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균형이 깨진 것은 그로부터 일각이 지날 무렵이었다. 엇! 하는 다급성을 발한 태사자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손책은 고함을 치며 그를 쫓아갔다. 하지만 태사자는 패해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 작전을 바꾼 것이었다.
"네 놈이 장부라면 거기 서라!"
손책이 쫓아오며 호통을 치자 태사자는 내심 코웃음 쳤다.
'흥! 네 놈에게는 부하들이 열두 명이나 있고, 나는 혼자니 이긴다고 해도 낭패를 당할 것이 아니냐?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유인해서 상대하려는 것이다.'
태사자의 속셈을 알 리 없는 손책은 계속 그를 추격했다. 한참 후 두 사람은 개울가에 이르렀다. 태사자는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용호상박(龍虎相搏)!
두 번째 싸움은 불꽃이 튈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승부가 나지 않았다.
"제법이구나! 이 놈!"
손책이 낭랑하게 외치며 태사자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세차게 창을 찔렀다. 그런데 웬일인지 태사자는 피하려고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창이 그의 옆구리를 관통하려는 순간 교묘하게 상체를 비틀더니 덥석 창 자루를 거머쥐어 버렸다. 동시에 자신의 창으로 손책의 가슴을 찔렀다.
"어딜?"
손책 또한 상체를 벌렁 뒤로 젖혀 피하는가 싶더니 태사자의 창을 잡아 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창을 잡은 채 밀고 당기며 내력 다툼을 벌였다. 한 순간 두 사람은 한 덩어리가 된 채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지면에 떨어진 두 사람은 창을 던져버리고 주먹과 발길질로 싸우기 시작했다. 권풍(拳風)이 오가고 원앙각(鴛鴦脚)과 연환퇴법(連環腿法)이 오고갔다. 이러한 근접전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꺼려하는 것이었다. 자칫 실수하게 되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육박전은 그야말로 성난 용과 호랑이가 어울려 싸우는 것 같았다. 주먹과 주먹이 마주치는 둔탁한 격타음과 함께 그들의 의복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고 온몸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
"받아라!"
손책의 주먹이 태사자의 머리를 쳤다. 태사자가 고개를 숙여 피하는 순간 손책은 전광석화처럼 그의 등에 꽂혀있던 단극(短戟)을 낚아챘다. 태사자의 반응도 눈부시게 빨랐다. 단극을 빼앗긴 순간 번개처럼 옆으로 돌더니 태사자의 옆구리에서 패검을 뽑아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병기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각자 익숙지 않은 병장기였으나 마치 오랫동안 갈고 닦은 듯한 현란한 초식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와아아ㆍㆍㆍㆍㆍㆍ!"
홀연히 함성이 울리더니 1000명이 넘는 무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유요가 뒤늦게 보낸 무리들이었다.
'아뿔싸!'
손책은 정신이 번쩍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마침 뒤에서 정보와 황개 등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 두 사람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약속이나 한 듯이 떨어졌다. 태사자는 신형을 훌쩍 날려 유요의 무사가 타고 온 말에 뛰어 내리더니 곧바로 창 한 자루를 빌려 다시 손책을 향해 달려갔다.
손책 역시 정보가 끌고 온 말에 올라탄 후 수하들과 함께 유요의 무리를 향해 달려 들어갔다. 1000명이 넘는 무리들 속에 뛰어든 그는 조금도 위축됨 없이 종횡무진 창을 휘두르며 혈전을 벌였다.
얼마나 싸웠을까? 문득 함성이 울리며 수천 명의 무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주유가 이끄는 무리였다. 그와 함께 반대쪽에서도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유요가 이끄는 무리들이 달려왔다. 바야흐로 전면전이 벌어질 판국이었다.
번쩍!
뇌전(雷電)이 밤하늘을 갈랐다.
쏴아아아!
뒤이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굵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양측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날도 어두워진데다 폭우로 인해 싸움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양측은 각각 호각을 불어 무사들을 퇴각시켰다.
다음날 손책은 유요의 진영으로 나갔다. 그는 태사자에게 빼앗은 단극을 매달아 수하들을 시켜 소리치게 했다.
"태사자가 도망쳤기에 망정이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태사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손책의 패검을 치켜 올리며 외쳤다.
"이걸 봐라! 손책의 대가리가 여기 있다!"
양측은 격장지계로 서로를 자극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기 전에 상대의 기를 꺾으려는 의도였다. 한참 후 태사자는 말을 타고 나오며 소리쳤다.
"손책아! 용기가 있다면 나와 다시 백합을 겨뤄보자!"
손책 역시 피가 끓는 청년이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려 하자 정보가 만류했다.
"주공께서 직접 나서실 것 없습니다. 제가 나가 잡아오겠습니다."
정보가 달려 나가자 태사자는 침을 퉤! 하고 뱉으며 말했다.
"너는 나의 적수가 아니다. 손책과 상대하겠다!"
정보는 손견과 함께 천하를 질타했던 절정고수였다. 새파랗게 젊은 태사자가 자신을 무시하니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노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두 사람은 한가운데서 만나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한 명은 패기 넘치는 청년고수요, 한 명은 백전노장의 고수였다. 그들은 30합을 어울리며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했다. 태사자는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졌고, 정보는 정보대로 웅후한 내력과 실전경험으로 인해 조금도 밀리지 않고 싸웠다.
갑자기 유요의 진영으로부터 징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그것은 퇴각하라는 신호였다. 태사자는 말머리를 돌려 진영으로 돌아온 후 유요에게 따졌다.
"저 늙은 놈을 곧 때려잡으려는 순간인데 어째서 돌아오라는 겁니까?"
유요는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보고가 들어왔다. 주유란 놈이 곡아를 쳤는데 진무(陣武)가 내응해서 무너지고 말았다지 뭐냐? 그 바람에 영지의 반이 날아가 버렸다. 속히 말릉으로 가 설례(薛禮), 착융(窄融)과 합세해 놈들을 물리쳐야겠다."
이쯤 되면 태사자도 어쩔 수 없이 유요와 함께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손책은 우저에 이어 신정을 손쉽게 접수해버렸다.
장소는 한 가지 계책을 짜냈다.
"놈들은 곡아를 빼앗겨 우리와 싸울만한 경황이 없을 겁니다. 잠시 뜸을 들여 놈들을 안심시켰다가 오늘밤 야습을 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손책은 장소의 말을 받아들여 신성에 머물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그는 무사들을 다섯 대로 나누어 추격했다. 유요는 생각지도 않았던 야습에 속수무책이었다. 유요의 무리는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손책이 곡아에 당도하자 주유가 수하들을 이끌고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손책이 부중으로 들어가 상좌에 착석하자 주유는 괴이한 용모의 사나이를 데려와 소개했다.
"이 자는 진무란 자인데 내응해주어서 손쉽게 곡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책이 살펴보니 진무는 거구의 몸집에 낯빛이 누렇고 눈동자가 붉은 괴인이었다. 일견하기에도 신력(神力)이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손책은 또 한 명의 인재를 얻었음을 알고 기뻐했다.
며칠 후 그는 진무를 선봉으로 삼고 설례를 치러 떠났다.
과연 진무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작 10여명의 수하들만 대동한 채 설례의 진중으로 뛰어들더니 일각도 못되어 50여개의 수급을 잘라 돌아온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설례는 공포에 질려 감히 싸우려 들지 않고 보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손책은 몇 차례나 설례를 끌어내려 했으나 응하지 않자 전열을 가다듬어 전면전을 벌이려했다. 그런데 긴박한 소식이 날아오는 바람에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유요가 착륭과 함께 우저를 탈환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손책은 격분을 금치 못해 곧바로 우저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유요가 진을 친 곳에 바짝 다가가서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이 손책이 왔거늘 네 놈들은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유요의 뒤에 서있던 한 명의 거한이 창을 움켜쥔 채 말을 달려 나왔다. 그 자는 유요의 수하인 우미란 인물이었다. 우미는 용맹하기는 해도 애당초 손책의 적수가 아니었다. 손책은 단 3합 만에 장력으로 우미를 뒷머리를 내리쳐 간단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가 우미를 옆구리에 끼고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오는데 유요의 수하 번능(樊能)이 창을 비껴든 채 쫓아왔다. 손책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번능이 지척에 이르러 창으로 그의 등을 찌르려는 순간 손책의 수하들이 고함을 쳤다.
"위험합니다! 주공!"
손책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마침 번능이 창으로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손책은 입을 떡 벌리더니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우아아아아!"
번능은 심후한 내공이 실린 사자후에 칠공(七孔)으로 피를 뿜어내며 즉사하고 말았다.
"ㆍㆍㆍㆍㆍㆍ!"
그 광경에 경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어떻게 외침만으로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실 손책이 토해낸 외침은 불가사의한 신공(神功)의 일종으로 백자천경에 담겨져 있는 절학(絶學) 중의 일종이었다.
손책도 사자후의 위력이 이토록 대단할 줄을 몰랐었다. 그는 번능의 시신을 잠시 내려본 후 진중으로 돌아와 우미를 내려놓았다. 기이하게도 우미 역시 칠공으로부터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손책의 가공할 무위로 인해 유요는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연이어 벌어진 싸움에 패해 착유와 함께 예장(豫章)으로 달아난 후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말았다. 반면 손책은 수만 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새로이 얻게 되었다. 유표의 수하들이 앞 다퉈 투항했던 것이다.
손책은 다시 말릉으로 쳐들어갔다.
그는 설례가 굳게 문을 닫아걸고 있는 보루 앞까지 다가갔다. 그의 뒤에는 구름같이 많은 부하들이 따르고 있었으나 추호도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았다.
윙!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예리한 파공성과 함께 보루 위에서 암전(暗箭)이 날아왔다. 가까운 거리인데다 숨어서 쏜 화살이라 화살은 그의 허벅지에 적중되고 말았다.
"주공!"
수하들이 놀라 그를 데리고 진중으로 돌아갔다. 의원들이 황망히 금창약(金瘡藥)을 바른다, 치료 한다 법석을 떠는데도 불구하고 손책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리시오. 진영을 뒤로 물린 후 초상을 치르는 시늉을 하면 설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오."
그의 계책에 따라 손책의 무리는 진영을 뒤로 후퇴시켰다. 동시에 손책이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곡소리를 내게 하니 겉으로 보면 영락없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설례는 대희하여 장영, 진횡(陣橫)과 함께 전 무사들을 거느리고 달려나왔다.
그들이 막 손책의 진영을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동연 사방으로부터 함성이 울리며 수많은 무리들이 공격을 가해왔다.
"이 놈들아! 손책이 여기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죽었다던 손책이 공격의 선봉에 서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설례의 부하들은 혼비백산하여 창칼을 내던지며 항복하기에 바빴다.
장영은 혼전 중에 달아나다 진무의 창에 찔려 죽었으며, 진횡은 장흠의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설례는 정신없이 달아나던 중에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지조차 모른 채 잡혀 죽고 말았다.
손책은 보문을 열고 당당히 입성했다. 그는 수하들에게 말릉의 양민이나 무인들에게 추호라도 해를 가하는 자가 발견되면 엄벌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그로인해 손책은 말릉에서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태사자는 태사자였다.
그는 패잔병들을 추린 끝에 2000명의 무사들을 끌어 모았다. 그는 유요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비록 유요가 자신을 중용하진 않았다고 해도 주공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편 손책은 주유와 함께 태사자를 사로잡을 계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태사자는 지금 경현에 있습니다. 경현은 작은 곳이지만 자칫하면 장기전이 되기 쉽습니다. 무사들로 하여금 삼면에서 공격을 가하되 한 곳을 열어 도망갈 길을 열어놓으십시오. 자연히 태사자는 그 쪽으로 달아날 것입니다. 오십 리 밖에 미리 세 갈래로 미리 매복을 해두었다가 그가 온 뒤 일제히 공격을 가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