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와 여포는 밤늦도록 술을 마신 후 헤어졌다. 다음 날이었다. 관우와 장비가 아침 일찍 찾아오더니 따지듯이 물었다.
"형님이 왜 그토록 여포를 감싸는지 모르겠소이다."
평소에 말이 없던 관우조차 이번 일만은 꽤 불만인 듯했다. 유비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알다시피 조조의 계략일세. 그 자는 나와 여포가 손을 잡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네. 그걸 알면서도 어찌 계략에 말려 들단 말인가?"
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장비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젠장! 난 어떻게든 놈을 죽여 버리고 말겠소. 그래야 후환이 없단 말이오."
유비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건 장부의 도리가 아니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진정하게."
다음 날 유비는 무황의 사자에게 사은의 서신을 건넨 후 조조에게 별도로 답서를 전달하도록 했다. 답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여포를 죽여 달라는 부탁에 대해 '차후에 도모하겠노라'고 쓴 것이었다.
조조는 유비가 보낸 답신을 읽고 코웃음 쳤다.
"역시 간교한 놈이로군.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는 순욱을 보고 물었다.
"자네의 계책이 틀어졌네. 다른 수가 없는가?"
순욱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이번에는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를 써보지요."
"범을 몰아 이리를 삼키게 한다? 그건 또 무슨 계책인가?"
"먼저 원술과 유비로 하여금 싸움을 붙이게 하십시오. 원술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유비가 치러 온다고 일러주는 한편 유비에게도 무황의 밀지를 내려 원술을 치라는 명을 내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양쪽이 싸움을 일으키면 여포란 놈은 반드시 딴 생각을 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호탄랑지계입니다."
조조는 탄성을 발했다.
"역시 순욱이로다!"
그는 즉시 원술에게 사람을 보내고 동시에 무황의 가짜 밀지를 만들어 유비에게도 보내도록 했다.
유비는 다시 무황의 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몸소 부중에서 나와 정중히 맞이했다. 사자로부터 무황의 밀지를 받아 읽은 그는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화답하여 말했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곧 출병토록 하겠소이다."
사자가 돌아간 후 미축과 진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조의 계략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수락하신 겁니까?"
유비는 담담히 말했다.
"계략인 줄은 아오. 하지만 무림인으로서 어찌 무황의 명을 어길 수 있겠소?"
단지 그 뿐이었다. 미축과 진등은 도무지 유비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비가 워낙 담담히 말하므로 그에게 필시 깊은 뜻이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유비는 그 날로 원술을 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군사들을 모아놓고 작전회의를 하는데 손건이 근심스러운 듯 말했다.
"서주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먼저 누가 남아서 지킬 것인지 정해야합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둘러보며 물었다.
"누가 남아서 지키겠느냐?"
"아우가 남겠습니다."
관우의 말에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곧 큰 싸움이 벌어질 텐데 자네 없이 어찌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장비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럼 내가 남아서 지키겠소이다."
유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게 맡길 수는 없네."
장비가 욱하고 반발했다.
"어째서 안 된단 말이오?"
"첫째, 자네는 술만 먹으면 난폭해지지 않는가? 행여 술에 취해 사고를 칠까 두렵네. 둘째로는 일처리가 원만하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이 간하는 말도 듣지 않으니 내 어찌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장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는 씨근거리다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말했다.
"내 지금부터 술을 끊겠소. 사고 또한 치지 않을 거요. 제기랄! 남의 말도 잘 듣겠소. 그래도 안 된단 말이오?"
미축이 불쑥 말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오."
장비는 마침내 벌컥 화를 내고 말았다.
"내 형님을 모시고 이제까지 신의를 지키지 않은 적이 없는데 네놈이 뭐라고 함부로 나선단 말이냐!"
유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서주를 장비에게 맡겨둔다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맡길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고개 돌려 진등을 향해 말했다.
"아우가 아무리 맹세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그대가 함께 서주를 맡아줘야겠소. 뿐만 아니라 조석으로 감시하여 아우가 술 먹고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진등은 엄숙한 표정으로 예! 하고 대답했다. 장비 또한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았다. 딴에는 이번만큼은 믿음직스런 아우가 되리라 굳게 결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음날 유비는 그 동안 훈련시킨 정예무사들을 거느리고 원술이 장악하고 있는 남양으로 출발했다. 그의 행동은 사실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번연히 조조의 계략임을 알면서도 큰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세우는 것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명분이었다. 무림인으로서 무황의 명을 받든다는 것이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다만 그 표적이 문제일 뿐이었다. 마상에 앉아 창천(蒼天)을 우러러보는 유비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감은 듯 뜬 듯 가늘게만 보이는 눈과 굳게 다물려 있는 입, 좀처럼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는 오직 그만이 지니고 있는 심유(深幽)한 내면 . 그런 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했다. 아울러 그가 이번 출정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