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 선 자는 8척이 넘는 장신에 허리통이 바위처럼 두터운 거한으로 큰 칼을 어깨에 걸고 있었다. 거한은 퉁방울 같은 눈으로 황소를 노려볼 뿐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의는 창을 휘두르며 거한을 공격했다.
"비켜라!"
어떻게 된 일인가? 하의의 손에서 창이 날아가 버리고 몸이 붕 떠올랐다. 하의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한의 우람한 팔뚝에 옆구리가 꽉 조여 버린 것이다. 거한은 하의의 혈도를 짚어버린 후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모두 죽겠느냐? 순순히 포박을 받겠느냐?"
쇠종이 울리는 듯한 외침에 하의의 수하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버렸다. 거한의 수하들은 그들을 모두 결박한 후 산중으로 끌고 가버렸다.
한편 하의를 붙잡기 위해 달려 온 전위는 갈파의 산 아래 당도했다. 그가 막 산세를 가늠하는 순간 거한이 수십 명의 패거리들과 함께 나타났다.
전위는 거한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들도 도적이냐?"
거한은 버럭 화를 냈다.
"도적놈들은 모두 내 손에 잡혀 있다. 누굴 보고 도적이라 하는 거냐!"
전위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럼 내게 바치지 않고 예서 무엇을 하는 거냐?"
거한은 더욱 화를 냈다.
"뭣이? 네놈은 누구기에 바치라는 거냐?"
전위가 가만히 살펴보니 거한이나 그의 수하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럴 듯한 무복(武服)을 입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깔보는 투로 말했다.
"내게 도적들을 바치면 상을 주되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은 오늘 경을 치를 것이다."
거한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손으로 가슴을 쳤다.
"별 거지같은 놈 다 보겠구나! 네놈이 날 꺾는다면 두말없이 내주마! 흥! 그렇지 않으면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를 받을 것이다."
전위는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거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좋다.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구나."
전위는 쌍철극을 뽑자마자 거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한도 즉각 대도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전위는 신력(神力)이 무궁무진한 위인이었다. 그런데 거한 역시 그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기합을 발하며 연신 붙었다 떨어지고, 떨어졌다가 다시 붙으며 용호상박의 격투를 벌였다.
쌍철극과 대도가 부딪칠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퉁겼다. 신력도 신력이려니와 두 사람의 무예 또한 막상막하였다. 전위가 달려들어 쌍철극을 휘두르면 거한은 천둥과도 같은 기합을 발하며 거도를 휘둘러 막아냈다. 그런가하면 거한의 칼이 어지러운 환영을 그려내며 숨쉴 틈도 없이 전위를 몰아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접전을 벌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지만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문득 거한이 연달아 4, 5초를 공격하더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목말라 죽겠다. 좀 쉬었다 하자!"
전위 역시 기진맥진했기에 못이긴 척 하며 말했다.
"좋다, 도망치지만 마라."
두 사람은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불꽃을 튀며 재개됐지만 해가 저물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싸우는 자도, 구경하는 자도, 모두 지칠 대로 지쳐 결국은 서로 물러나게 되었다.
조조의 귀에 이 같은 상황이 보고 되었다.
"전위와 막상막하로 싸우는 자가 있다고?"
그는 호기심이 일어 수하들과 함께 갈파로 달려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져 할 수 없이 임시로 진을 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밖이 시끄러워 나가보니 거한이 큰 칼을 어깨에 건 채 말을 타고 진영 앞에까지 와서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조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군만마 앞에서 단신으로 싸움을 걸다니, 대단한 물건이로세!"
그는 전위를 불러 당부했다.
"이번엔 일부러 지는 척하고 달아나게."
전위는 의아했지만 조조에게 계책이 있음을 알고 시키는 대로 거한과 싸우다가 30여 합 만에 패한 척하며 진중으로 도망쳐왔다.
"핫핫핫ㆍㆍㆍㆍㆍㆍ! 어디로 달아나는 게냐?"
거한은 대소를 터뜨리며 쫓아왔다. 그것을 본 조조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거한도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에는 대책이 없는지 씩씩거리며 물러나버렸다.
조조는 진영을 몇 마장 정도 뒤로 물린 후 그 곳에 함정을 파도록 지시했다. 사방 2장에 깊이가 3장이 넘는 함정을 판 후 그 위를 짚으로 덮고 흙을 뿌려 위장을 해두었다. 겉으로 봐서는 함정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전위는 명을 받고 나가 싸움을 걸었다. 거한은 말을 타고 나와 비웃었다.
"어제 패해서 달아난 놈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또 찾아오다니?"
전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나 꾹 참고 쌍철극을 흔들며 말했다.
"오늘은 네놈을 잡아 토막을 내주려고 왔다!"
"뭣이? 내 네놈의 주둥이를 썰어 들개 밥으로 던져주마!"
거한은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두 사람은 불꽃을 퉁기며 숨 막히는 싸움을 벌였다. 전위는 4, 50합을 싸우다 다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거한은 욕설을 퍼부으며 따라왔다. 전위는 저만치 달아나다가는 멈춰서 몇 합을 싸우다가는 다시 달아나곤 했다. 거한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말에 박차를 가하며 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