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명실상부한 무림의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서주의 유비였다. 유비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늘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귀 큰 놈! 꼴도 보기 싫은 놈. 이젠 네 놈을 제거해 주마.'
조조는 측근들을 불러 유비를 칠 작전을 짜기로 했다.ㆍㆍㆍ
"유비란 놈이 서주를 날로 먹더니 이젠 여포까지 옆구리에 꿰차고 말았소. 만일 그 두 놈이 합세하면 우환덩어리가 될 거요.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소?"
허저가 우렁찬 음성으로 말했다.
"저에게 무사들을 주시면 당장 달려가 놈들의 목을 따오겠소이다."
그러자 순욱이 반대하고 나섰다.
"공의 용맹이야 천하가 아는 사실이지만 용맹으로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무황성을 옮긴지 얼마 안 된 터에 큰 싸움을 벌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조조가 눈을 가늘게 하며 물었다.
"그럼 다른 방안이라도 있소?"
순욱의 눈이 빛을 발했다.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를 쓰면 됩니다."
"두 마리의 호랑이로 하여금 먹이를 다투게 한다? 무슨 뜻인가?"
"유비가 서주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아직 본성으로부터 작위를 받지 못해 명분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는 칙지를 주청하여 유비에게 작위를 내리십시오. 아울러 여포를 죽이라는 밀지를 내리십시오. 일이 잘되면 유비는 맹장을 잃게 되는 것이고,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여포가 유비를 죽이려할 테니 이것이야말로 이호경식지계인 것입니다."
"오호라!"
조조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순욱의 계책이야말로 힘 하나 안 들이고 눈엣가시를 제거할 수 있는 상책 중의 상책이었다. 그는 당장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유비는 무황이 보낸 사자로부터 서주무림을 다스려도 좋다는 윤허와 함께 작위를 제수 받았다. 그는 연회를 베풀어 사자를 융숭히 접대했다. 연회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사자는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에 작위가 내려진 것은 천원대공께서 힘을 쓰신 탓이외다. 공은 그 분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오."
유비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 이를 말씀이오? 대공께 삼가 전해 주시오. 이 유비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말이오."
사자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밀서를 내밀었다.
"대공께서 별도로 친서를 내리셨소이다. 또한 그 답을 받아오라는 말씀이 있었소이다."
유비는 밀서를 읽어보았다. 밀서를 읽는 동안 그의 축 처진 눈 꼬리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났다.
"내 아우들과 의논을 좀 해봐야겠소이다."
유비는 일단 사자를 객관으로 모시게 한 후 그 밤으로 측근들을 소집하여 조조가 보낸 밀서를 돌려 읽도록 했다.
밀서를 읽은 중인들의 안색이 모두 무겁게 변했다. 조조의 의도가 뻔했기 때문이었다. 천하제일고수 여포를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화약고를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장중을 짓눌렀다.
갑자기 장비가 큰 소리로 떠들었다.
"고민할 게 뭐 있소? 놈을 죽입시다!"
유비의 안색이 변했다.
"어찌 그리 쉽게 말하는가?"
"여포란 놈은 본래 의리가 없는 놈이 아니오? 차제에 죽여 버립시다. 그래야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거요."
장비는 여포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으므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날 믿고 찾아온 사람을 어찌 죽인단 말인가?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네."
장비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도리는 무슨 말라비틀어진ㆍㆍㆍㆍㆍㆍ."
유비의 눈이 부릅떠졌으므로 장비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유비는 미축과, 진등을 차례로 둘러본 뒤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 일은 내 판단대로 하겠소이다."
다음날 소패에 있던 여포가 찾아왔다.
"공이 작위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하례 드리러 왔소이다."
유비는 그를 맞아들이며 겸손하게 말했다.
"못난 이 몸이 분에 넘치는 작위를 받았을 뿐이외다. 공께서 이렇게 찾아와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때 여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장비가 한 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품고 왔던 칼을 뽑아들고 여포를 향해 돌진했다.
"이 놈! 네 목을 따야겠다!"
여포는 깜짝 놀라 신형을 날려 유비의 뒤로 몸을 피하며 외쳤다.
"아니? 왜 나만 보면 죽이려 드는 거요?"
장비는 칼등을 어루만지며 천둥처럼 외쳤다.
"네 놈이 하도 의리 없는 놈이라 조조가 우리 형님보고 널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다. 안 그래도 꼴도 보기 싫었는데 잘됐지 뭐냐?"
"뭣이?"
여포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때 유비가 나서더니 장비의 손에서 칼을 빼앗았다.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더 이상 망동하면 내 손으로 네 목을 쳐버리겠다!"
유비가 워낙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장비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유비는 여포를 이끌어 내실로 자리를 옮긴 뒤 조조가 보낸 밀서를 건네주었다.
"아우의 말이 사실이오. 이걸 보시오."
밀서를 읽은 후 여포는 안색이 몇 번이나 변했다. 한참 후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왜 날ㆍㆍㆍ 두둔하는 것이오?"
유비는 여포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는 우리 두 사람을 이간하려는 조조의 계략이외다. 공은 안심하시오. 이 유비는 의리 없는 사람이 아니외다."
여포는 허리를 깊이 굽히며 감격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소이다. 이 여포, 공의 은덕을 평생 잊지 않겠소이다."
천하제일고수 여포는 누구에게나 허리를 굽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생에 단 한 번 동탁을 제외하고는 늘 오만했던 위인이었다. 유비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 술이나 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