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으로 돌아온 원술은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강동의 손책에게 서신을 보냈다. 자신이 여포를 칠 테니 무사를 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손책은 서신을 발기발기 찢어버리며 노성을 발했다.
"네 놈이 백자천경은 돌려주지 않고 멋대로 무황을 자칭하더니 무사를 빌려달라고? 나야말로 네 놈을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도울 일이 있단 말이냐?"
사자가 돌아가 손책의 말을 전달하니 원술은 대로하며 부르짖었다.
"뭣이? 이런 배은망덕한 놈 봤나! 내 우선 네 놈부터 쳐야겠다!"
양대장이 극구 나서서 만류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무사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므로 전열부터 가다듬으셔야 합니다."
원술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양대장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고 보자! 언제고 네 놈을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다니게 만들고 말테다!"
한편 손책은 원술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여 무사들을 장강 어귀에 배치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조에게서 사자가 왔다. 조조가 보낸 서신에는 그에게 작위를 내린다는 것과 즉각 무사들을 일으켜 손책을 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손책은 일단 조조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더구나 조조와 연합하여 원술을 친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출병하려고 했다.
장소(張昭)가 나서더니 계책을 냈다.
"원술이 패배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무사들이 많고 물자 또한 충분합니다. 결코 쉽게 이길 수 없습니다. 조조에게 사자를 보내 그에게 먼저 공격하도록 하고 우리가 나중에 합세하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혹시라도 실수가 있어도 조조의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손책은 무릎을 탁 쳤다.
"하마터면 조조에게 속아 모험을 걸 뻔했구려."
그는 곧바로 서신을 써 조조의 사자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한편 조조는 허도에 돌아온 후 전위를 위해 사당(祠堂)을 세우고 그를 위해 제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전위의 아들 전만(典滿)을 우대하여 중책을 내리고 자신의 곁을 두었다. 그 즈음 손책에게 보냈던 사자가 돌아왔다. 서신을 읽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린놈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심기가 깊군?"
그 때 또 한 가지 소식이 들어왔다. 원술이 진류(陣留)에서 노략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놈이 여포에게 양곡과 물자를 잃어 보충하려는 것이로군."
그는 지금이야말로 원술을 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결단은 빨리 내릴수록 좋은 법이다. 그는 곧바로 무사들을 일으켰다. 그는 조인에게 허도를 지키게 한 후 남은 무사들은 모두 자신을 따라 종군케 했다. 그를 따라나선 무사들은 17만이 넘었고, 양곡과 물자를 수송하는 수레만 해도 수천 량이 넘었다. 그는 출병하면서 사자를 손책과 유비, 여포에게 동시에 보내 합세할 것을 요구했다.
조조가 정벌대를 이끌고 예장(豫章)에 이르렀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유비가 무사들을 이끌고 나와 영접했다. 조조는 유비를 진중으로 청해 들였다.
유비는 두 개의 상자를 공손히 바쳐 올렸다. 조조는 의아하여 물었다.
"이게 무엇이오?"
상자를 열자 피투성이가 된 수급 두 개가 들어있었다. 놀란 조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양봉과 한섬의 수급이옵니다."
조조는 놀람이 가시지 않은 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어찌된 영문이오?"
유비는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여포는 본래 이 두 사람에게 산동을 정벌할 목적으로 기도, 낭야 두 곳에 임시로 진을 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들은 무사들을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고 노략질과 살인을 일삼아 주위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회를 빙자하여 두 사람을 초대한 후 관우, 장비 두 아우로 하여금 목을 베게 했습니다. 또한 이 자들의 수하들에게는 항복을 받아 수하로 거두었습니다."
유비는 설명을 마친 후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조조는 흠칫 놀라 물었다.
"갑자기 웬 절을 하는 것이오?"
"공께서 여포와 화의를 맺은 터에 소생이 허락도 없이 그의 수하들을 죽임으로써 누를 끼쳤기에 그 죄를 청하는 것입니다."
조조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공이 무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죄라니 당치도 않소이다."
그는 유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유비의 속셈을 훤히 간파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무림을 위한다며 두 놈을 죽였다지만 결국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켰으니 실리는 다 챙겼구나. 그러면서도 죄를 청한다고?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로군.'
조조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유비를 추궁하지 않았다. 눈앞의 큰 일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유비를 치하한 후 함께 서주로 향했다. 서주에 이르자 여포가 마중 나왔다. 여포는 이미 유비가 한섬, 양봉을 죽이고 그의 수하들을 흡수한 사실을 알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조조는 연회를 열어 그를 위로한 후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차후에 허도로 돌아가면 무황께 말씀드려 여공께 작위를 내리도록 하겠소이다."
"그리만 해주신다면 감읍하오이다."
여포는 귀가 번쩍 뜨였다. 이제까지 그는 천하의 호웅들에게 별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서주를 차지한지도 오래됐지만 정식 작위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조조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되니 한섬과 양봉의 죽음쯤은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다.
'어리석은 놈.'
조조는 만족해하는 여포를 보고 내심 비웃었다. 그는 여포를 좌군으로, 유비를 우군으로 삼은 후 자신은 중군을 맡아 원술을 치기로 했다. 또한 하후돈과 우금으로 하여금 선봉장을 맡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