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ㆍㆍㆍㆍㆍㆍ."
원술은 가부좌를 튼 채 몸을 뒤틀고 있었다.
상반(相反)된 두 가지 기운이 단전(丹田)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벌써 수개월째 겪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는 원씨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일월신공(日月神功)을 익히고 있었다. 무림의 일절(一絶)로 꼽히는 일월신공은 현문(玄門) 최고의 신공으로 오늘날 그가 무림계의 정상에 설 수 있게 한 절학이었다.
그는 일월신공 외에는 그 어떤 무공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손책으로부터 백자천경을 받았을 때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백자천경은 천무대제가 남긴 전설의 무학을 담고 있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날부터 백자천경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풀기 위해 매달렸다.
마침내 백자천경에 새겨져 있는 올챙이 모양의 문자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천무대제가 남긴 무공구결이었다. 그로부터 100일 후, 그의 체내에는 지금까지 흐르던 일월신공의 기운과 전혀 다른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일어났다. 새롭게 형성된 진기와 그가 평생을 연마해온 일월신공이 전혀 합쳐지지 않은 채 임독양맥(任督兩脈)을 각각 따로따로 흐르게 된 것이다. 한 몸에 두 가지 기운이 흐른다면 정상적으로 공력을 운행할 수 없는 법이다.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인 채 두 기운을 합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그 두 기운을 단전에 억지로 몰아넣음으로써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하루에 두 차례, 자시(子時)와 오시(午時)만 되면 어김없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으아아악!"
원술은 외마디 비명을 발하며 벌렁 뒤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를 악물고 진기를 합쳐보려 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두 가지 진기는 미친 말처럼 임맥과 독맥으로 치달리며 그에게 엄청난 고통만 안겨준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ㆍㆍㆍㆍㆍㆍ."
원술은 눈을 떴다. 자시와 오시만 되면 상하를 막론하고 연공실의 출입을 금하였으므로 홀로 혼절했다가 홀로 깨어난 것이다.
그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전신은 나른했고 팔다리는 천근이나 된 듯 무거워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안색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으으ㆍㆍㆍ 설마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원술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ㆍㆍㆍ 손책이란 놈은 멀쩡하지 않은가?"
그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아직 화후(化逅)가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지."
그가 대전으로 나왔을 때 양대장(楊大將)이 초조한 듯 서성거리고 있었다. 원술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손책이 사자를 보내왔습니다."
원술은 가슴이 뜨끔했다.
"무슨 일로 왔다더냐?"
양대장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주공께 맡긴 물건을 돌려달라는 청을 갖고 왔습니다."
원술은 내심 중얼거렸다.
'결국 올 것이 왔군.'
그는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놈이 내게 빌려간 무사들을 돌려보내지 않는데 내 어찌 물건을 내줄 수 있단 말이냐? 날 뭘로 보고 그따위 소리를 한단 말이냐?"
양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놈을 놔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놈은 몇 달 만에 강동을 차지했고 연이어 강남 무림까지 쑥대밭으로 만들며 장악했습니다. 놈은 이제 날개를 단 호랑이가 돼버렸습니다."
"강남까지?"
원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겨우 수천의 무사로 강동을 장악한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강남 무림에는 엄백호(嚴白虎)가 있었다. 엄백호는 스스로를 동오무제(東吳武帝)라 칭하며 강남 무림을 군림해 온 호웅이었다.
손책의 야망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는 아우 손권과 주태에게 강동을 맡겨둔 채 곧바로 강남으로 떠났다. 그의 목적은 강남 무림을 손아귀에 움켜쥐는 것이었다. 강남의 패주인 엄백호만 무릎 꿇린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손책은 엄백호를 압박해 들어갔다. 공격을 받은 엄백호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패기만만한 젊은 손책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회계의 호웅 왕낭(王朗)과 손을 잡고 대항했다. 그러나 손책에게는 태사자, 황개, 주유, 정보와 같은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결국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왕낭은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쳐 버렸으며 엄백호는 패주하던 중 무명의 고수 동습(董襲)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말았다.
손책의 기세는 가히 폭풍과도 같았다. 강동에 이어 강남 무림을 손에 넣기까지 그는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각지의 무림인들이 앞 다투어 달려와 수하가 되기를 간청했다. 그의 무리는 하루가 다르게 구름처럼 늘어만 갔다. 이제 그의 힘은 가히 천하의 패권을 다툴만할 정도가 되었다.
손책은 강남을 평정한 후로는 더 이상 원정에 나서지 않고 수성(守成)에 힘을 쏟았다. 부하들에게는 엄격하고 공정하게 농공행상(論功行賞)을 베풀었고, 널리 인재를 모아들이며 물자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장정의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야망의 행보는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사들과 논의한 후 세 방향으로 사신을 보냈다.
첫째, 원술에게 사신을 보내 백자천경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무사들을 빌리기 위해 잠시 맡겨두었지만 백자천경에 대한 그의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자천경을 회수하리라 결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신은 허도로 보냈다. 무황 유협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서신을 보낸 것이다. 그것은 강동과 강남을 장악한 자신을 무림의 패주로 인정해 달라는 의미였다.
세 번째 사신은 조조에게 보냈다. 무황을 끼고 있는 조조와 가까이 함으로써 공손찬, 원소 등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미 조조와 친교를 나누고 있는 원술과는 긴장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