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아무리 감정이 격해 있어도 군사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욱을 비롯한 다른 군사들도 똑같은 생각인 듯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조는 칼칼한 음성으로 반문했다.
"여포란 놈이 꿈쩍도 않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여기서 세월만 죽이는 것이 능사란 말인가?"
순욱에게는 이미 복안이 서있는 듯했다.
"병기는 안 쓰면 녹슬고, 말을 놀리면 살이 쪄 둔해질 뿐입니다. 행마를 하셔야지요."
"어디로 말인가?"
"동쪽이 비었습니다. 천마교의 잔당과 흑도무리들이 횡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여남(汝南)과 영천(潁川)에 운집해 있는 놈들을 쳐 놈들이 모아둔 재물과 전리품을 취해야합니다. 이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일석이조?"
"주공의 세력을 다지는 것과 무림을 평안케 하여 명분을 얻는 것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뜻입니다."
"내 자네의 말을 따르겠네."
조조는 흔쾌히 수락했다. 감정에 우선하기보다는 냉정한 이성과 분석의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결국 그는 서주가 아닌 동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는 하후돈과 조인을 본진에 남겨두고 친히 무사들을 거느린 채 동진(東進)했다.
여남과 영천의 무리를 이끄는 자는 하의(何義)와 황소란 인물이었는데, 그들은 조조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하들을 대거 이끌고 양산(羊山)에 집결하여 진을 쳤다.
조조가 보니 적의 수효는 구름같이 많으나 그 진형(陣形)이 조잡할뿐더러 무리들의 면모가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강궁(强弓)과 쇠뇌를 발사하여 진세를 흐트러지게 한 후 전위를 선봉으로 내보냈다.
"도적들아! 이 어르신의 철극을 받아봐라!"
전위가 쌍철극을 휘두르며 달려 나가자 상대 쪽에서도 철추를 휘두르며 흉흉하게 생긴 장한이 뛰쳐나왔다. 그런데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전위의 철극이 장한의 철추를 날려버린 후 단숨에 목을 베어버린 버린 것이다.
"와아아!"
조조의 수하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의가 이끄는 도적들은 일시에 와해되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조조는 내친 김에 양산을 넘어 적도들을 짓밟아버렸다. 첫 싸움은 대승이었다. 조조는 일단 그 곳에 진을 구축하고 다시 싸움을 대비했다.
다음날 황소가 수하들을 이끌고 나와 진을 쳤다. 황소의 진영에서 혈건(血巾)을 두르고 녹포(綠袍)를 입은 자가 1장이 넘는 철봉(鐵棒)을 움켜쥐고 걸어 나오더니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외쳤다.
"나는 절천야차(截天夜叉) 하만(何曼)이다! 누가 날 대적하겠느냐?"
"도적놈이 어디서 큰 소리를 치는 거냐?"
조조의 진영에서 조홍이 대갈일성을 발하며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은 마주치자마자 사자처럼 포효를 발하며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절천야차 하만은 별호와 같이 위맹한 인물로 육중한 철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조홍을 몰아붙였다. 조홍은 대도로 맞섰으나 힘에서 밀려 가끔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의 도법은 기기묘묘하여 하만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양 진영은 함성을 지르며 각각 하만과 조홍을 응원했다. 하지만 4, 50합을 지나도록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뒈져라!"
하만의 기합과 함께 철봉이 가공할 기세로 조홍의 허리를 쓸어 쳤다. 조홍은 칼로 막았지만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에 통증을 느끼며 뒤로 밀려나갔다. 그는 힘이 빠진 듯 칼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쳤다.
"와아!"
"죽여라!"
황소의 수하들은 기세가 올라 일제히 함성을 발했다. 하만은 의기양양하여 조홍을 쫓아가면서 철봉을 빙글빙글 돌렸다. 조홍은 완전히 기세가 죽은 듯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질칠 뿐 대항할 엄두도 못내는 것처럼 보였다.
"가거라!"
하만이 빙빙 돌리던 철봉으로 조홍의 머리를 내리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조홍이 옆으로 한 바퀴 구르는가 싶더니 펄쩍 뛰어오르며 칼로 하만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억!"
하만이 비명을 터뜨리며 비틀거리는 순간 칼날이 번뜩하고 햇살을 반사했다. 시뻘건 피분수가 치솟았다. 조홍의 칼이 그의 옆구리를 갈라버린 것이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조홍의 신형이 민첩하게 하만의 뒤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도광이 번쩍하고 일어났다.
"크아아악!"
하만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몸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절단된 채 햇살 아래 시뻘건 내장을 드러내고 말았다.
"와아아아!"
조조의 진영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던 싸움이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허허실실(虛虛實實), 하만의 방심을 노리고 날린 회심의 일격에 승부가 나버린 것이다.
"쳐라!"
조조의 수하들이 물밀 듯이 쳐들어갔다. 앞장 선 것은 이전(李典)이었다. 그는 진작부터 수괴인 황소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제일 먼저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놈! 목을 내놓아라!"
황소는 한때 흑도에서 명성을 날리던 고수였으나 눈앞에서 하만이 거꾸러진 데다 노도처럼 몰려드는 조조의 수하들을 보고 넋이 반쯤 빠져버린 상황이었다. 그는 대항할 엄두도 못낸 채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하지만 이전은 벌써부터 그를 노리고 있던 참이라 바짝 추격하여 달리다 말 등에서 훌쩍 신형을 날려 허공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황소를 덮쳐버렸다.
"잡았다!"
이전은 황소를 깔고 앉아 칼을 그의 목 아래 바짝 들이밀며 외쳤다.
황소가 사로잡히자 그의 수하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사방으로 달아나버렸다. 조조의 수하들은 그저 그들을 뒤쫓으며 짓밟기만 하면 될 정도였다.
황소가 대패하자 하의도 전의를 잃고 고작 수백 명의 수하들만 이끌고 달아났다. 그런데 그가 막 갈의(葛坡)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부터 한 무리의 장한들이 우르르 뛰어 내려오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하의는 눈을 부릅뜨고 호통 쳤다.
"네놈들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