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이각이 사람을 시켜서 연회음식을 챙겨 보냈다. 음식은 온갖 희귀한 재료로 만든 산해진미였지만 그것을 본 곽부인의 질투심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그녀는 궁리 끝에 음식 속에 몰래 독을 탄 후 상을 차렸다.
"허허! 맛있게 보이는군."
곽사가 저를 들어 음식을 맛보려하자 곽부인이 만류했다.
"안돼요. 그 자가 보낸 걸 어찌 믿을 수 있나요?"
곽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독을 타기야 했겠소?"
"흥! 일단 시험해보기로 해요."
곽부인은 키우던 개를 불러 음식을 던져주었다. 개는 음식을 먹은 지 채 일각도 채 되지 않아 피거품을 품어내며 죽고 말았다. 그것을 본 곽사는 분기탱천했다.
"그 놈이 감히 독을 타다니!"
그 날부터 곽사는 이각을 의심하여 잘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각을 만나 그의 집으로 끌려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 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복통이 나고 말았다.
"필히 독주를 마신 거예요!"
곽부인은 황급히 약을 구해다 먹여 먹은 것을 모두 토하게 했다. 간신히 진정된 곽사는 대로하여 부르짖었다.
"내 이각과 함께 대사를 도모했는데 이제 와서 날 독살하려 하니 가만둘 수가 없구나! 내 먼저 놈을 치지 않는다면 필경 당하고 말 것이다!"
그는 즉각 무사들을 모아 이각을 칠 준비를 했다. 그 소식은 곧바로 이각의 귀로 흘러들어갔다.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 역시 수하들을 총동원하여 곽사를 치러 달려갔다. 양측은 대판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이후 무황성은 두 패로 갈라져 연일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그 와중에서 몰래 가신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는 놈, 힘없는 아녀자를 납치, 강간하는 놈들로 인해 무황성은 점차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모사 가후가 이각에게 은밀하게 귀띔했다.
"주공, 사람을 보내 무황과 무황후를 빼돌리십시오."
이각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조카 이섬(李暹)을 시켜 내전으로 가 유협과 무황후 복부인을 수레에 태워 빼돌렸다. 비록 힘없는 무황이라 할지라도 무림에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아직은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곽사가 달려갔지만 무황과 무황후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는 홧김에 내전에 불을 질러버리고 무황전의 시비와 식솔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어버렸다.
다음 날 그는 수하들을 총동원하여 이각과 큰 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고 양측은 비슷한 피해를 입고 한시적으로 싸움을 중지한 후 물러났다. 그 사이 이각은 무황과 무황후를 호송하여 그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밀궁으로 옮기도록 했다. 밀궁은 본래 동탁이 세운 곳으로 외부의 침입이 용이치 않은 이점이 있는 곳이었다.
무황 유협과 복부인은 시비들과 함께 감금되어 삼엄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아아! 내 신세가 이렇게 되다니ㆍㆍㆍ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하구나."
유협은 이각과 곽사의 싸움에 휘말려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밀궁으로 옮긴 후부터는 무황성에 있을 때보다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무황성에 있을 때는 하루 세 끼가 꼬박꼬박 나왔고 음식도 기름진 편이었다. 그런데 밀궁으로 옮긴 후로는 그 나마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다. 참다못한 그는 사람을 보내 이각에게 곡식과 고기를 달라고 청을 넣었다.
이각은 화를 벌컥 냈다.
"조석으로 밥을 먹여주면 됐지 뭘 또 달라는 거냐?"
그래도 무황의 청이라 그는 마지못해 약간의 고기와 곡식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되어 상한 냄새가 진동하여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으으ㆍㆍㆍ 아무리 역도라 해도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유협은 주먹을 움켜쥐며 치를 떨었다.
"내 놈에게 가서 따져야겠다!"
유협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자 시종이 황급히 만류했다.
"이각은 포악한 놈이옵니다. 더구나 곽사와 싸우고 있는 중이니 폐하께서는 자중하셔야 하옵니다."
그 말에 유협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 때였다. 밖에서 요란한 징소리와 울리더니 사방으로부터 함성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유협은 안색이 변해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시종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보고했다.
"이각과 곽사가 큰 싸움을 벌이려는 것 같습니다."
유협은 한숨을 쉬었다.
"두 놈 다 도적놈이니 어느 놈이 이긴들 무슨 상관이냐? 그래도 한 놈이라도 죽는다면 하늘의 뜻이리라."
이각과 곽사는 밀궁을 가운데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 다 한 판 승부를 결하려는 듯 비장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쉽게 싸우려 들지 않았다. 일단 싸움이 붙으면 양측 다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마주 보고 삿대질하며 욕을 하던 두 사람은 은연중 합의를 보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이 일대일로 싸워 이긴 자가 무황을 데려가도록 하자."
"좋다! 애꿎은 부하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뭐 있느냐?"
결국 그들은 수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대일로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무예는 백중지세였다. 그들은 무황성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십 합이 넘도록 싸웠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분은 잠시 손을 멈추시오!"
돌연 한 무리의 인물들이 나타나더니 싸움을 말렸다. 이각과 곽사가 손을 멈추자 양표가 앞으로 나와 포권했다.
"두 분은 잠시 고정하시오. 이 사람이 가신들의 중지를 모아 두 분에게 화해를 권고하고자 하오."
이각과 곽사는 양표와 함께 온 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무황성의 오래된 가신들로 이각과 곽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더니 각각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