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두 아우를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우형은 이 곳이 더 이상 머물 곳이 못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네."
관우는 흠칫하며 반문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공손사형은 이미 북무림의 패주가 되었네. 비록 나와는 오랜 지기라고는 하나 언제까지 우릴 받아줄 형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럼······?"
"그렇다고 조조처럼 흑도 무리들을 쳐서 세력을 넓히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네. 그렇게 모은 힘은 언제고 반드시 뒤탈이 나게 마련이네."
관우는 유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비 또한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겠단 말씀이오? 원, 난 머리가 나빠 무슨 말인지 모르겠수!"
유비의 입가에 예의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인내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오는 법이네. 어쩌면 그 때가 지척에 왔는지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아뢰었다.
"어떤 분이 찾아와 배알하기를 원하옵니다."
유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뫼셔라."
잠시 후 정자에 오늘 것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는 청년무사였다. 비록 먼 길을 달려온 듯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풍모만은 범상치가 않아보였다.
"소생은 태사자(太史慈)라 합니다."
유비는 물론 관우와 장비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태사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데다 등에 멘 철궁(鐵弓)이 보통 사람은 제대로 들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강궁(强弓)인 것을 보고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유비는 가느다란 눈으로 태사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날 찾아 오셨소?"
"소생은 평소 북해(北海)의 영웅이신 공융이란 분을 흠모해 왔습니다. 한데 그 분께서 위경에 처해있기에 공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 분의 친전을 가지고 찾아왔사옵니다."
유비는 그 말에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공대인의 친전을 주시구려."
태사자는 품속에서 깊이 갈무리했던 봉서를 꺼내 두 손으로 바쳤다. 유비는 봉서를 뜯어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서신은 상당한 장문(長文)인지라 한참 동안을 읽어야 했다. 유비는 서신을 통하여 공융이 처한 상황을 이해함은 물론 서신을 전한 태사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는 서신을 다 읽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 공대인이 처한 상황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소이다. 아울러 서신을 통해 그대의 뜨거운 충정과 효심까지 알게 되었소. 정녕 시대에 드문 영걸이구려."
태사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말씀을··· 송구할 따름입니다."
관우와 장비도 공륭의 서신을 받아 읽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태사자는 북해에서 홀로 된 노모(老母)를 모시고 살고 있었으나 얼마 전부터 무예와 견문을 두루 익히기 위해 노모를 떠나 타지로 유랑하고 있었다. 마침 공륭이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인재를 아끼는 마음에 간간히 노모에게 양식과 피륙을 보내주곤 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태사자는 공륭에 대해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 천마교의 잔당과 흑도 무리가 야합하여 공륭을 압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비교적 세력이 약한 북해무림을 자신들의 터전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공륭은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고 그들과 일전을 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의 힘이 강해 거꾸로 밀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소식을 들은 태사자는 그 길로 북해로 달려갔다. 악도들은 보(堡)를 겹겹이 포위하고 총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 형세가 사뭇 위태로워 보이자 태사자는 혈혈단신으로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공륭을 만났다.
공륭은 태사자가 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들어온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녕 대단한 무용이구려!"
태사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분연히 말했다.
"불초에게 무사들을 주시면 당장 달려 나가 놈들을 깨치겠습니다!"
공륭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의 무예가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놈들의 기세가 워낙 크오. 허락할 수 없소이다."
태사자도 물러나지 않았다.
"노모를 돌봐주신 은혜 하해와 같을진대 어찌 목숨인들 두려워하겠소이까? 보내 주십시오!"
공륭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안을 내었다.
"아무래도 놈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오. 마침 당대의 영웅이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 분에게 구원을 청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서신을 써줄 테니 전달해 줄 수 있겠소?"
태사자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야 이를 말씀이옵니까!"
공륭은 이내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악도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데 그대를 보내자니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구려."
태사자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걱정 놓으십시오! 불초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태사자는 공륭의 서신을 가슴에 품고 필마단기로 보를 나섰다. 그는 말 옆구리에 화살을 빽빽하게 꽂은 전통(箭筒)을 십여 개가 넘게 착용한 후 보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내달렸다.
적진으로부터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태사자가 단신으로 달려 나오자 모두들 의아해한 것이었다. 설마하니 혼자서 싸우려고 나오겠나 싶었던 것이다.
적도의 수괴는 관해(管亥)란 위인이었다. 그는 상대가 얼마 전 단신으로 진영을 돌파했던 청년임을 알아보고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놈은 필경 원병을 청하러 가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직접 태사자를 막기로 하고 수하 백여 명과 함께 말을 타고 태사자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