게 되면 사기도 저하될 것입니다."
조조의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해라."
왕후는 하는 수 없이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여 무사들에게 양곡을 지급했다. 조조는 은밀히 사람을 시켜 무사들의 동태를 알아보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사들의 불만이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를 원망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이대로 가면 진영을 이탈하는 자까지 생길 판국이었다.
조조는 자신의 막사로 왕후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공?"
왕후는 예를 표한 후 무슨 일인가하여 물었다.
"내 네게 한 가지 물건을 빌려 그것으로 무사들의 마음을 달래려 하니 부디 인색하게 굴지 말고 빌려주었으면 좋겠네."
왕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속하에게 무슨 물건을 빌려달라는 말씀입니까?"
조조의 음성은 차디찼다.
"네 목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무사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왕후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조조는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안다. 하지만 널 죽이지 않으면 대사를 망치게 되니 어찌 하겠느냐? 네가 죽은 후 네 처자는 잘 돌봐줄 테니 안심하도록 해라."
왕후는 안색이 파랗게 질려 뒷걸음질쳤다. 조조는 밖을 향해 냉엄하게 외쳤다.
"누구 없느냐? 저 놈을 끌어내어 목을 쳐라!"
밖에는 미리 도수부(屠手夫)가 대기하고 있었다. 왕후는 꼼짝도 못하고 도수부들에게 끌려가 참수되고 말았다. 그의 목은 장대에 꽂혀 진중의 무사들이 보는 앞에서 효수되었다.
'왕후는 양곡을 도적질하고 사사로이 되를 줄여 무사들의 배를 주리게 하였기에 군율에 의해 효수하노라!'
왕후의 목이 효수된 장대 아래 그 같은 내용의 방이 붙었다. 무사들은 그제야 조조에 대한 원망을 거두게 되었다. 이 같은 계책은 실로 비정한 것이었다. 조조는 아무 죄도 없는 왕후의 목을 자름으로써 난국을 타개했다. 만일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대(大)를 위해 과감하게 소(小)를 버리는 것.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전술가로서의 조조의 탁월한 면모인 것이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왕후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철면피는 결코 아니었다. 그날 밤 그는 막사에서 통음(痛飮)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왕후여! 내 그대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
"약조대로 그대의 식솔들을 후히 돌보아 주겠네. 그런다고 저승의 그대가 날 용서하진 않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았는가?"
"크흐흐흐ㆍㆍㆍㆍㆍㆍ."
그날 밤, 밤새도록 조조의 막사에서는 오열이 그치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조조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사흘 안에 성을 깨뜨리지 못하면 모두 목을 칠 터이니 전력을 다해 싸우도록 해라!"
조조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수춘성을 넘기 위해 손수 바위와 흙을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무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런데 성 위에 원술의 무사들이 도열하더니 강궁을 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