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무사들을 거두어 전열을 정비했다. 난생 처음으로 큰 환란을 겪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장수를 물리치고 영지를 더욱 넓히게 된 셈이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자 우금이 그를 찾아와 보고했다.
"이각의 옛 부하들이 민가를 약탈하기에 주공을 대신하여 징계했었습니다."
조조는 움찔하며 반문했다.
"그렇다면 내게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어찌하여 진부터 구축하였느냐?"
우금은 도리어 태연하게 반문했다.
"장수가 쫓기는 가운데서도 군사들을 정돈하여 진지를 구축했을뿐더러 남의 말에 현혹되어 흔들리지 않고 진 싸움을 이기도록 만들었는데 어찌 고사에 나오는 명장인들 어찌 이보다 훌륭할 수 있단 말씀이오?"
조조는 크게 감명하여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대야 말로 진정한 장수요. 내 잠시 귀가 엷었음을 나무라 주시오."
조조는 우금을 더욱 아껴 그에게 후한 상을 내리며 한 단계 높은 직책을 내려주었다. 하후돈을 불러서는 수하들을 단단히 단속하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또한 거짓보고를 한 자들을 낱낱이 색출하여 참수함으로써 상벌(賞罰)을 분명히 했다.
다음날 조조는 제를 올려 자신을 위해 죽은 전위의 영혼을 위로했다. 그는 목 놓아 울며 모두가 들리도록 부르짖었다.
"내 비록 맏아들과 조카를 잃었으나 그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괴로움에 빠져 우는 것은 오직 전위를 위해서다!"
조조는 친히 술을 따라 하늘을 향해 흩뿌린 후 크게 곡을 했다. 그 광경을 본 수하들은 한결같이 큰 감동을 받았다. 조카나 자식보다도 수하를 더욱 아끼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주군의 표상을 보여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설혹 이 같은 행동이 철저히 계산된 것인지 몰라도 조조의 이런 면모는 그를 따르는 수하들로 하여금 맹목적인 충성을 이끌어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조도 분명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위를 위해 제를 올렸고, 그의 충성에 대해 오랫동안 수하들에게 이야기했다. 반면 조카 조안민이나 아들 조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조조는 모든 것이 안정되자 일부만을 완성에 남겨둔 후 무사들을 돌려 허도로 돌아갔다.
허도에서는 좋은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포에게 사자로 보냈던 왕칙(王則)이 여포의 행적을 보고해왔다.
"여포가 주공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원술이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원술이?"
"원술이 스스로 무림황제에 등극하고 무황성을 세울 예정이니 황태자비가 되기로 한 딸을 보내라는 전갈을 했습니다."
조조는 흠칫했다.
"놈이 무림황제가 된다구? 미쳤구나! 그래, 여포가 뭐라더냐?"
"여포는 놈이 반역을 한다고 하면서 사자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원술과는 완전히 등졌다고 할 수 있겠군."
여포는 이미 원술과의 혼인을 파기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때마침 왕칙이 찾아오자 그는 원술의 사신인 한윤을 포박하여 허도로 보내며 따로 진등에게 서신을 써서 왕칙과 동행하도록 했다. 이 참에 오랫동안 불화를 겪었던 조조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조조는 내심 만족스러웠다. 어리석은 여포가 계책에 넘어갔으니 당분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화답하는 의미로 한윤을 끌어내다 목을 베어버렸다.
그런데 진등이 그를 찾아와서 뜻밖의 말을 했다.
"여포는 늑대와 같은 놈으로 용맹하기로는 천하에 으뜸입니다. 그러나 아래 위를 모른 채 아무나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놈입니다."
조조는 의아하며 반문했다.
"어찌하여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진등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하지만 놈은 아둔하고 신중하지 못한 성격이므로 계책을 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진등이 추파를 던지고 있음을 알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여포가 탐욕스럽고 흉악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소. 그대로 놔두면 더욱 사나워질 놈이오. 하지만 일찍이 제거하려해도 놈의 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귀 부자가 날 도와주면 안 되겠소?"
진등은 두 손을 모으며 공손히 말했다.
"대공께서 약조만 주시면 안에서 내응하겠습니다."
조조는 흔쾌히 말했다.
"내 부친에게 녹을 내리겠소. 아울러 그대에게 광릉지부를 맡도록 교지를 내려 주리다."
진등은 만족하여 절을 한 후 하직인사를 고했다. 조조는 그의 손을 잡고 당부했다.
"앞으로 서주의 일은 그대에게 맡기니 잘 부탁하오."
진등은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로 그의 휘하에 들었으나 마음은 늘 딴 곳에 있었다. 여포의 됨됨이로 미루어 오랫동안 주군으로 섬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던 차 조조를 보고 결심을 굳힌 것이었다.
며칠 후 진등이 돌아오자 여포는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잘 다녀왔는가?"
진등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부친께서는 녹을 받고 저는 광릉지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여포는 화를 벌컥 냈다.
"뭐라고? 날 위해 사신을 보냈더니 뭐가 어째? 네 놈의 아비는 녹을 받고 너는 직책을 받아와?"
그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더구나 네 애비가 원술과 혼사를 끊으라고 해서 원수까지 지게 됐는데 대체 이게 무슨 수작이란 말이냐! 알고 보니 네 놈 부자가 날 조조에게 팔아먹었구나!"
그는 대로하여 칼을 뽑아 진등의 목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진등이 누구인가? 기왕지사 여포에게서 등질 결심을 한 이상 사전에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는 껄껄거리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어찌 그리 생각이 짧단 말입니까?"
여포는 더욱 기가 막혔다.
"뭐가 생각이 짧다는 거냐?"
"조조를 만났을 때 저는 주공께서는 범과 같아서 배부르게 먹여놓아야지, 굶주리면 사람을 문다고 말했습니다."
여포는 움찔했다.
"그랬더니?"
"조조가 말하기를 저의 말은 당치 않다고 하며 자신은 주공을 대하기를 매 기르듯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우와 토끼가 아직 남아있는데 어찌 매를 배불리 먹이냐고 하면서 매란 배를 주리면 쓸모가 있지만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여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는 조조가 말한 진의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진등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대체 누가 여우와 토끼냐고 했더니 회남의 원술, 강동의 손책, 기주의 원소, 형양의 유표, 익주의 유장(劉璋), 한중의 장노(張魯)가 바로 여우요 토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포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껄껄 웃으며 뽑았던 칼을 거두어버렸다.
"조조란 놈이 그래도 사람 볼 줄은 아는군, 그래!"
기실 진등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 역시 조조가 보기에는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포의 생각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여포가 자신을 원술이나 손책, 원소 등보다 높이 평가했다는 데서 만족을 느낀 것이었다. 물론 진등은 그 점을 노리고 없던 말을 둘러댄 것이었다.
두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급보가 전해졌다.
원술이 수하들을 총동원하여 서주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포는 뜻밖의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