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부터 조조는 군사들과 함께 무황성을 허도로 옮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군사들도 허도로 옮기는 일에는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하기는 폐허가 된 무황성을 복원하는 일이 수월치 않을뿐더러 북쪽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남쪽에는 원술, 여포 등이 둘러싸고 있는 낙양의 위치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조가 무황성을 허도로 옮기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가신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 중에서 천문(天文)에 밝은 왕립(王立)이란 자는 공공연히 떠들어댔다.
"내 얼마 전부터 천문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태백성(太白星)이 북극성(北極星)을 범하여 천진(天津:은하수)을 건넜소이다. 뿐만 아니라 형혹성(熒惑星:화성)이 역행하여 천관(天關)에서 태백성과 만나고 있소이다. 이는 금(金)과 화(火)가 서로 바뀌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머지않아 무림의 주인이 바뀔 것이 틀림없소이다."
그의 말은 가신들 사이에 퍼지고 말았다. 과거 같았으면 왕립은 입을 놀린 것만으로 백번을 참수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인간이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새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왕립의 말에 무황성은 온통 뒤숭숭해지고 말았다. 며칠 후 왕립은 스스로 유협을 알현하여 말했다.
"천명(天命)이란 정해진 이치에 따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오행(五行) 또한 언제나 성(盛)하는 것이 아니므로 화(火)를 대신하여 토(土)가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차 무림의 주인이 될 자는 토(土)에 해당하는 인물이 될 것이옵니다."
얼핏 들으면 괴변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협은 왕립이 천문에 밝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토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왕립은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왜 말을 아니 하는 것이오?"
왕립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천기(天機)를 누설할 수 없으니 더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유협과 왕립 사이에 오간 말은 곧바로 조조의 귀로 흘러들어갔다. 조조는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왕립을 살려둔다면 대사를 그르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를 죽이자니 자신이 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는 고민 끝에 왕립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전언(傳言)하도록 했다.
<그대가 충심으로 무림의 앞날을 근심하는 줄은 아나 천도(天道)란 심오한 것이니 어찌 한낱 인간의 얕은 심중으로 헤아린단 말인가? 부디 입을 삼가기를 권하노라.>
전언을 받은 왕립은 그 날부터 굳게 입을 다물고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바깥출입까지 끊어 버린 채 두문불출하고 말았다.
조조는 곽가를 불러 질문을 던졌다.
"내 무황성을 허도에 세우려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곽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천무대제는 화(火)의 기운을 빌어 무황성을 세웠습니다. 그에 반해 주공께서는 토성(土性)을 타고 태어나신 분입니다. 오행을 살펴보면 허도는 토(土)에 속해 있어 흥할 땅입니다. 화는 토를 낳고 토는 목(木)을 생성하니 이는 동소나 왕립의 말과도 부합됩니다. 허도를 택하면 반드시 크게 흥할 것입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조조는 유협을 알현하여 자신의 주장을 폈다.
"낙양은 폐허가 되어 무황성을 재건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허도로 말할 것 같으면 물산이 풍부하고 인력 또한 동원하기 쉬우니 신은 감히 허도로 무황성을 옮기기를 주청하는 바입니다. 부디 신의 뜻을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말인즉 주청(奏請)이었으나 유협에게는 거절할 힘도 명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내심 탄식하며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가신들은 그의 심중을 헤아려 나서기는커녕 도리어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유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의 뜻이 그러하니 따르겠소이다."
며칠 후 장대한 행렬이 낙양을 출발해 허도로 향했다. 모든 것이 조조의 뜻대로 된 것이다. 조조는 선두에서 백마를 탄 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허도에 도착하면 그의 야망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는 아직 젊고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며칠 동안 행렬은 순조롭게 행진했다. 그런데 한 언덕에 아래 이르렀을 때 함성과 함께 일단의 무리들이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무리들을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닌 양봉과 한섬이었다.
"이 놈, 조조야! 대체 무슨 목적으로 무황폐하를 납치해 가는 것이냐!"
문득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한 명의 거한이 필마단기로 달려왔다. 조조는 눈을 크게 떴다. 거한이 육중한 도끼를 젓가락인양 가볍게 휘두르는 모습은 가히 천신의 모습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조조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순욱에게 물었다.
"저 자는 누구인가?"
"서황이란 자로 양봉의 수하입니다."
조조는 허저를 돌아보며 명을 내렸다.
"자네가 나가 싸워보게."
허저는 거도를 움켜쥔 채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서황 또한 지지 않고 도끼를 휘두르며 그와 맞부딪쳐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칼과 도끼가 맞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난무했고 두 필의 말은 콧김을 뿜어내며 네 발굽을 굴러 주변의 땅을 파헤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버렸다.
두 호걸의 싸움은 눈 깜짝 사이에 50합을 넘겼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칼이 번뜩이며 번갯불을 토해내는가 하면 도끼가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천지를 가르고 있었다. 너무나 격렬한 싸움이라 양 진영은 숨을 죽인 채 두 고수의 싸움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둥둥둥!
문득 조조 쪽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허저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말을 돌려 조조에게로 돌아왔고 양 진영은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조조는 군사들을 불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양봉과 한섬 따위야 아무 관심이 없소. 다만 서황은 훌륭한 재목이라 힘으로 다스리고 싶지 가 않소. 그를 거둘 수 있는 계책이 없겠소?"
그 말에 만총(滿寵)이 나서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염려 놓으십시오. 마침 서황과는 안면이 있으니 오늘 밤 그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신이 그를 설득하면 주공께 몸을 낮추어 올 것입니다."
조조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리만 된다면 내 그대의 공을 치하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