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술은 실로 후회막급이었다.
'놈을 우리에서 풀어놓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손책이란 어린 호랑이는 그의 우리 안에 있을 때는 통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통제 불가능한 맹수가 돼버렸다. 아니, 자칫하면 거꾸로 물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원술은 모사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놈이 이렇게 된 게 누구 덕분이란 말인가? 배은망덕한 놈! 뭐? 물건을 돌려달라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놈을 응징할 계책이 없겠느냐?"
원술이 노성을 지르자 양대장이 신중하게 말했다.
"손책은 지금 장강(長江)을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 공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정예무사들이 수십만이요, 물자 또한 풍부하니 감정만 가지고 함부로 싸울 일이 아닙니다."
원술은 눈을 부릅떴다.
"그럼 놈이 날뛰도록 놔두잔 말인가?"
양대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놈은 지금 날이 선 칼날과도 같습니다. 잠시 예봉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으음!"
원술은 무거운 신음을 발했다. 양대장의 말이 옳았다. 손책은 이미 어제의 손책이 아닌 것이다.
"차라리 유비를 치는 것이 좋습니다. 놈이 까닭 없이 침범한 것을 물어 제거함으로써 후환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적을 둔 채 손책을 치느니 유비 쪽이 낫습니다."
양대장의 말에 원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하기는 유비란 놈이 코앞에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야."
양대장은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는 듯 일사천리로 말했다.
"유비는 지금 소패란 곳에 머물고 있어 그 성세가 보잘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여포가 문제입니다. 일전에 약속한 물품들을 주지 않아 감정이 틀어져있으니 어쩌면 유비를 도울지도 모릅니다."
원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무지한 놈이 나서면 골치깨나 아플 텐데."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여포에게 지난 날 약조했던 양곡과 물품들을 보내면 굳이 유비를 도우려 하지 않을 겁니다. 놈도 어느 쪽이 실익이 있는지 잘 알 것입니다. 유비를 먼저 제거한 후에 다시 여포 도모한다면 서주는 통째로 들어오게 됩니다."
원술은 무릎을 쳤다.
"그거 좋은 계책이군!"
원술은 양곡 20만석과 함께 밀서를 써서 한윤(韓胤)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였다. 여포는 양곡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한윤을 융숭히 대접한 후 돌려보냈다. 원술은 한윤이 돌아오자 기령(紀靈)을 수뇌로 삼고 뇌박(雷薄)과 진란(陳蘭)으로 하여금 수만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소패를 치도록 명을 내렸다.
유비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원술이 대군을 몰고 달려오고 있소. 어떻게 대처함이 옳겠소?"
장비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대책은 무슨 대책이오? 놈들이 오면 달려 나가 목을 따버리면 되는 게지."
그러자 손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패에는 양곡도 넉넉잖고 무사들도 적습니다. 도무지 싸울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여포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장비는 펄쩍 뛰었다.
"뭐라고? 아니 그런다고 놈이 구해주러 올 것 같소?"
묵묵히 듣고만 있던 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소. 일단 서신을 보내봅시다."
유비의 서신을 받은 여포는 고민에 잠겼다. 그가 서주를 차지한 것은 전적으로 유비의 덕을 입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원술에게는 양곡을 얻었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이었다. 그는 진궁을 불러 밤새 의논한 후 결론을 내렸다.
"원술이 양곡을 보내며 유비를 돕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제 또 유비가 도와달라고 하니 곤란하게 됐소.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하오. 유비가 소패에 있는 것은 내게 해가 되지 않으나 원술이 유비를 삼키는 날로부터는 발 뻗고 자기 힘들 것이오. 놈의 다음 공격목표는 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오."
결론이 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여포는 수하들을 이끌고 소패로 향했다.
한편 기령은 소패에 당도하고 있었다. 그가 이끌고 온 무사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져 지평선을 다 채웠으며, 인마들이 일으키는 흙먼지는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유비는 보루에 올라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고작 오천 밖에 안 되는 무사들로 어찌 싸운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의연히 수하들과 함께 보문을 열고 나가 진을 쳤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비장한 표정으로 병기를 움켜잡은 채 유비를 좌우에서 보좌하며 목숨을 버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홀연히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일단의 무리들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여포가 이끄는 서주의 무사들이었다. 기령은 선두에 선 여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즉각 사자를 보내 서신으로 왜 신의를 어기느냐고 따졌다.
여포는 서신을 받아 읽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서 전하게. 내가 특별히 잔치를 베풀기로 했으니 왕림해달라고 말이네."
사자가 돌아가자 여포는 유비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유비는 여포가 보낸 서신을 읽은 후 궁금해 하는 관우와 장비에게 말했다.
"여공이 날 초대하니 잠시 다녀올까 하네."
관우와 장비는 안색이 변해 동시에 부르짖었다.
"이는 필경 놈의 음모입니다. 절대 가면 안 됩니다."
유비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그에게 박대하지 않았는데 날 해하진 않을 것이네."
유비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다. 관우와 장비는 할 수 없이 유비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포는 진 밖까지 친히 나와 그를 맞아들이며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이번에 유공의 위급함을 풀어드리고자 하니 훗날 내 은공을 잊지는 마시오."
유비는 감격한 듯 손을 마주잡았다.
"그야 이를 말씀이오. 여공의 은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