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협(劉協)은 마음껏 뛰놀고 싶었다. 그 누구의 간섭받는 일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소원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무황(武皇)이 아니었다면 너무나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 한 줌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16살 아름다운 나이임에도 그는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사방이 담장으로 가로막힌 무황성의 작은 내전밖에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무황후인 복부인(伏夫人)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옥이나 다름없는 내전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폐하."
무황후는 멍하니 화원을 바라보고 있는 유협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유협의 눈썹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난들 알겠소? 내게 무슨 힘이 있다고ㆍㆍㆍㆍㆍㆍ."
무황후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그럼ㆍㆍㆍ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유협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오. 명색이 무황인 내가 그대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다니ㆍㆍㆍㆍㆍㆍ."
유협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그것을 본 무황후는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천첩이 공연한 말을 했어요ㆍㆍㆍㆍㆍㆍ."
그 때 방문 밖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 양표(揚彪)와 주준(朱儁)이 무황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유협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 어서 오시오."
두 사람이 들어서며 배례를 올린다. 그들은 무황성의 충직한 가신들로 그 동안 이각, 곽사의 눈을 피해가며 유협을 극진히 모셔온 인물들이었다. 유협의 얼굴에 오랜만에 화색이 감돌았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양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황망하옵니다. 신들이 무능하여 폐하께 아무런 힘도 되어 드리지 못해 선황을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신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주준 역시 이마를 바닥에 박으며 흐느끼듯 말했다. 유협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니오ㆍㆍㆍ 내 어찌 그대들을 책할 수 있단 말이오? 이 모두가 내가 못난 탓이거늘."
양표의 음성이 낮아졌다.
"하오면 신들이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보겠사옵니다. 폐하께서 용단을 내리시면 본성의 위엄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유협의 안색이 변했다.
"무슨 계책이 있단 말이오?"
"본성을 역도 이각과 곽사가 장악하고 있으나 그 사이 난세를 타고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조는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이각, 곽사 따위와 비견할 바가 아닙니다. 더욱이 근래 들어 수많은 모사들과 무림고수들이 구름처럼 그에게 몰려들어 그 힘이 중원을 덮는다고 합니다."
유협은 눈을 크게 떴다.
"오, 예전에 그를 본 적이 있소. 그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오?"
"폐하께서 은밀히 밀지를 내려 이각, 곽사를 치게 하면 조조는 감읍하여 봉기할 것이옵니다. 현명하신 판단으로 용단을 내리시옵소서."
유협의 눈자위가 붉어지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한다.
"내 두 도적놈들에게 그 얼마나 능멸을 받아왔소? 그 두 놈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
양표는 비장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신에게 계책이 있사옵니다. 우선 두 도적들 사이를 이간시켜 다투게 한 연후에 조조에게 밀지를 내려 놈들을 소탕케 하면 본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협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두 놈을 어떻게 갈라놓는단 말이오?"
양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반간계(反間計)를 쓰면 됩니다."
"반간계?"
양표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처를 불러 은밀히 계책을 일러 주었다. 양부인은 다음날 곽사의 처를 방문하여 귀띔을 했다.
"무환공(武桓公)께서 무원공(武元公)의 부인과 은밀히 관계를 맺고 있다는데 아시는 지요?"
이각과 곽사는 무황을 협박하여 무원공과 무환공이란 작위를 받은 후 천하를 얻은 듯 거드름을 피우며 지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두 사람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잦은 왕래를 하고 있는 터였다.
양부인의 말을 들은 곽부인의 안색이 대번에 파랗게 질렸다.
"그게 사실인가?"
"이미 무황성에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는걸요?"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할만하다. 곽부인의 눈이 대번에 길게 찢어지며 살기를 뿜어냈다.
"어쩐지! 근래 들어 부쩍 만나는 횟수가 늘었을 뿐더러 집에도 잘 안 들어온다고 했더니 내 이 연놈들을ㆍㆍㆍㆍㆍㆍ."
이를 빠드득 갈아 부치는 곽부인이었다. 양부인은 거짓 고자질을 하고도 후히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인의 질투심을 이용한 반간계는 쉽게 먹혀들고 있었다.
며칠 후 곽사가 출타할 기미를 보이자 곽부인은 눈을 가늘게 하며 물었다.
"어딜 가시는 건가요?"
"무원공이 연회를 연다고 초대했구려."
곽부인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무원공은 본래 음험한 작자인데 어째서 그 자를 그리 가까이 하시는 건가요?"
곽가는 흠칫하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무원공과 나는 한 몸이나 다름없거늘ㆍㆍㆍㆍㆍㆍ."
그의 말은 곽부인에 의해 끊겼다.
"흥! 한 몸이라니요? 당신은 어찌 그리 아둔하단 말인가요? 당신은 귀도 없어요? 벌써부터 그 자가 당신을 깔아뭉개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옛말도 모르나요?"
곽사는 한 방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ㆍㆍㆍㆍㆍㆍ."
"흥흥! 그러니까 모두들 당신을 우습게 여기는 거지요! 제발 정신 좀 차리란 말이에요!"
곽사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으나 가만히 생각하니 처의 말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각은 은연중 자신이 무황성의 일인자인양 행세하기도 했던 것이다.
곽부인은 내친 김에 그의 자존심을 더 긁어놓았다.
"그 자가 얼마나 교활한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요? 흐흥! 그 자가 부를 때마다 자존심도 없이 달려가곤 하니 더욱 더 당신을 우습게 여기는 거지 뭐예요."
곽사는 성질을 벌컥 냈다.
"누가 달려간단 말이오!"
결국 이 날 곽사는 이각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