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쯤 갔을까?
히히히힝!
돌연 말이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아래로 푹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조조가 미리 파두었던 함정 속에 빠진 것이었다. 거한이 노성을 발하며 신형을 솟구치려는 순간 함정 위에서 쇠갈고리가 우루루 떨어져 내렸다. 제아무리 신력을 지닌 거한이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수십 개의 갈고리와 연결되어 있는 포승줄에 칭칭 감겨버리고 말았다.
그는 포승에 묶여 조조에게 끌려갔다. 수하들이 단상에 앉아있는 조조 앞에서 억지로 거한의 무릎을 꿇리게 하려는데 추상같은 외침이 울렸다.
"이놈들! 정중히 모셔오라고 했지, 누가 끌고 오라고 했단 말이냐?"
수하들이 놀라 거한의 포승을 풀어주자 조조는 단상에서 내려와 손수 거한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내 전위로부터 귀하의 얘기를 듣고 진작 만나보기를 원했소이다. 자, 이리 앉으시오."
조조가 그를 끌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자 거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귀공은 어디 출신이시오?"
이쯤 되니 거한은 적의(敵意)가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불초는 패국 초현 출신으로 허저라 하오이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한데 어찌하여 우리가 쫓던 도적을 잡아간 것이오?"
허저는 가슴을 펴며 말했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사방에 도적들이 들끓는데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돌봐 주겠소? 그래서 마을의 젊은이들을 모아 무예를 단련시키고 도적들을 방비하던 참이었소이다."
조조는 탄성을 발했다.
"허, 그럼 정말 그 도적들을 잡아두었단 말이오?"
"내 어찌 빈말을 하겠소? 마을에 가보면 알 것 아니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공의 말을 믿겠소이다. 하면 전에도 도적들을 물리친 적이 있었소?"
조조는 허저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력의 소유자이되 성품이 순박하다는 것을 단박에 꿰뚫었다. 이런 자는 비위만 잘 맞추어주면 다루기가 쉬운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저는 신이 나 떠들어댔다.
"그야 이르다 뿐이오? 일전에는 마을에 도적 떼가 수도 없이 몰려온 적이 있었소. 그때 돌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는 놈들을 겨냥해 하나씩 던졌소이다. 돌 하나에 도적놈 하나씩을 정확히 맞추었더니 놈들도 겁을 먹고 모두 달아났소이다. 또 한번은 마을에 양식이 떨어져 밭을 갈던 소와 도적들의 곡식을 맞바꾼 적이 있었소이다. 그런데 소들이 도망쳐 마을로 되돌아오지 않았겠소? 그래서 한 손에 소 한 마리씩 꼬리를 잡아끌고 가서 건네줬더니 놈들이 놀라 달아나버렸지 뭐요. 그 때부터는 다신 마을에 얼씬도 하지 않더이다."
소처럼 힘센 동물을 한 손에 한 마리씩 꼬리를 잡아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조조는 일면 단순하면서도 신력을 가지고 있는 허저가 탐이 났다. 그는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릇 장부라면 큰 뜻을 펼쳐야할 터인데 나와 함께 대업을 이루어보지 않겠소? 내 그대를 중히 써볼 요량이외다."
허저는 눈을 크게 뜨고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진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전위와 눈이 마주쳤다. 전위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아보였다. 그것을 본 허저는 내심 중얼거렸다.
"저 자 역시 나못지 않은 실력자인데 이 사람의 휘하에 있으니 내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조조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거두어 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조조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내 허저를 얻으니 마치 천하를 얻은 것 같도다! 오늘 같은 날을 어찌 자축하지 않겠는가? 잔치를 벌여야겠다."
조조는 하의와 황소를 끌어내 목을 벤 후 진중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 연후 여세를 몰아 여남과 영천을 완전히 평정하는 데는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여남, 영천을 평정하고 그들이 양민들로부터 탈취한 막대한 재물과 전리품을 한꺼번에 얻었다. 그러나 허저를 얻은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가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것은 재물이 아닌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예하에 많은 인재(人才)들을 거느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던 것이다.
조조가 돌아오자 하후돈과 조인이 마중 나와 환영했다. 조조의 오른쪽에는 전위가, 왼쪽에는 허저가 호위하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든든해 보였다. 조조 역시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심정이었다.
"자, 이젠 서주로 가 약아빠진 유비란 놈을 쳐 없애야겠지?"
그는 이번에는 부친의 원수도 갚고 서주도 얻을 때라고 생각했다. 군사들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주는 다시 화(禍)를 면하게 되었다.
"첩자를 풀어 연주의 소식을 정탐했더니 설난과 이봉이 보를 자주 비운다고 합니다. 아마도 인근의 무림을 평정하기 위해 나서는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연주를 치면 쉬이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인의 보고를 듣는 순간 조조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유비! 네놈의 명이 아직 다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에게는 정세를 보는 눈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서주를 치고 싶었으나 이성이 그로 하여금 또다시 방향을 돌리게 만들었다.
"오냐, 천하를 얻는데 하루 이틀쯤, 아니 몇 달을 더 기다린다 한들 어떠랴? 지금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조조는 마음을 정하고 진영을 정비했다. 그의 수하들은 여남, 영천을 평정한 터라 한껏 사기가 올라 있었다. 이럴 때 기세를 몰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더욱이 연주는 그의 본거지라 지금이야말로 탈환할 적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까짓 유비쯤이야 언제든지 짓밟을 자신 또한 있었다. 그는 곧바로 연주로 향했다.
과연 첩자의 말이 사실이었다. 조조가 이끄는 무리를 맞이한 연주의 설난, 이봉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세에 밀리기 싫어 얼마 안 되는 수하들을 긁어모아 맞은편에 진영을 쳤다.
조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쯧쯧, 여포란 놈이 천하제일고수라 하나 그 졸개들을 보니 최후가 멀지 않았구나."
만일 그였다면 보문을 굳게 닫아건 채 싸움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승부가 뻔한 싸움을 알면서도 나서는 만용(蠻勇)이야말로 여포의 말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