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놀랍게도 진중이 쑥대밭이 된 채 장수의 무리들이 이리저리 치달리고 있었다. 전위는 급한 김에 수하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이 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날뛰는 것이냐!"
전위는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갔다. 장수의 무리들이 그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러나 상대는 전위였다. 칼 빛이 포물선을 그리는 순간 한꺼번에 십여 개의 수급이 땅에 떨어졌다. 전위는 수십 명에게 포위된 채 혈전을 벌였다.
그는 미처 술이 깨지 못한 상태였으나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의 무위는 실로 가공하여 얼마 후 그의 발치 아래에는 시신이 즐비하게 널리게 되었다. 한참 후 칼날이 모두 나가 쓸모가 없게 되자 이번에는 맨주먹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주먹과 발길질을 할 때마다 사오 명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날뛰는 그를 당할 자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수의 무리는 겹겹이 그를 에워싼 채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슈슈슈슝!
수백 대의 화살이 그에게 집중적으로 날아갔다. 날개가 달려 날아가지 않는 한 피할 방도가 없었다. 전위의 몸은 이내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을 부릅뜬 채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죽어라!"
문득 뒤쪽에서 고함이 들리더니 장창이 날아와 그의 등에 박혔다. 창은 등을 관통하여 가슴을 뚫고 비어져 나왔다.
"으와아아악!"
전위는 크게 고함친 후 울컥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가 쓰러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날 때까지도 장수의 무리들은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만큼 두려웠던 것이다.
한편 조조는 전위가 막고 있는 사이에 막사 뒤로 돌아가 말을 타고 달아나고 있었다. 그를 따르고 있는 자라곤 조안민 뿐이었는데 그나마 말도 없이 뛰어서 따를 뿐이었다.
조조는 이미 오른쪽 팔에 화살을 맞았고, 그가 탄 말도 세 군데나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 대완(大宛) 땅의 명마라 부상을 입고도 빠른 속도로 달려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기 조조가 도망친다!"
"쫓아라!"
그가 진중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달리는데 장수의 무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는 이를 악물고 말을 재촉하여 달아났다. 얼마쯤 가자 강이 나타났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뒤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장수의 무리가 조안민을 난자한 것이었다. 조조는 조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말을 몰아 강물로 뛰어 들었다. 다행히 애마는 그를 태운 채 힘차게 물살을 헤쳐 강을 건네주었다.
"어서 가자! 네가 날 구해주는 구나."
그 때였다. 애마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주저앉아버렸다. 장수의 무리가 쏜 화살에 정통으로 눈알을 맞은 것이었다. 조조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말이 죽어버렸으니 이제 무슨 수로 달아난단 말인가?
"아버님! 제 말을 타십시오."
이 때 뒤늦게 따라온 아들 조앙(曹昻)이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건네주었다. 조조는 엉겁결에 말에 올라탔다. 자신이 말을 타고 떠가면 조앙이 어찌될지는 뻔한 노릇이었지만 가슴속에 비분과 한이 쌓여있는 그는 이를 악물고 채찍을 휘둘렀다.
"이럇!"
그는 사력을 다해 달아났다.
"크으아악!"
뒤에서 조앙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 귓전을 아프게 후볐다. 조조의 눈에는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충성스런 부하 전위와 함께 조카 안민, 그리고 애자마저 잃었으니 그의 심정은 피를 토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하늘이 날 꾸짖음이리라!'
여색(女色)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으랴! 조조는 수없이 자신을 자책하며 어둠 속을 내달렸다.
한참을 달아난 끝에서야 겨우 장수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사방으로 흩어졌던 수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비로소 그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하후돈이 이끄는 수하들 중에는 과거 이각과 곽사를 따르던 도적출신들이 많았다. 그들은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허도를 떠나 완성에 이르는 도중에 종종 대오를 이탈하여 민가를 노략질하곤 했다.
마침 후군을 맡고 있던 우금(于禁)이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대로하여 그들을 잡아서 목을 베어버렸다. 평소 의협심이 강한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친 도적들은 곧바로 조조의 진영에 합류했다.
그들이 앞을 다퉈 조조에게 보고했다.
"우금이 모반했사옵니다! 많은 무사들이 그의 손에 죽었습니다!"
조조는 크게 놀라지 않았을 수 없었다.
얼마 후 하후돈, 허저, 이전, 악진 등이 합류하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금이 모반했으니 그를 칠 준비를 해야겠다."
상황이 너무나 고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5만의 대병력을 이끌고 당당하게 허도를 떠났던 그가 한낱 계집에게 빠져 대사를 그르쳤을 뿐더러 유능한 부하와 아들, 조카까지 잃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우금에게조차 배신당했으니 체면이 이만저만 손상된 게 아니었다.
한편 우금은 조조의 본진이 가까이 이른 것을 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수하들을 정비하여 진을 친 후 장수를 막을 만반의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도적놈들이 공을 모반했다고 모함했는데 어찌하여 사실부터 알리지 않고 싸울 채비만 하는 것입니까?"
우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적이 코앞에 와있는데 싸움에 대비하지 않으면 어찌 물리치겠느냐? 변명하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적을 물리치는 것은 큰일이다."
그가 막 진영을 구축했을 때 장수가 두 방향으로 나뉘어 쳐들어왔다. 우금은 선봉이 되어 달려 나갔다. 그의 용맹한 기세를 본 장수는 주춤하여 뒤로 물러났다. 우금이 고함치며 단신으로 장수를 쫓아가자 무사들도 일제히 공격을 펼쳤다.
때마침 조조의 본진이 당도하여 함께 몰아치자 장수는 대패하여 도망치기에 바빴다. 100리가 넘도록 추격을 하자 장수는 급기야 얼마 남지 않은 무사들과 함께 완성을 버리고 유표에게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