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일행은 여포의 막사로 들어갔다. 관우와 장비는 병기를 움켜쥔 채 유비의 뒤에 서서 바짝 긴장했다. 두 사람은 여포를 믿지 않았으므로 여차하면 유비를 모시고 달아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저 빙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밖에서 한 명의 무사가 보고했다.
"기령이란 분이 도착했습니다!"
"뭣이!"
제일 먼저 장비가 버럭 외치며 장팔사모를 번쩍 치켜 올렸다. 당장에라도 여포의 머리통을 바수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여포는 다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 두 분을 함께 청한 것은 화해시키기 위해서지 딴 뜻이 아니오. 두고 보면 알 것 아니오?"
그 말에 유비는 점잖게 장비를 나무랐다.
"병기를 거두어라. 아우."
이 때 막사 안으로 누군가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며 굳어 버린다. 그 자는 바로 기령이었다. 기령의 눈은 의자에 앉아있는 유비에게 꽂혀 있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여포는 신형을 날려 저만치 달아나는 기령의 앞을 막아섰다.
"이게 무슨 짓이오?"
기령이 기겁을 하며 항의했지만 여포는 가볍게 기령의 팔목을 낚아채더니 어린아이 다루듯 도로 막사로 향했다. 기령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항의했다.
"날ㆍㆍㆍ 죽일 참이오?"
여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소?"
"그럼ㆍㆍㆍ 유비를 죽이려는 거요?"
기령은 기대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여포의 대답은 엉뚱했다.
"그것도 아니오."
"그럼ㆍㆍㆍ 대체 어찌 하실 작정이오?"
"유비로 말할 것 같으면 내 형제나 다름없는데 이번에 어려운 지경에 처했기에 구원하러 온 것이오."
기령의 안색은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날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오?"
여포는 유들유들하기만 했다.
"본래 나는 평생 싸움하는 것보다는 화해 붙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오. 그래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는 것이오."
기령은 내심 욕을 퍼부었다.
'네가 싸움을 싫어한다고? 어린아이도 웃겠다!'
하지만 목숨이 여포의 손에 달려있는지라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위축된 음성으로 물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화해를 시킨다는 것이오?"
"내게 한 가지 방법이 있소. 다름 아니라 천의(天意)에 따르자는 것이오."
"천의라니?"
여포는 대답 대신 기령의 손을 잡아끌고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유비와 기령은 서로 간에 적인지라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은 채 외면했다. 여포는 두 사람을 좌우에 앉게 한 다음 연석을 베풀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술잔을 듭시다."
두 사람은 마지못해 술잔을 들었지만 조금도 즐겁지가 않았다. 여포는 두 사람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여러 순배 술잔을 돌린 후에야 본론을 꺼내놓았다.
"두 분이 날 봐서라도 진을 파하고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떻소?"
유비의 입장에서야 받아들이고 말 것이 없는지라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기령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초는 주공의 명을 받들어 대군을 거느리고 유비를 잡으러 왔는데 어떻게 이대로 돌아가란 말이오?"
그 말에 장비가 장팔사모를 번쩍 치켜 올리며 노갈을 터뜨렸다.
"이 놈아! 뭐가 어째? 우리가 수가 적다고 깔보는 거냐?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기령은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가 막 칼을 뽑으려는 순간 여포가 만류했다.
"나는 두 분에게 화해를 도모코자 청한 것이지 서로 싸우라고 부른 게 아니오. 진정들 하시오."
하지만 장비와 기령은 씩씩거리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양이 한 치도 양보할 태세가 아니었다. 여포는 돌연 고함을 쳤다.
"여봐라! 천극도를 가져오너라!"
여포의 수하가 천고의 신병 천극도를 받들어 올리자 막사 안의 인물들은 해연히 낯빛이 변해버렸다. 여포는 천극도를 움켜쥔 채 엄숙하게 말했다.
"내가 두 분에게 화해를 권하는 것은 오로지 천명(天命)에 따르고자 함이오. 모두들 나오시오."
유비와 관우, 장비, 기령은 어리둥절한 채 여포를 따라 막사를 나섰다. 여포는 수하를 시켜 천극도를 멀찌감치 땅에다 꽂아 세우게 한 후 말했다.
"여기서 칼이 꽂혀 있는 곳까지는 일백 오십 보요. 내가 만약 단 한 대의 화살을 쏘아 천극도의 수술을 맞춘다면 두 분은 즉각 진을 철수시키시오. 만약 맞추지 못하면 각기 진으로 돌아가 싸울 준비를 하시오. 단,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두거니와 내 말을 어긴다면 한쪽과 합세하여 치겠소. 이것이 바로 천명인 것이오."
실로 뜻밖의 제안이었다. 기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극도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보아도 천극도의 형체는 가물거리기만 할 뿐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저 먼 거리에 있는 천극도의 수술을 무슨 수로 맞춘단 말인가? 일단 승낙해 놓고 보자. 맞추지 못할 게 뻔하니 그 때 가서 싸워도 늦지는 않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여공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이다."
유비 역시 손해 볼 것이 없는지라 바로 승낙했다. 여포는 껄껄 웃으며 수하에게 활을 가져오라고 명을 내렸다. 잠시 후 그는 소매를 걷어붙인 채 활시위를 당겼다.
'제발 맞춰 주시게.'
유비는 내심 그같이 기원하고 있었다. 반면 기령은 편안한 심정이었다.
"설사 활의 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