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아아아!"
여포의 입에서 장소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만월처럼 당겨졌던 활시위가 놓아졌다.
쉬아아아앙!
힘차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카로운 음향을 내며 밤하늘에 흐르는 유성처럼 날아가 정확히 천극도의 자루에 매달려 있는 수술을 맞추었다. 실로 신기(神技), 아니 귀신도 곡할 활솜씨라 아니할 수 없었다.
"와아아!"
그 광경을 본 여포의 수하들을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유비는 한숨을 쉬며 은밀히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편 기령은 입을 딱 벌린 채 넋을 잃고 말았다.
여포는 껄껄 웃으며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두 분으로 하여금 화해하라는 지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는 수하에게 큰소리로 명을 내렸다.
"여봐라, 술을 가져오너라. 큰 잔으로 한 잔씩 마셔야겠다!"
유비는 호방하기 그지없는 여포의 풍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천하제일고수라 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기령은 잔뜩 풀이 죽은 채 말했다.
"내 여공과 약조를 했으니 명을 어길 수 없겠구려. 하지만 돌아가 주공께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실 것이니 그것이 걱정이오."
여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서신을 써드리면 되지 않겠소."
여포는 지필묵을 가져오라 이른 후 연신 큰 사발로 술을 마셨다. 잠시 후 기령은 그가 써준 서신을 갖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돌아갔다. 유비 또한 여포에게 거듭 치사한 후 관우, 장비와 함께 소패로 돌아갔다.
원술은 기령의 보고를 듣고 대로했다.
"여포가 그 많은 양곡을 받아먹고도 해괴한 장난질을 벌여 유비의 편을 들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내 대군을 이끌고 가 유비를 먼저 치고 놈을 응징해야겠다!"
그가 워낙 펄펄 뛰는 바람에 기령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원술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일은 감정으로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여포는 용력이 대단한데다 서주의 무사들 또한 만만찮습니다. 게다가 소패의 유비와 손을 잡으면 그 힘이 배가될 것입니다. 계책을 써야합니다."
원술은 귀가 솔깃했다.
"무슨 계책이라도 있단 말인가?"
기령은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기로 여포에게 딸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마침 주공께도 아들이 있으니 이 참에 구혼을 하십시오. 여포가 받아들이면 그 때는 친척이 되는 것이니 유비를 죽일 수 있게 됩니다. 이를 두고 소불간친지계(疏不間親之計)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술은 무릎을 탁 쳤다.
"그거 좋은 계책이야!"
그는 즉각 한윤에게 예물을 갖추게 한 후 서주로 가 청혼하도록 했다. 며칠 후 한윤은 여포를 만나 예물을 내놓으며 정중히 말했다.
"주공께서는 여공을 흠모하시어 이번에 특별히 사돈을 맺고자 하여 청혼을 하셨습니다. 두 집안이 한 집이 되면 만사가 형통할 테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포는 뜻밖의 제의에 어리둥절했다.
기실 그에게는 수양딸이 있었다. 초선이 오래전부터 쓸쓸함을 달래려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비록 수양딸이었으나 초선이 워낙 아끼고 사랑하기에 그 역시 친딸처럼 아껴온 터였다. 그는 초선을 만나 그 일을 상의하기로 했다.
초선은 뜻밖인 듯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술은 일찍이 회남에 자리 잡아 그 성세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머지않아 무림의 황제가 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만일 혼사가 이루어진다면 장차 우리 딸은 황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포는 신음을 발했다.
"음, 나도 원술이 스스로 무림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듣긴 했소."
"하면 원술에게 아들이 몇이나 되옵니까?"
"하나라고 들었소."
초선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게 없을 것 같사옵니다. 설혹 황후가 못된다고 해도 원술과 가까이 하게 되면 서주는 안전해질 게 아니옵니까?"
"하기는 그럴 것이오."
여포는 결정을 내렸다. 초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기도 했지만 이번의 제의는 꽤 쓸만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여포는 한윤을 융숭히 대접한 후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서신을 써서 돌려보냈다.
원술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혼인예물을 갖추어 한윤을 다시 서주로 보냈다. 여포는 예물을 받은 후 한윤을 예우하여 부중에 머물도록 했다.
이튿날이었다. 홀연히 진궁이 한윤을 찾아갔다. 진궁은 미리 작심하고 온 듯 한윤에게 주위를 물리치게 한 후 은밀히 입을 열었다.
"대체 누가 이런 계책을 내었소이까? 실은 사돈을 맺는 것이 유비를 치기 위한 계책에 불과한 것이 아니오?"
한윤은 깜짝 놀라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걸 어떻게ㆍㆍㆍ 설마 그 말을 여공께 고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한윤은 진궁이 은밀히 찾아온 것이 필경 딴 뜻이 있음을 눈치 채고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공이 입만 다물어 준다면 내 그 은덕을 잊지 않겠소."
진궁은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내 발설은 않겠소만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이오. 혼사를 길게 끌게 되면 종국에는 파탄이 나게 될 것이오."
한윤은 바짝 달라붙었다.
"그럼 어찌했으면 좋겠소? 방책을 일러주시오."
"내가 주공께 당장 따님을 원공께 보내 혼례를 치르도록 말해 보겠소."
한윤의 눈이 커졌다.
"그게ㆍㆍㆍ 가능하다면야."
"두고 보시오. 내 말대로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