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사양할 수 없어 두 아우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여포는 후당에 자리 잡자마자 시종에게 지시했다.
"유공께서 오셨으니 마님께 나와 절을 올리라고 일러라!"
본래 처첩을 불러내는 것은 절친한 친구나 친척 간에나 있는 일이라 유비는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니올시다. 폐만 끼칠 뿐입니다."
여포는 술기운이 오른 탓인지 다소 흥분해 있었다.
"핫핫핫! 아우님은 너무 겸양 마시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장비가 주먹으로 술상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눈알을 부라리며 호통 쳤다.
"이런 쳐 죽일 놈 봤나? 네가 뭔데 우리 형님을 아우라고 부르는 거냐!"
여포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장비는 여포를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와라, 이 놈! 나와 삼백 합을 싸워보자!"
화기애애하던 술자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유비는 안색이 굳어져 장비를 냅다 떠밀며 꾸짖었다.
"이게 무슨 망발이냐! 썩 밖으로 나가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관우가 밖으로 장비를 끌고 나갔다. 유비는 여포에게 공손히 포권하며 사과했다.
"미련한 아우가 취중망언을 했으니 여공께서는 불초를 봐서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현재의 입장이 입장인지라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화기를 나누려던 연회는 어색하게 파하고 말았다.
여포는 유비를 배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두 사람이 대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급촉한 말발굽소리가 울리더니 저만치서 장비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야 이 놈아! 네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흰소리를 했느냐! 어디 한 번 나와 삼백 합을 겨뤄보자!"
여포도 유비도 깜짝 놀랐다. 유비는 장비를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네놈이 감히 이 형을 우습게 아는 거냐!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좀처럼 화를 낸 적이 없는 유비가 이렇듯 진노하자 옆에 서있던 관우의 안색이 변하더니 휙 하니 신형을 날려 장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익덕아, 네 눈에는 형님이 안 보인단 말이냐?"
천하에 무서운 것 없는 장비도 평소 관우에 대해서만은 꼬리를 내려왔다. 관우가 떡하니 버티고 서서 꾸짖자 그는 씨근덕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여포는 두 사람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눈썹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유비가 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수없이 사과의 말을 했지만 상처받은 그의 자존심은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날 여포는 유비를 찾아왔다.
"내 아무래도 유공을 잘못 찾아온 것 같소이다."
유비는 무슨 소리냐는 듯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두 불초가 아우를 잘못 다스린 탓입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여포는 탄식하며 말했다.
"유공 탓이 아니외다. 유공의 인품이야 천하가 다 아는 것이 아니오? 다만 동생들이 원치 않으니 이 객이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유비는 간곡하게 만류했다.
"아닙니다. 불초의 탓입니다.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여포는 비록 딱딱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내심으로는 탄복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실은 어젯밤 진궁으로부터 긴히 계책을 전해 받았던 것이다. 진궁은 밤새 그를 설득했다.
"주공께서는 몸을 낮추셔야 합니다. 이 곳을 떠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비란 놈이 펄쩍 뛰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관우란 자도 마땅치 않은 눈치였네."
"그렇다면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내일 유비에게 가서 떠나겠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럼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여포는 진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일이라니?"
"유비란 자는 내심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덕을 내세우는 자입니다. 그런 자일수록 명예를 소중히 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찾아온 객을 박대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물론 그 자 역시 주공을 가까이 두는 것을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주공을 쫓아내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진궁이 워낙 자신 있게 말했으므로 여포는 어느 정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날이 밝자마자 유비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떠나시면 불초의 죄가 너무 큽니다. 정히 그러시다면 이 곳 서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패란 곳이 있습니다. 비록 대영웅이신 여공께서 웅지를 펴기엔 작은 곳이나 한동안 머물기에는 괜찮은 곳입니다. 부디 불초의 청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유비는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사정했다. 여포는 억지로 얼굴을 굳히고 있었으나 그야말로 입술이 귀밑에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그는 마지못한 듯 수락했다.
"허허ㆍㆍㆍ 이거 참 유공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내 유공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리 하도록 하겠소."
유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공께서 받아들여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모쪼록 소패에서 편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불초 사죄의 의미로 식량과 부속 일체를 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원, 안 그래도 되는데."
그 날 오후 여포는 수하들과 함께 소패로 떠났다. 비록 서주에 머물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소패를 얻은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만일 진궁이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여포는 진궁에 대해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