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술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하잘것없는 놈이 운 좋게 서주를 차지하더니 이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오냐, 오기만 해봐라.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무황성에 심어놓은 첩자로부터 보고를 들었을 때는 사실 긴가민가했었다. 그러나 유비가 남양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발연대로하여 즉각 무사들을 소집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조조의 계략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원술은 심복 기령(紀靈)으로 하여금 10만에 달하는 무인들을 대동하고 서주로 쳐들어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유비 또한 남양으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양측은 중간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기령은 50근이 넘는 삼첨도(三尖刀)를 사용하는 고수로 원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비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유비 이 촌놈아! 대체 뭘 믿고 남양을 침범하는 것이냐?"
유비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내 무황의 칙지를 받아 무림을 어지럽히는 원술을 징벌하기 위해 왔다! 네 놈이 감히 무황성에 반기를 든다면 응분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기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대뜸 말을 달려 쳐들어갔다. 그것을 본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옆구리에 낀 채 달려 나갔다.
"하찮은 놈이 어디서 날뛰는 거냐?"
두 고수는 마주치자마자 불꽃 튀는 싸움을 벌였다. 본시 관우의 무예는 널리 알려진 바 있었다. 기령 역시 만만치 않은 고수로 끝이 3갈래로 갈라진 삼첨도는 상대의 병기를 낚아채는 묘용이 있을뿐더러 그가 평생을 연마해 온 절혼도법(絶魂刀法)은 초식을 전개할 때마다 혼백을 앗아갈 듯한 귀곡성(鬼哭聲)을 토해냄으로 인해 상대로 하여금 심금을 떨리게 하는 절학이었다.
치열한 싸움이 30합을 넘겼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령은 차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관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80근이 넘는 청룡언월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기는 점차 그의 사지를 얽어매고 있었다.
"자ㆍㆍㆍ 잠깐만 쉬었다가 싸우자!"
급기야 기령은 외마디 소리를 지른 후 뒤로 물러났다. 관우도 병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적을 쫓지 않는 것은 그의 타고난 성품이었다. 그가 진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편에서는 기령이 아닌 다른 인물이 병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그 자는 기령의 수하인 순정(筍正)이란 인물이었다.
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기령은 왜 안 나오느냐? 그 자와 겨루겠다!"
순정은 무시당했다고 느껴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쓴단 말이냐? 너 같은 무명소졸은 나로서도 충분하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관우의 수염이 뻣뻣하게 뻗치며 휘날렸다.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즉각 말을 달려 나갔다. 두 필의 말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카캉! 하는 금속성이 고막을 울리는가 싶더니 피보라가 일어났다.
"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순정의 몸뚱이가 동강나며 말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그것을 본 유비의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와아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서주의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기령은 순정이 단 1합 만에 죽어버리자 그만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게다가 기세가 오른 서주무인들이 총공격을 가하는 바람에 삽시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첫 싸움은 기령의 패배로 끝나버렸다. 기령은 회음(淮陰)까지 달아나 하구(河口)에 진을 친 채 좀처럼 싸우려 하지 않았다. 관우의 가공할 무위에 질린 그는 서뿔리 싸우기 보다는 수적인 우세로 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는 이따금 기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패해 물러나고 말았다. 유비의 전술과 관우의 탁월한 무예로 인해 서주무인들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했을 뿐더러 싸우면 싸울수록 용맹해지고 있었다. 결국 양 진영은 장기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장비는 서주를 지키고 있었으나 모든 잡무는 진원룡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그는 오직 무사들의 군기를 잡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심심하면 무사들을 연무장으로 끌어내 무예훈련을 시키거나 양편으로 나누어 전투훈련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재미가 없어지자 어느 날 무사들과 부중의 시종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형님께서는 내가 실수라도 할까봐 술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소. 하지만 오늘 하루만은 술을 마음껏 마시고 내일부터는 술을 끊은 채 부중을 지키는데 전념하려고 하오. 그러니 오늘은 모두 취하도록 마십시다!"
그의 일방적인 선언과 함께 술항아리가 줄줄이 들어왔다. 그것을 본 진원룡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장비는 직접 술항아리를 끼고 좌중을 돌아다니며 술잔을 권했다.
무사들은 감히 사양할 수 없어 그가 주는 잔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순배가 조표(曹豹)에게 이르렀을 때였다. 조표는 안색이 변하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 술을 끊기로 맹세하였으므로 마시지 않겠소이다."
장비는 화를 벌컥 냈다.
"이 놈이? 분위기도 모른단 말이냐? 내 기어이 마시게 하고야 말겠다!"
장비가 험악하게 윽박지르는 바람에 조표는 그만 겁이 나서 술잔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장비는 껄껄 웃으며 나머지 잔을 다 돌린 후 자신은 큰 술잔으로 항아리의 술을 수십 잔이나 떠 마셨다. 큰 항아리가 다 비워지자 그는 얼큰하게 취해버리고 말았다.
그쯤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일단 발동이 걸린 그는 다른 항아리를 들고 수하들에게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술잔이 재차 조표에게 이르자 조표는 울상이 되어 사정했다.
"이젠 정말 못 마시겠소이다."
"이 놈아! 아까는 마셨는데 왜 못 마시겠다는 거냐!"
장비가 윽박지르며 술잔을 들이밀자 조표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장비의 주벽(酒癖)이 그만 도지고 말았다. 그는 술잔을 내팽개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 놈이 군령을 어겼으니 곤장 백 대를 쳐 징계하고 말겠다!"
그는 수하들에게 조표를 끌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참다못한 진원룡이 나서서 말했다.
"주공께서 떠나실 때 뭐라고 하시었소? 제발 정신 차리시오."
하지만 장비는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 놈아! 무사들을 지휘하는 건 내 일이지 네 놈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참견하면 네 놈도 곤장을 먹여주마!"
진원룡은 탄식하며 물러나고 말았다. 이 때 조표가 장비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익덕공, 제발 부탁이오. 내 사위를 봐서라도ㆍㆍㆍㆍㆍㆍ."
장비는 어리둥절하여 반문했다.
"네 사위가 누구란 말이냐?"
조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익덕공도 잘 아시는 여포라오."
"뭣이?"
장비의 눈썹이 거꾸로 치솟았다. 그는 콧김을 뿜어내며 버럭 소리쳤다.
"내 겁이나 주려고 했는데 네 놈이 여포를 등에 업고 날 놀리려 하니 정말 곤장 맛을 봐야겠다! 내가 널 매질하는 건 바로 여포란 놈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포는 최근 한 명의 부인을 더 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에게는 초선이 있었으나 장부에게 삼처사첩은 흠이 아니었다. 여포가 조조에게 패한 후 잔뜩 풀이 죽어있는 것을 보고 초선이 직접 나서서 조표의 딸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이도록 간곡히 권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