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는 노기충천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장비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산적으로 위장하여 말을 강탈했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장 무사들을 동원하여 소패로 달려갔다.
한편 유비는 여포가 쳐들어오자 당황하여 친히 무사들을 데리고 나와 맞이했다.
"여공께서 어인 일로 몸소 나서신 것이오?"
여포는 흥분하여 손가락으로 유비를 가리키며 외쳤다.
"내 일전에 활을 쏘아 너의 위기를 건져주었거늘 어찌하여 내 말을 뺏어간단 말이냐?"
유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불초가 비록 말이 부족하여 사방에서 사들이고 있긴 합니다만 어찌 여공의 말을 강탈한단 말이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이다."
여포는 더욱 흥분하여 외쳤다.
"네가 장비를 시켜 내 말을 백오십 필이나 앗아가지 않았느냐? 내 다 알고 왔으니 발뺌할 생각일랑 버려라!"
그 때 장비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삿대질을 했다.
"그래! 내가 네 말을 빼앗았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여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 고리눈의 도적놈아! 네 놈이 매번 날 깔보니 내 오늘은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다!"
장비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내가 네 말을 좀 뺏었다고 성깔을 낸다마는 그렇다면 네 놈이 형님께 서주를 뺏은 것은 왜 말하지 않는 것이냐?"
여포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천극도를 뽑아들고 말을 달려 나갔다. 장비 또한 대갈을 터뜨리며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은 성격이 극과 극인데다 서로 간에 앙숙이므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장비는 장팔사모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덤벼들었고, 여포는 천극도로 줄기줄기 가공할 섬광을 뿌려대며 신의 경지에 이른 도법을 전개했다. 두 고수의 싸움은 가히 천하무쌍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격돌할 때마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지고 천둥벽력이 치는 듯했다.
두 사람의 주위 십장 이내는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접근할 수조차 없었으며 이따금씩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순식간에 100합을 지났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유비는 눈을 가늘게 한 채 싸움을 지켜보다가 수하로 하여금 징을 치게 했다. 장비로 하여금 급히 돌아오라는 신호였다.
장비는 외마디 고함과 함께 장팔사모로 여포를 물리친 후 말을 돌려 돌아왔다. 유비는 급히 무사들을 거두어 소패 부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버렸다. 반면 여포는 그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소패를 이중삼중으로 포위해버렸다.
유비는 부중에서 장비를 불러 책하였다.
"네가 여포의 말을 무단히 뺏어왔기 때문에 이런 분란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 말들은 대체 어디다 두었느냐?"
장비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사원에다 두었소이다."
유비는 곧바로 여포에게 사람을 보내 말을 돌려줄 테니 무사를 거두어달라고 청을 했다. 여포는 유비에게는 감정이 없는지라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자 진궁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번에 유비를 죽이지 않으면 후일 반드시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여포는 내심 생각했다.
'하긴 그렇다. 장비란 놈이 사사건건 시비를 붙으니 언젠가는 크게 싸우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이번에 싹 쓸어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는 마음을 돌려먹고 이번 기회에 소패를 탈취하기로 결정했다.
유비는 그가 무사들을 철수시키지 않자 미축과 손건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어찌 했으면 좋겠소? 여포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오."
손건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조조는 오래 전부터 여포를 증오해왔습니다. 차제에 이 곳을 버리고 허도로 가 조조에게 구원을 청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무사들을 빌려주면 그 때 가서 여포를 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비는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구려. 하지만 포위가 저리 엄중한데 어찌 뚫고 나갈 수가 있겠소?"
그러자 장비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형님!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앞장서서 길을 열겠소이다."
유비는 장비를 보고 탄식했다.
"아아!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을 어찌 자네를 탓하겠는가? 그렇게 하도록 함세. 자네가 앞에서 길을 열고 관우 아우가 뒤를 맡게. 여자와 어린아이, 식솔들은 내가 중진에서 직접 이끌고 가겠네."
그날 밤 삼경 무렵이었다. 유비는 소패의 북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 그것을 본 송헌과 위속은 곧바로 길을 막고 덤벼들었다.
"이 놈들아! 장비 어른이 나가시는데 누가 감히 길을 막는단 말이냐!"
장비가 천둥 같은 외침을 발하며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송헌과 위속이 함께 달려들었으나 장비의 신력을 당할 수가 없었다. 장비는 놀라운 무위를 발휘하며 포위를 뚫고 나갔다.
전갈을 받은 장요가 수천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달려와 유비의 후진을 쳤다. 후진을 맡고 있는 것은 관우였다. 관우는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장요의 무리를 천신과도 같은 위풍으로 막아냈다. 그 바람에 유비 일행은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다.
여포는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유비가 식솔들을 거느린 채 소패를 버리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처음과 달리 더 이상 추격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그는 명을 내려 무사들을 돌아오게 한 후 소패를 접수했다.
소패는 서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작은 곳이었으나 전략적으로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는 고순으로 하여금 소패를 지키도록 한 후 서둘러 서주로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